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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과 부여 역사 왜곡 실태

신상구 | 2015.06.29 02:09 | 조회 3163
고조선과 부여 역사 왜곡 실태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신상구(辛相龜)
역사교육을 바로잡는 사람들의 모임 회장인 김종서 박사는 일제의 식민사학자들과 동북공정에 의해 고조선과 부여 역사가 심각하게 왜곡되었음을 다음과 같이 고발하여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을 하고 있는 재야 민족사학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1. 해모수의 북부여와 동명제의 부여 400년 역사가 사라졌다
삼국유사에 고조선이 서기전 2333년에 건국되어 1908년 만에 망했다 했으니 고조선이 멸망한 해는 서기전 425년이다. 이어서 서기전 419년에 북부여가 건국되었고, 서기전 100년 전후에 동명제가 해부루왕의 북부여를 빼앗아 부흥시켰다. 이런 긴 역사적 흥망 과정을 시라토리 구라키치와 이마니시 류는 “단군과 하백의 딸 사이에서 부루가 태어났고, 해모수와 하백의 딸이 주몽을 낳았으며, 부루는 해모수의 아들이라 하여 단군이 곧 해모수이고, 주몽과 부루는 형제”라는 식으로 모두 서기전 59년에 태어나는 주몽과 거의 동시대 인물들로 왜곡하였다. 이렇게 되면 단군의 고조선, 해모수의 북부여, 동명제의 북부여(부여) 등 400여년의 역사가 없어진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를 근거로 신시, 고조선, 해모수의 북부여, 동명제의 북부여, 해부루왕의 동부여 등의 역사 교육이 금지되었다. 그러한 가르침을 받은 이병도는 ‘부여고’에서 북부여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하느님(천제)의 아들이라며 부여를 부흥시킨 동명제의 탄생, 성장, 탈출, 부여로 와서 왕이 되는 등에 대한 ‘논형’, ‘후한서’, ‘위략’ 등의 중국 기록이 고구려 건국시조(주몽)의 전설을 잘못 전한 것이고, 동명제 즉, 동명은 주몽으로 고구려의 시조라고 왜곡하였다. 이 논리는 현재의 교과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역사교과서에서 ‘부여는 1세기에 이미 왕을 칭하고’라고 하여 전국시대부터 서기 1세기 이전까지 수백 년의 북부여·부여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것이다.
2. 준왕의 조선, 위만조선의 영토 위치와 정체
고대 한국의 맹주였던 고조선이 사라지자, 요동국과 더불어 가장 서쪽에 있던 고죽국이 국호를 ‘조선’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수서’ 배구전에 “고구려 땅은 본래 고죽국이다. 주나라 무왕 때에, 이 고죽국 땅에 기자를 봉하였고 한나라 때에는 이 땅을 나누어서 삼군(낙랑·현도·대방군)을 두었고”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기자와 무왕은 서기전 12세기 사람이고, 고죽국은 서기전 18세기부터 서기전 7세기까지도 존재하던 나라이므로 무왕이 기자를 고죽국에 봉할 수 없다. 이는 고죽국이 조선으로 국호를 바꾼 것을 아는 사람들이 기자의 조선으로 생각하고 만들어낸 말로 보인다. 고죽국에서 조선으로 국호를 바꾼 조선의 마지막 왕이 준왕이고, 준왕이 서기전 194년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고죽국은 난하 하류 유역에 있었고, 그 지역의 창려가 준왕과 위만조선이 도읍했던 왕험성이었다. 고대 한국 영토 중에 가장 서쪽 지역에 있던 나라가 준왕의 조선과 위만조선이었다. 따라서 이 조선들은 혈통적으로나 영토 위치상으로나 신시·고조선의 적통을 이은 고대 한국의 중심 국가가 될 수는 없다. 신시·고조선의 적통을 이은 국가가 북부여이고, 그다음이 오국(부여·신라·고구려·백제·가야)으로 이어진다.
3. 고조선 역사를 부정하기 위해 ‘고조선’ 국호 왜곡
고조선은 본래 기자조선, 위만조선보다 고대에 있었던 조선이라는 의미로 쓰인 국호이다. 그러나 일본강점기에는 단군왕검이 건국한 고조선의 실존을 부정하였기 때문에 기자조선, 위만조선을 고조선이라고 하였다. 그러한 전통을 이어받은 이병도학파 학자들에 의해 현재 역사교과서에서도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기자조선, 준왕 조선, 위만조선보다 고대에 있었던 조선이라는 의미로 고조선이라 불렀던 것인데, 준왕의 조선, 위만조선이 고조선을 계승한 국가, 한국 고대국가의 중심에 있는 국가라는 의미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4. 존재한 적도 없는 기자조선의 망령이 중국 동북공정의 근원
우리 역사에서 기자와 기자조선보다 더 큰 비중을 가진 인물과 나라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이 기자와 기자조선이 수·당나라의 고구려 침략 원인, 고구려 멸망의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고, 유학자들의 모화·사대에 명분이 되기도 했다. 또 일제가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근거였다. 하지만 기자동래, 기자조선의 실존 유무에 대한 연구는 의외로 적다. 필자가 중국의 수많은 사서를 뒤져 고증한 바에 의하면, 기자가 조선에 온 적도 없었고, 기자가 건국한 조선이라는 나라, 기자조선은 존재한 적도 없었다. ‘사기’ 송미자세가의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하였다”는 기록과 ‘상서대전’의 “기자가 주나라에 의해 석방된 것을 용납할 수 없어 조선으로 달아났는데, 무왕이 그 말을 듣고 기자를 조선에 봉하였다”라는 기록에 등장하는 조선은 고조선이 아니라 하남성 상구시에 있었던 넓이 50리의 작은 땅이었다. 기자의 이름은 서여이고, 서여를 봉한 이 땅 이름이 하남성 ‘조선(朝鮮)’이었다. 나라 이름은 조선이 아닌 ‘기(箕)’이며, 서여의 작위가 자작이다. 이 때문에 서여를 ‘기 나라의 군주인 자작’이라는 의미로 ‘기자(箕子)’라고 불러온 것이다. 반고가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하였다’는 ‘송미자세가’와 ‘상서대전’ 기록의 조선을 한국의 고대국가인 ‘조선’으로 오인하고, ‘한서’ 지리지에 “은나라가 쇠약해지자 기자가 조선으로 가서 그 백성들에게 예, 의, 밭농사, 누에치기, 벼 짜기, 옷 만들기를 가르쳤다”라는 말을 창작해 넣은 것이다. 이러한 반고의 역사왜곡이 확대재생산되어 존재한 적도 없는 기자조선이 고대 한국을 920년 지배하였던 역사로 왜곡되었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동북아역사재단과 국사편찬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일제와 중국 에 의해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 세워야만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다.
<참고문헌>
1. 김종서, “고조선과 북부여·부여 역사 부정하는 한국사”, 세계일보, 2015.6.15일자. 26면.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등 61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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