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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학 비판하면 따돌림 당하는 학계 풍토 한심”

환단스토리 | 2015.04.22 15:38 | 조회 7035


“식민사학 비판하면 따돌림 당하는 학계 풍토 한심”

[광복 70년, 바꿔야 할 한국사] 〈3〉고대사 바로세우기 앞장 윤내현 단국대 명예교수

왜곡된 한국사 복원을 위한 활동을 기획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단국대 윤내현 명예교수였다. 윤 교수는 1980년대 초부터 민족사의 뿌리가 되는 고조선의 역사에 대해 최초로 학문적 논리로 문제를 제기하여 제도권 국사학자들을 긴장시켰고, 재야학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의 고조선 연구로 교과서에서 일제가 고조선 역사를 허구화하기 위해 만든 단군 ‘신화’라는 말이 사라지고, 한사군이 중국 허베이성의 난하(?河)와 요하(遼河) 하류 사이에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로써 고조선 때부터 중국의 식민지였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일제가 한반도 북쪽에 가져다놓았던 한사군의 위치 지도가 교과서에서 없어졌다. 고조선의 영토가 현재의 요하에서 난하까지로 넓어진 것은 물론이다. 고조선을 서기전 2333년 세워진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로 명확하게 기술하게 된 것도 의미있는 성과였다. 하지만 2009년 교과서에는 다시 단군신화라는 말이 등장했다. 지난해에는 동북아역사재단이 나랏돈을 써가며 한사군의 위치를 조선총독부가 주장하던 대로 한반도 북쪽에 가져다놓은 영문판 역사책을 출판한 사실이 드러났다. 마치 일제강점기에 한국사 왜곡을 주도했던 조선사편수회가 다시 활동을 시작하는 듯하다.

노학자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지켜보고 있을까. ‘파킨슨 증후군’으로 10년째 투병 중인 윤 교수가 한 번에 긴 시간을 할애해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해 1980년대 초부터 인연을 이어온 필자가 수차례 만나면서 들었던 이야기를 정리했다. 치료가 쉽지 않은 병인지라 몸이 많이 쇠약해진 상태지만,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설명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단국대 윤내현 명예교수가 지난달 31일 서울 동작구의 자택에서 현재 역사학계의 문제점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 교수는 “선·후배 학자 간에 비판을 주고받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정탁 기자
-중국 상대사(上代史)를 전공했는데,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게 된 계기는.

“고대사는 우리 민족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더없이 중요하다. 중국이나 일본도 이런 사실을 알기 때문에 고대사를 가장 먼저 왜곡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바로잡아야 할 첫 번째 과제는 바로 고대사 부분이다. 이런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고대사에 접근하게 되었던 것 같다. 1978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연구를 하던 중 기자(箕子·우리나라에 처음 중국 문화를 전해준 것으로 알려진 인물)에 관한 북한과 중국의 연구 자료를 보게 되었는데, 국내 학자들의 학설이 명확하게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상 왕조사의 연구’라는 논문을 통해 “기자는 조선에 봉해졌지만 상나라 조선현감에 봉해진 것이므로 고조선의 왕이 된 적이 없다”는 것을 밝혔다. 그런데 국사학계에서 전혀 반응이 없어서 이 부분을 좀 더 연구하여 1982년에 한국사에 대한 첫 논문 ‘기자신고’(箕子新考)를 발표했다. 당시 국내학계에서는 기자가 우리나라에 와서 선진문화를 전해주었다는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과 기자는 오지 않았다고 하는 주장이 대립되고 있었는데, 이러한 두 학설과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논문 발표 후 큰 논란이 일고 주류 학자들의 비난도 거셌다고 하던데.

“이 학설이 당시의 두 가지 주장과 다르다 보니 고조선사에 기자를 넣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의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던 차에 당시 국사편찬위원장이었던 이현종 선생이 “내친김에 중국 고대문헌에 고조선이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 논문을 써보라”고 권해 1984년 연구결과를 발표하게 됐다. 이병도(전 서울대 교수)의 제자로 광복 후 우리나라 고대 사학계를 주도하던 김모 교수가 발표 전에 “오늘 너무 강하게 주장하면 안 된다”고 말했으나 농담인 줄 알고 준비한 대로 발표했다. 그런데 토론시간에 그분이 책상을 마구 치면서 “젊은 사람이 선배 교수에 대한 예의도 지킬 줄 모른다. 영토만 넓으면 좋은 줄 아느냐, 터무니없는 주장을 한다”며 화를 냈다. 학자는 새로운 것을 밝혀내거나 잘못 전해온 것을 바로잡는 것이 본분인데 ‘선배 교수들에 대한 예의’를 더 중시하는구나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일제가 조직한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해 한국사를 왜곡한 책임이 있는 이병도의 식민사학에 예의를 지키라고 요구하니 일제의 학설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이었다면 고대사 연구를 접는 게 편하지 않았나.

“애초에는 기자에 대해서만 연구하고 한국사에서 손을 떼려 했었다. 그런데 여기서 물러서면 내 주장이 잘못된 것처럼 받아들여질 것 같아 그 뒤로 중국사를 제쳐두고 한국 고대사 연구에 집중했다. 중국 고대문헌에 나타난 고조선의 국경, 사회구조, 통치조직 등으로 연구 범위를 넓혀 고조선 전체의 역사를 재조명하여 발표하게 되었다.”

고대사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뒤 윤 교수는 한국사에 대한 목소리를 더 크게 내기 시작했다. 당시의 통설과는 너무 다른 내용이라 어려움이 적지 않았지만, 1차 사료에 충실한 주장은 언론에 소개되면서 조금씩 반향을 얻어갔다. 1986년의 국사교육심의회 활동을 계기로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1990년대에는 대중 서적도 출판했다.

-1980년대 초 국회 국사공청회 등 주류와 비주류 의견을 듣는 자리가 마련됐다. 어떻게 평가하나.


“민족사 교육을 바로잡으려는 의욕은 높았으나 안호상, 문정창, 임승국 등 이른바 재야학자들이 철저하게 학문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제도권에서 위서(僞書)로 몰려 있는 환단고기, 규원사화 등의 내용을 바탕으로 주장을 펼쳐 크게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 학문적으로 논리를 전개할 수 있는 사람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 후 나도 고조선 연구를 많이 했고, 근래에 이도상, 김종서, 이덕일 등은 물론이고 박정학 회장(필자)도 우리나라 역사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으니, 지금 그런 공청회가 열린다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1986년엔 국사교육심의회에서 활동했는데.

“그 무렵 국사편찬위가 발간하는 ‘한국사휘보’에 ‘윤내현은 북한의 어용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자’라는 내용이 실리고, 정보기관에 ‘고대사 분야에서 북한학설을 유포하는 자가 있다’고 신고가 들어와 불려가서 조사까지 받았다. 1980년대 중반 한배달 계간지 편집회의 때 만났던 한 언론인과 인연이 되어 많은 글을 언론에 발표하면서 기존의 고조선에 대한 서술에 문제가 많다는 점을 대중에게 알릴 수 있었다. 그해 11월쯤 국사교육심의회가 구성됐다. 심의회에서 근거사료를 철저히 제시하며 고조선사를 새로 써야 한다는 발표를 했는데 회의록을 보자고 했더니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고 하더라. 자신들이 반박을 못해서 불리하니 기록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내가 기존 학설을 강하게 비판하고, 주류 학자들이 제대로 반론을 펴지 못하자 임시 사회자가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랬다고, 적당히 양보하자’는 얘기도 했으며, ‘너무 획기적으로 바뀌면 국민들이 수용하기 곤란하다’는 등의 비학문적 발언도 있었다. 학문에 무슨 흥정이 있는가. 내 주장이 틀렸다면 틀린 점을 지적하고, 옳다면 수용하면 된다. 학자의 본분을 상실한 학자들이었다.”

단국대 윤내현 명예교수(왼쪽)와 한배달 박정학 회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동작구 윤 교수 자택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남정탁 기자
-북한·일본 학자들과의 교류도 활발하게 했는데 그들 생각은 어땠는지.


“북한 학자들은 주체사상 때문에 역사에서도 주체적 시각을 강조하지만, 김일성의 교시를 뛰어넘지 못하므로 매우 조심스럽게 말한다. 일본 학자들 중에는 과거 일본 군대가 역사를 왜곡한 것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어느 수위 이상의 주장을 하면 우익들에게 테러를 당할 위험이 있어서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인접국 학자들과 교류가 필요하지만 각자의 사정에도 한계가 있음을 실감했다.”

-선생님을 재야사학자로 보는 사람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나.

“일제의 단군신화론이 한국 사학계의 정설이 되면서 고조선 연구가 사실상 거의 없었다. 만주지역을 언급한 분은 신채호, 정인보, 장도빈 등 소위 민족주의 사학자들뿐이었다. 광복 후 우리 사학계는 그분들의 연구를 인정하지 않고 독립운동 하던 분들이 애국심, 애족심에서 만들어낸 이야기쯤으로 취급했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연구한 기자, 위만, 한사군 한반도설을 복창하던 이병도 등의 주장을 철저한 사료적 근거를 토대로 한사군이 한반도가 아닌 허베이성 난하 근처에 있었다고 밝혔고, 그 내용이 민족주의 사학자들과 비슷하니까 주류 학계에서는 나는 재야사학자로 보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엄밀한 학문적인 사고와 방법을 사용하는 강단사학자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식민사학자들은 일본의 시각을 따르는 선배의 학설조차 비판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니 고대사 분야에 젊은 학자들이 없고, 있어도 선배의 연구에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연구는 아예 할 생각도 하지 못한다. 식민사학 이론에 반대하는 학자들이 국사학계에서 발을 붙일 수가 없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선배 학자들의 잘못을 꼬집은 나는 강단학자가 아닌 셈이기도 하다.”

윤 교수가 경험했던 학계의 현실은 지금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를 만나면서 나눴던 이야기에는 자신의 힘들었던 경험이 무의미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하는 원인과 대책을 들어봤다.

-요즘 우리 사학계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왜 이렇게 됐다고 보는지.

“학자들이 진실을 깊이 연구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문제다. 정부가 남북 분단과 이념대립 문제에만 관심을 쏟다보니 역사의 핵심을 놓친 점도 있다. 또 일제 때 호의호식했던 친일세력의 후손들이 공부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아 관계로 진출을 많이 했고, 그들이 정부 정책과 예산의 칼자루를 쥐면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특별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우리 역사학계를 바꿀 수 있을까.

“우리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보면서 세계적 보편사와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이런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가 제도권 학자들에 휩쓸리지 말고 많은 연구자들이 토론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서 다양한 분야의 연구 결과를 끌어내야 한다. 제도권 학자들도 선·후배 학자 간에 비판을 주고받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정리=박정학 한배달 회장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04/05/201504050023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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