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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의사 기념관 개보수를 경축하며

신상구 | 2015.12.20 02:18 | 조회 1918

                                                       윤봉길의사 기념관 개보수를 경축하며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신상구(辛相龜)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국가보훈처가 있지만, 해방 이후 이제까지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에 대한 예우가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윤봉길 의사는 김구, 안중근, 홍범도, 김좌진, 신채호 등과 함께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항일독립운동가로 잘 알려져 있다.   
   윤봉길의사는 향리인 충남 예산군 봉산면 실향리에서 농촌계몽운동을 했고, 1930년 3월6일 상해로 망명해 항일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 구금되고 총살당하는 바람에 1932년 12월19일 25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백범 감구 국무령이 조직한 한인애국단 단원이었던 윤봉길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개최된 천황 탄생일 기념행사에서 단상을 향해 도시락 폭탄을 던졌다. 이로 인해 총사령관 시라카와와 상하이 일본 거주민 대표였던 가와바타 등이 죽었고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제9사단장 우에다, 주중국영사 시게미쓰 마모루 등이 중상을 입었다. 그러자 중국 장개석 국민당 총통은 “중국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했다.”고 극찬할 만큼 조선의 항일과 독립의지가 세계 만방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서울 서초구 매헌로에 위치한 매헌(梅軒)윤봉길의사기념관은 백범기념관에 비해 시설이 낡았고 전시 내용도 부족해 개선이 시급하다고 한다. 실제로 윤 의사의 생애도와 유물 등을 설명하는 안내문은 곳곳이 노랗게 빛이 바래 있었고, 기념관 벽면 곳곳의 페인트는 벗겨진 채 방치돼 있었다. 일부 전시실은 영하의 날씨에도 히터조차 제대로 켜 있지 않았다.
   다행히도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가 기념관 개관 27년 만에 전면 수리에 나섰다. 11월 초부터 전면적인 시설 보수 작업이 시작됐다. 기념관 지붕과 전시실 내 조명을 발광다이오드(LED) 전구로 전면 교체한 데 이어 기념관 외부 윤봉길 의사 동상과 3층 대강당 공사 등도 진행 중이다. 기념사업회는 이달 말까지 1층 전시실, 2층 윤봉길 새책도서관 등도 보수 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매헌윤봉길의사 기념관은 1988년 12월 1일 문을 열었다. 1986년 윤봉길의사 의거 55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결성돼 당시 동아일보 사장이던 일민 김상만 선생이 위원장을 맡아 기념관 건립기금 모금 운동을 이끌었다. 기념관은 당시 모은 성금으로 지어졌다.
   개관 이후 여러 차례 보수 작업이 이뤄졌지만 이번처럼 대대적인 보수가 이뤄지는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기념관은 지붕의 기와가 바닥에 떨어지고 비가 오면 실내에 비가 새는 등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당초 기념사업회는 외부 후원만으로 기념관을 운영해 시설 보수는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다. 국가보훈처와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에 지속적으로 요청해 올해에야 마침내 2억여 원의 시설 보수비를 지원받아 공사를 시작하게 됐다.
   사무가구 전문회사 퍼시스 손동찬 회장의 도움도 컸다. ‘안중근의사기념관’ 건립에 3억 원을 내놓는 등 순국선열에 대한 예우에 관심이 많았던 손 회장은 기념관이 낙후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11월 직접 기념관을 찾아 시설을 둘러본 뒤 3층 대강당 시설 보수 비용을 전액 지원키로 했다.
   내년부터는 국가보훈처로부터 매년 5억여 원의 운영 지원비도 받게 돼 안정적인 운영도 가능해졌다. 기념사업회는 내년부터 윤 의사와 관련된 전시 내용을 보강하고 시민을 위한 역사 교육 프로그램 등도 실시할 예정이다.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김진우 회장은 “보훈처의 운영비 지원과 기념관 시설의 대대적인 보수 작업을 통해 이제야 윤봉길 의사의 격에 맞는 기념관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됐다”며 “앞으로 윤 의사의 업적을 있는 그대로 후대에게 보여줄 수 있고 국내외 관람객들이 두루 찾는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윤봉길 의사의 순국일인 19일에는 윤봉길 의사의 순국 83주기 추모식도 열렸다. 기념사업회는 국가보훈처, 광복회, 용산구청, 롯데백화점, 동아일보사의 후원을 받아 이날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윤 의사 묘 앞에서 윤 의사의 삶과 애국애족정신을 기리는 추모식을 진행했다.
   그런데 문제는 사회과와 국사 교과서에 윤봉길의사가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개최된 천황 탄생일 기념행사에서 단상을 향해 도시락 폭탄을 던진 사건만 수록되어 있고 부흥원을 설립하고 월진회를 조직하여 농촌부흥운동을 한 것은 언급조차 없어 윤봉길의사를 단지 테러리스트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국민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앞으로 사회과와 국사 교과서를 개정할 때에 윤봉길의사의 농촌부흥운동을 추가로 기록하여 윤봉길 의사의 진면목을 학생들이 잘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윤봉길의사는『농민독본』과『시집』을 발간할 만큼 문재(文才)가 뛰어났다는 사실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1. 신상구, “윤봉길의사 순국80주기를 추모하며”, 충청일보, 2012.12.18일자. 
    2. 권오혁, “윤봉길 애국혼, 더 찬란히 빛낸다”, 동아일보, 2015.12.19일자. 10면.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2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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