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자료실

식민사관 개요

알캥이 | 2012.04.25 01:20 | 조회 6688

식민사관 개요




1)서론


식민사관은 제국주의 성립과정을 뒷바침하는 논리인 근대화론, 사회진화론에서 비롯되었다. 사회진화론은 다아윈의 진화론을 바탕으로 제국주의 시대의 약육강식의 세계질서를 합리화하는 이론이었고 근대화론은 문명의 이름 아래 아시아에 대한 지도나 침략을 정당화하는 논리였다. 이러한 제국주의의 논리에 맞추어 우리 역사와 사회를 해석하려는 내용은 모두 식민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식민사관으로는 크게 나누어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으로 파악될 수 있다.


2)식민사관의 내용


에도시대(1603-1867)에 [고사기] [일본사기] 및 그밖의 일본 고전을 연구하는, 소위 국학자들의 한국연구는 일본의 고전연구를 통해서 태고시로부터의 일본의 조선지배를 주장하였다. 이들에게서부터 형성된 조선사상 및 조선관은 막부말기의 <정한론>, 메이지 이후의 조선 침략, 병탄, 지배의 유력한 관념적 지주가 되었을 뿐 아니라 소위 <일선동조론> <일한일역론>으로 불려지는 의식형태도 그들의 국학적 전통에 근거하였다고 지적된다.


한국사 연구가 본격화되어 1869년 국사교정국이 만들어 지면서 국사편수의 입장에서 일본사와 관계있는 한국역사를 연구하였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서 [일본사략](1877)이라는 책이 씌어졌다. 도쿄제국대학의 국사학파(곧 일본사학파)는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의 국가이념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였다. 여기에 속한 시게노, 쿠메, 호시노 등 세명의 교수들은 [일본사략]을 개정하여 [국사안](1888)을 썼다. 이는 일본의 역사를 다룬 책이었는데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한일관계를 ‘일선동조론’의 입장에서 다루었다.


‘일선동조론’은 일본학자 시데하라, 호시노, 기다 등이 주장한 것으로 문화적, 언어적, 종족적으로 한국와 일본은 동일한 조상이라고 하면서 분가되었던 조선이 다시 본가로 합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일제의 한국병탄을 합리화하려는 이념이었다.


‘타율성이론’은 한국사의 전개과정이 한민족의 자주적인 역량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하기보다는 외세의 간섭과 압력에 의하여 타율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하야시, 오다 등은 한국사가 태고적부터 북쪽은 중국의 식민지로서 남쪽은 일본의 영향 아래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북쪽은 기자, 위만, 한사군 등의 중국세력이 지배하였고 남녘은 신공왕후의 정벌을 전후하여 수세기간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다고 하는 소위 일본의 <남선경영설> 내지는 <임나일 본부설>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타율성론에는 만선사관, 반도적 성격론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일선동조론에 대한 비판으로 대두되었던 것이 ‘만선사관’이다. 만선사관은 만주사를 중국사에서 분리시켜 한국사와 더불어 한 체계 속에 묶는 것으로 이는 중국이 만주에 대하여 영토상의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역사적인 논거를 제시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일본의 만주지배를 합리화하려는 주장) 만선사관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로 이나바는 한국사의 독자성.자주성을 부인하고 민족, 영토, 경제의 세 방면에서 보아 한국의 태곳적부터 대륙 특히 만주와 분리할 수 없는 관계를 가졌다고 하면서 한국에서 일어난 큰 역사적 사건은 모두가 대륙 정국의 반영이었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만선사는 그 체계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사 연구의 방법론에서 보더라도 한국인의 자주적 활동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만선사관의 문제점은 첫째 고대사에 역점을 두게 한다는 의미에서 한국사를 그 후의 한민족 발전의 역사나 일제하의 민족운동과의 관련을 무시하도록 유도하였고 둘째로 지리 중심의 연구는 한국인이나 한국민족의 존재를 망각시켜버리는 것이었다.


‘반도적 성격론’은 미시나가 주장한 것인데 한국사의 성격을 부수성, 주변성, 다린성으로 규정하고 한국사의 최대 형성요인이 반도라고 하는 지리적 조건임 주장하여 한국사의 변증법적 역사발전 자체를 부정하였다. 그에 따르면 반도적 성격은 대외투쟁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외교관계, 국내 정치권 형성, 당벌성, 문화면에서도 나타나, 소위 사대주의라고 하는 성격을 형성케 하였다고 주장한다.


‘정체성론’은 한국이 왕조의 교체 등 사회적 변혁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 구조에 아무런 발전을 가져오지 못했으며 특히 근대사회로의 이행에 필요한 봉건사회를 거치지 못하고 전근대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주장한다. 후꾸다, 카와이, 구로따 등은 일본과 한국사를 비교하여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한국의 사회경제적 발전단계는 일본의 봉건제가 성립되었던 가라꾸라시대보다 오랜 고대말 10세기 경의 후지와라시대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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