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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봉의 단군에 대한 역사인식

신상구 | 2015.12.22 19:41 | 조회 2192

                                                              김두봉의 단군에 대한 역사인식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신상구

                                                                  1, 김두봉의 생애와 업적 
   백연(白淵) 김두봉(金枓奉, 1899-1960)은 1899년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에서 출생했다. 1905년까지는 집에서 한문을 배우다가 서울로 올라와 기호학교(畿湖學校:중앙고등보통학교의 전신)와 배재학교에 다녔다.
   1913년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에 가입하였으며 이듬해에 배재학교를 중퇴하였다. 당시 최남선(崔南善)이 주재하고 있던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에 참여하여 소년잡지『청춘』을 편집하는 일에 종사하기도 하였고, 조완구(趙琬九)와 함께 민족종교인 대종교(大宗敎)에 관계하기도 하였다.
   우리 나라 한글연구의 선구자인 주시경(周時經) 밑에서 한글 연구에 몰두하여 27세의 나이로 광문사(光文社)에서 발행한『조선어문전(朝鮮語文典)』 편찬에 참여하는 등 한글 연구의 기초를 닦았다. 그리고 그는 나철의 제자로 나철이 1916년 구월산에서 폐관(자결)할 때,  그를 모시던 6명 중의 한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대종교 2대 종사인 김교헌 선생을 추앙했다. 그리하여 그는 김교헌의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와 공헌을 사마천이 중국사에 끼친 영향보다 높이 평가했다.
   1917년에는 보성고등보통학교, 휘문고등보통학교, 중앙고등보통학교 등에서 시간강사를 지냈다. 그리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한위건(韓偉健) 등과 함께 참가하였다가 같은 해 4월 신의주를 거쳐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다.
   상해에서는 신채호(申采浩)가 주필로 있던 순한문신문인 신대한신문(新大韓新聞)의 편집을 맡아 일하다가, 신문발행이 16호로 중지되자 김규식(金奎植) 등의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에 가담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초창기에는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내는 등 민족주의적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1920년에 이동휘(李東輝)를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자 모임에 가담하여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한편 한문에 깊은 소양을 쌓고 한글연구에 있어서도 선구자적 위치에 있던 그는 1922년 상해의 새글집사에서 30여 만의 우리말 단어를 수록한『깁더조선말본(精解朝鮮語文典)』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1923년에는 고려국(일명 고려공산당 총무국)의 간부로 활동하였고, 1924년에는 상해 교민단의 학무위원장에 선출되어 교민자녀교육기관인 인성학교(仁成學校)에 관계하는 한편, 국어와 역사를 가르쳤다.
   1928년 12월 고려공산당이 코민테른의 지시로 해산되자, 홍남표(洪南杓)·조완구 등과 함께 대한독립당성립촉성회에 참여하였고, 안창호(安昌浩)를 중심으로 한 각파혁명이론비교연구회에 가담하고 한인학우회의 강연 등에 참여하였다.
   1935년 김원봉(金元鳳)과 한국민족혁명당(1937년 조선민족혁명당으로 개칭)을 결성하여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가, 1937년에는 후베이성 장링(湖北省江陵)으로 근거를 옮겼다.
   다시 충칭(重慶)으로 활동무대를 바꾸었다가 1942년 옌안(延安)에서 독립동맹을 결성, 주석으로 활동했다. 옌안은 당시 중국팔로군의 근거지로서, 중국 국민당 및 임시정부와 관계를 유지하던 김원봉과는 노선을 달리하여 최창익(崔昌益)·무정(武丁)·한빈(韓斌) 등과 더불어 조선독립동맹(朝鮮獨立同盟)을 결성하여 주석에 취임하였다.
   공산당에 가입한 적은 있었으나 당시에는 공산주의활동보다는 반일투쟁의 운동가로서 평가받았고, 따라서 주석에 취임하게 된 것은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의 통합의 상징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임시정부 및 국내의 건국동맹 등과 대일연합전선 형성을 위하여 연락하던 중 광복을 맞아 1945년 12월 독립동맹과 함께 평양으로 귀환하였다.
   1946년에는 조선독립동맹을 조선신민당(朝鮮新民黨)으로 개편, 위원장에 취임하였다. 당시 소련의 지원을 받던 김일성(金日成)과는 달리 조선의 혁명단계를 신민주주의혁명단계(新民主主義革命段階)로 규정, 모택동(毛澤東)의 중국혁명전략을 수용하였다. 1946년 8월 조선신민당이 북조선조선공산당과 합당하여 북조선노동당으로 통합될 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이후 김일성대학 총장, 북조선인민회의 의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상임위원회 위원장, 조국통일전선의장단 의장 등을 역임하였으나, 1958년 3월 제1차 공산당대표자대회에서 반혁명종파분자로 공격받아 축출되었다. 그 뒤 1960년 지방협동농장에서 사망하였다고 한다.
                                                                2. 김두봉의 단군에 대한 인식
   철저한 민족주의자인 김두봉은 상해 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 1921년 음력 10월 3일(양력 11월 11일) 에 기고한 ?개천절력?이란 글에서 단군의 건군을 기념하는 날이 단군시대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는 개천절을 명칭, 의식, 날짜 별로 분석을 한다.
   먼저 명칭에 대해서 김두봉은 삼한(三韓)의 천군제(天君祭), 부여(夫餘)의 영고회(迎鼓會), 예(穢)의 무천회(舞天會), 기자(箕氏)의 보본제(報本祭), 고구려(高句麗)의 동맹(東盟會) 신라(新羅)의 태일산사(太日山祠), 백제(百濟)의 사중제(四仲祭), 발해(渤海)의 단계축(檀戒祝), 요(遼)의 군수제(君樹祭), 금(金)의 장백산책(長白山冊), 고려(高麗)의 삼성사제(三聖詞祭), 조선(朝鮮)의 숭령전제(崇靈殿祭)가 모두 단군의 건국을 기념하는 행사였다고 한다. 요와 금의 행사까지도 단군의 전통을 이은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 의식에 대해서 김두봉은 삼한 ? 부여 ? 예 ? 고구려는 전국적인 행사인데, 삼한은 대표자를 선출하여 국읍(國邑)에 제사하였고, 부여 ? 예 ? 고구려는 민중이 모여서, 기자 ? 신라 ? 발해 ? 요 ? 금 ? 고려 ? 조선은 임금이 직접 제사를 드리거나 대신 제사를 드리게 하였다고 한다.
   그 다음 날짜에 대해서 김두봉은 삼한 ? 예 ? 고구려 ? 요 등의 나라는 10월로 하였지만, 백제는 사중제, 고려아 조선은 봄가을로 하였다고 한다. 그나마 몇 나라는 어느 달에 하였는지 아직 잘 알 수 없으나, 역대에 10월로 함이 가장 많이 들어났다. 또 우리나라에 최근까지 전래하는 풍속(風俗)을 보면, 전국이 공통으로 10월달이라 하야, 이달에 초하루나 혹 초3일에 삼신제(三神祭), 제석제(帝釋祭) 등 여러 명목으로 기념하였다. 그 유래를 고찰하면 삼신(三神)은 환인(桓因), 환웅(桓雄), 환검(桓險 卽 檀君)이오. 제석(帝釋)은 삼신(三神)을 불가에서 부르는 별칭인즉, 기실은 다 단군(檀君)을 기념함인데, 옛적에는 국조교조(國祖敎祖)라 하여 기념하던 국경일(國慶日)이 근세에 와서는 한 귀신 섬기는 음사(淫祀)같이 되고 말았다.  
   개천절은 시월일일과 시월삼일을 중에서 시월삼일이 특별히 정해진 날이라고 한다. 그래서 시월삼일을 개천절로 정한 것이라고 추론한다. 개천절로 하는 이유에 대해서 김두봉은 한글학자답게 십은 손가락을 모두 연다는 뜻이 있고, 삼은 세 혹은 새로, 마찬가지로 연다는 뜻이라고 한다. 새로 여는 날이라는 뜻이다. 10월 3일 경이 되면 추수가 된 이후라 경제상황이 안정되어 심리도 편안하고 날씨도 춥지 않고 기운이 날 좋은 때라고 한다. 그렇지만 김두봉은 이 날이 음력이기 때문에 날짜가 고정되지 않아서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현재 양력으로 개천절을 10월 3일로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김두봉은 공산주의자이지만 철저한 민족주의자로 한글 연구와 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에 많은 공헌을 한 국학자로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
   1. “김두봉(金枓奉)”,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5.12.
   2. 조남호, “김두봉과 개천절 - 한글운동과 국학 인물열전 2편”, 코리안스피리트,  2015.12.18일자.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1994),『아우내 단오축제』(1998),『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지역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한국선도의 맥을 이은 일십당 이맥의 괴산 유배지 추적과 활용방안” 등 65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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