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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덜렁제를 창시한 국창 권삼득 이야기

신상구 | 2015.12.31 14:49 | 조회 2547

                                                     판소리 덜렁제를 창시한 국창 권삼득 이야기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신상구(辛相龜)


   국창 권삼득(權三得, 1771-1841)은 본명이 권정으로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에 활동한 판소리 최초의 명창이다. 양반 출신의 비가비광대(非可非廣大)로, 이른바 순조 임금 집권기의 전기 팔명창(八名唱)에 속하는 인물이다.
   권삼득의 출생지로 거론되고 있는 지역은 정노식(鄭魯湜, 1891-1965)이『조선창극사』에서 밝힌 전북 익산군 남산리와 전북대 홍현식(洪顯植) 교수가『이우당유고집(二憂堂遺稿集)』의 기록을 근거로 밝힌 전북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이다.『이우당유고집』에 수록된〈이우당기(二憂堂記)〉와〈근제이우당서후(謹題二憂堂序後)〉의 내용에 따르면, 권삼득은 안동 권씨 명문가에서 권래언(權來彦, 1739-1816)과 옥천조씨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정, 자는 사인, 예명은 삼득(三得)이다. 본명이 권정이나 전주 근교의 산과 계곡을 떠돌며 소리를 익혀 사람소리, 새소리, 짐승소리의 세 소리를 얻었다고 해서 권삼득(權三得)이라 불리었다.    
   권래언은 익산군 낭산의 성불암 사찰근처에 살았는데, 시와 문집을 남겼고 효자 정례문이 세워지고 추증 예조판서가 추서되었다. 권래언은 시문집으로 이우당(권래언의 호) 문집이 있었다. 
   판소리 흥부전 변강쇠전을 보면, 전라도 함열현 삼기의 성불암은 경기도 안성군 청룡사와 같이 노래패 사당패 떼가 주로 사는 곳이었다. 이곳은 백제시대부터 사찰의 터이므로  무당과 화랑도의 노래소리 서동요가 이어오다가 후백제시대 정읍사등으로 유행하고 고려시대에는 불교와 군가로 바뀌고 조선시대에는 유교숭상의 아악소리와 판소리로 재구성하여 목쉰 소리 굵은 소리 그리고 한문식 가사로 만들어 불렀다. 특히 성불암은 전주사람 이의방의 고려 명종시대 무신정권과 여산 송씨 송송례의 집권시대인 충열왕의 문화 부흥시대에 호족들의 신앙터로 노래패들의 집단지로 보인다. 그래서 고려 무신정권시대부터 민속악이 번성한 곳으로 알려졌다.  
   권삼득은 어린 시절 성불암 소속의 사당패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판소리에 관심과 흥미를 갖게 되었다. 권삼득은 어려서부터 글 배우기를 싫어하고 소리 공부에만 전념하다 결국 파문(破門)되었다고 한다. 소리를 했다는 죄로 멍석말이를 당하게 되자, 권삼득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소리 한 마디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가 부른 비장한 곡조는 좌중을 크게 감동시켰고, 문중에서는 권삼득을 족보에서 제명하는 조건으로 목숨만 겨우 부지시켜 쫓아냈다는 일화가 있다. 부친 권래언의 호인 '이우당(二憂堂)'은 '두 가지 근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아들 권삼득이 천한 광대의 소리를 해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킨 데서 비롯된 근심이 두 가지 근심 중 하나라 한다.
   권삼득은 고려시대부터 중국에서 조상들이 기거하고 조선시대에도 사신 왕래하는 등 대대로 이어왔기에 뛰어난 한문과 중국어 실력으로 청나라에서 들어온 경극과 서양문화를 일찍이 알고 있었다.
   권삼득은 기록으로 전하는 최초의 명창인 하한담(河漢譚)과 최선달(崔先達, 1726-1805)의 후배로, 12세부터 그들에게 소리를 배웠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염계달(廉季達)이 권삼득의 창법을 많이 본받았다고 한다.
   전북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 뒷산 작약골에 권삼득의 묘로 추정되는 곳이 있다. 묘의 오른편 앞쪽에 난 작은 구멍은 비오는 밤마다 노랫소리가 울려나온다고 해서, 권삼득의 '소리구멍'이라 불린다. 또 묘의 오른편 아래쪽에는 권삼득이 소리공부를 한 곳이라고 전해지는 '소리굴'이 있다. 소리무덤, 소리구멍, 소리굴은 여러 명창들의 일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로, 당대 대명창으로서의 권삼득이 지니는 위상을 재확인할 수 있다. 한편 권삼득이 문중에서 쫓겨난 사건에 대해서는 이러한 일화도 전한다. 비장한 곡조로 좌중을 감동시켜 목숨을 구한 것이 아니라, 재치 있는 꾀로 당시의 위기를 모면했다는 내용의 이야기이다. 멍석말이를 당하게 된 권삼득은 한 가지 청을 올린다. 자신이 그동안 사람들은 수없이 소리로 울리고 웃겨보았지만 짐승들은 그렇게 해보지 못했으니, 마지막으로 짐승을 한번만 웃겨보고 죽게 해달라고 빈 것이다. 그는 외양간의 황소 앞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소리를 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소가 웃었고, 그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가 웃은 것은 사실 권삼득의 소리 실력 때문이 아니었다. 권삼득이 미리 부채에 암소 오줌을 묻혀 두었다가, 소리를 할 때 부채를 활짝 펴서 황소로 하여금 암소의 오줌 냄새를 맡고 웃게 한 것이었다.
   권삼득은 권마성(勸馬聲) 소리를 응용한 판소리 선율인 덜렁제를 만들어 후대에 전했다. 도약 선법을 사용하는 덜렁제는 천길을 솟아 만길을 내리치듯 흥겹게 출렁이다 사뿐히 가라앉아 민초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덜렁제는 매우 씩씩하고 남성적인 느낌을 주며, 현재까지도 여러 소리 대목에 구사된다. 신재효(申在孝, 1812-1884)는〈광대가(廣大歌)〉에서 "권생원(權生員) 사인(士仁) 씨는 천층절벽(千層絶壁) 불끈 소사 만장폭포(萬丈瀑布) 월렁궐렁 문기팔대(文起八代) 한퇴지(韓退之)"라 하여,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 소리에 그의 성음을 비유한 바 있다. '가중호걸(歌中豪傑)'이라는 권삼득의 별명도 그가 호탕하고 씩씩한 창법을 구사했음을 짐작케 한다.『조선창극사』「권삼득」조에서는 그의 소리에 대해 "곡조가 단순하고 그 제작이 그리 출중한 것이 없으나 세마치장단으로 일호차착(一毫差錯)이 없이 소리 한바탕을 마치는 것이 타인의 미치지 못할 점일 뿐더러 그 천품의 절등한 고운 목청은 듣는 사람의 정신을 혼도케 했다"는 후인의 평을 제시했다.
  〈흥보가〉를 장기로 삼았으며, 그 중 '놀보,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이 그의 더늠이다.그의 더늠인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은 전도성(全道成)·송만갑(宋萬甲)·김창룡(金昌龍)에 의해서 방창(倣唱)되고 있다.
   국창 권삼득이 전북 완주의 양반가에서 태어나 소리를 하다가 집안에서 쫓겨나 콩 서 말을 짊어지고 처가가 있는 남원 땅 구룡 계곡으로 들어가 한 바탕 소리공부를 마칠 때마다 한 알의 콩을 용소에 던지면서 지성으로 소리를 닦아 득음대성(得音大成)하였다 하여 그곳에 국창 권삼득 유적비가 세워져 있다. 
   한편 우리나라 최초의 양반 출신 소리꾼인 권삼득은 국창으로 덜렁제를 창시하여 판소리의 고장인 전주 판소리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그리하여 1993년 4월 전북도립국악원 앞에 북 모양으로 조각된 권득기 기적비(紀績碑)가 세워졌고, 해마다 국창 권삼득 선생 추모제가 생가에서 개최되고 있으며, 전주고 앞에서 호반촌으로 이어지는 길을 ‘권삼득로(權三得路)’로 지정하여 국창 권심득의 숭고한 예술혼을 기념하고 있다.    
                                                                               <참고문헌>
    1. 정노식, 『조선창극사』, 조선일보 출판부, 1940.
    2. 윤양호, 「권삼득(權三得)의 덜렁제에 관한 硏究」, 조선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2.
    3. 최동현, 『판소리란 무엇인가』, 에디터, 1994.
    4. “양반 국창(國唱) 권삼득(權三得) 생애 밝혀”, 동아일보, 1971.4.28일자.
    5. 홍인철, “양반 소리꾼 권삼득 추모제, 국악대전 16-17일”, 연합뉴스, 2015.10.14일자.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5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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