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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가 다석 유영모 선생 이야기

신상구 | 2016.01.07 01:27 | 조회 2106

                                                           종교사상가 다석 유영모 선생 이야기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신 상 구

   다석(多夕) 유영모(柳永模) 선생은 1890년 3월 13일 서울에서 유명근(柳明根)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다가 1900년 수하동(水下洞) 소학교에 다니고, 다시 한학에 몰두하였다. 1905년 경성일어학당(京城日語學堂)을 거쳐 1907년 경신학교 과정을 마쳤다. 1912년 일본에 건너가 동경물리학교에서 수학하며,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강연에 큰 영향을 받고 출세 거부의 결단에 따라 유학 도중 귀국하였으며, 종교철학을 독학으로 탐구하여 나갔다.
   1905년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YMCA)에서 행한 명사들의 강연을 들으러 다니다가 초대 YMCA 총무 김정식(金貞植)의 인도로 연동교회에 나간 것이 계기가 되어 그리스도교에 입교하였다.
   1909년 경기도 양평학교(楊平學校) 교사가 되었다. 이듬해부터는 2년간 평안북도 정주(定州)의 오산학교(五山學校) 교사로 재직했다. 1921년 조만식(曺晩植)의 후임으로 오산학교 교장에 부임하여, 1년간 재직했다. 1928년 YMCA 성경연구반 지도를 맡아 35년간 계속했다.
   1914년 최남선(崔南善)과 교류하며『청춘』지에 「농우(農牛)」·「오늘」 등을 1918년까지 기고하였다.
   다석은 1921년부터 1년간 오산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김교신(金敎臣)·함석헌(咸錫憲) 등 제자에게 큰 감화를 주었다. 1928년부터 35년간 YMCA 성경연구반 지도를 하면서 김교신의『성서조선(聖書朝鮮)』지에 신앙의 글들을 발표하여 성서조선사건으로 1942년 종로경찰서에 구금되어 문초를 받기도 하였다.
   1940년 후반 생애를 하루 한 끼의 일중(一中)으로 금욕생활을 실천하는 가운데 선구적인 비교종교학 연구가이자 독보적 종교철인으로 기독교를 비롯한 동서양의 진리를 끊임없이 설파하였다.
   1955년부터 『다석일지(多夕日誌)』를 쓰기 시작하여 종교적 묵상을 만년까지 기록하고, 『노자』국역(1959)과 한글연구에도 탁견을 보였다.
   다석은 한국의 대표적인 개신교 사상가로 교육자, 철학자, 종교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다석은 우리말과 글로 철학을 했던 최초의 철학자이자 동서회통의 사상가로 우리 고유의 사상을 바탕으로 그 자신만의 독특한 신학적 이해들을 구축하는데 몰두했다.
   기독교, 유교, 불교, 노장 사상을 넘나들며 동서고금의 다양한 사상과 종교를 공부하고 철저히 금욕적인 삶을 실천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다석(多夕)이란 호는 24시간에 한 끼를, 해 넘어 가면 저녁 때 즉 많은 多  끼니를 저녁 夕 한 번에 몰아 먹는다 해서 多夕이라 이름한 것이다.
   다석은 이 세상을 한 마디로 식(食)과 색(色)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중생이 결코 식과 색을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는 곤요로운 삶을 사는 것을 가엾게 생각했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란 별 것이 아니고, 식과 색을 초월한 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예수야 말로 이 하나님의 유일한 효자라는 것이다.
   다석은 남강 이승훈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셨고, 씨올 함석헌은 그의 제자이면서 도반으로 친교했으며, 한 생을 도의 경지에서 살았다.
   다석은 1905년 그리스도교에 입교한 후 7년 동안 교회주의 정통신앙인으로 살다가 톨스토이와 노자, 불경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무교회주의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저서로는『다석일지(多夕日誌)』(성천문화재단, 1998),『노자』(1959) 등이 있다.

   무일당에 의하면, 多夕 유영모의 신조와 하루의 생활 일과는 다음과 같다.

   하루 한 끼 먹기, 새벽 일찍 일어나 체조하기, 찬물 수건으로 몸 문지르기, 시간 약속 잘 지키기, 늘 걸어다니기, 꿇어 앉아 생활하기, 누구에게나 경어 쓰기, 남에게 잔심부름 안 시키기, 한복 입기, 시계 안 차기, 차나 음료수 안 마시기, 얼음 과자 안 먹기, 음식점 안 가기, 부채질 안 하기, 약 잘 안 먹기 등이다.

   한편 다석 사유의 단편적인 측면을 새겨보면 다음과 같다.

   숨(호흡)은 영이들고 나는 것으로, 사람은 하루 2만 5천 번 숨을 쉰다.
   70년 인생이라면 6억 2천 5백만 번 숨을 쉬는 것이다.
   숨은 우주와 생명과 인간 본성의 근본이다.
   숨쉬는 일은 우주와의 연결 작용으로 자연의 흐름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사람은 정精. 기氣. 신神이 조화를 이룬 완전한 존재이다.
   양생법의 기본을 몸과 마음과 정신을 올곧게 하는 것으로 삼았으며,
   다석의 명상수련은 정좌법으로 무릎 꿇고 앉기이다.
   평소에 삶과 살림의 균형과 조화를 소중하게 챙겼다.
   그래서 다석은 "삶은 숨, 곧 자연 호흡이 중심이요, 살림은 먹는 것이 중심이다." 라고 하였다.

   살림은 삶을 위한 부지런한 움직임이라야 한다.
   세상에서 살림을 확장하려는 이는 살림에 치여 죽게 된다.
   마치 쌀독에 묻혀 죽는 생쥐처럼......
   '오! 늘~?'을 성성하게 누리셨던 다석 선생은
   진정한 자유인의 삶을 절제되고 부지런한 살림으로 살아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다석 선생은 한국적인 기독교를 추구한 위대한 사상가요 종교가”로 존경한다고 말했다.   

                                                           <참고문헌>
     1. 유영모,『다석일지(多夕日誌)』, 성천문화재단, 1998.
     2. 박재순,『다석 유영모의 철학과 사상』, 한울아카데미, 2013.3.
     3. 윤경빈, “다석 유영모”, 무비앙스 ymv25문, 2015.1.21.
     4. 무일당, “다석 유영모 선생의 하루”, 자연의 섭리 육기섭생법, 2015.2.14.
     5. “유영모(柳永模)”, 한국학중앙연구원,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2016.1.6.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5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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