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친일파 청산문제

신상구 | 2015.05.06 02:33 | 조회 3276
친일파 청산문제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신상구(辛相龜)
해방 70년 동안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친일파’ 문제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인 1947년 우익과 중도파 정치인들로 구성되었던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은 ‘민족반역자, 부일협력자, 전범, 간상배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했고, 대한민국은 헌법에 근거해 1948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조직했다. 미 군정도 1946년 소위 ‘추수폭동’이 부일 경력을 가진 경찰의 쌀수집으로 인해 일어났다는 점을 인정할 정도로 친일잔재 척결은 광복 후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하지만 모든 노력은 이승만 정권의 방해로 수포로 돌아갔고, 친일파 척결의 상징이었던 김구마저도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안두희의 총탄에 쓰러졌다.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했던 인사들이 다시 정부의 요직에 올랐다. 일본 왕에게 충성했던 경찰과 군인들이 다시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역사학이나 정치학이 아닌 문학 전공의 선구적인 연구자 임종국(林鍾國, 1929 ~ 1989)이 1966년『친일문학론』을 출간할 때까지 ‘친일’이라는 용어의 사용은 금기시되었다.
1980년 서울의 봄이 오자『해방전후사의 인식』을 통해 친일파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1989년『해방전후사의 인식』이 6권으로 마무리될 때까지 친일파 문제는 핵심적인 논의의 하나가 되었다. 너무나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와 함께 친일잔재의 척결이 사회 전반에 걸쳐 사회적 담론으로 자리 잡았다.『실록 친일파』(1991)에서부터『친일파, 그 인간과 논리』(1991),『친일파 죄상기』,『친일파 99인』,『인물로 보는 친일파 역사』(이상 1993) 등 저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영원한 금기(禁忌)는 없었다. 물론 부작용도 없지 않았다. 친일단체에 이름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친일파 명단에 오르는 경우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반민특위에서 규정한 바와 같이 친일파로 규정할 수 있는 철저한 기준이 마련될 필요성도 제기됐다. 그러나 친일잔재 척결문제는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명제였다. 어떤 사회보다도 식민지 시기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강했던 한국 사회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했다는 것은 ‘범죄행위’였다. 2012년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 개인의 문제보다 박정희의 친일문제가 더 많이 회자됐다는 것을 보더라도 친일문제가 갖고 있는 사회적 폭발력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2002년 발간된『친일파를 위한 변명』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이었다. ‘친일’을 옹호한 것이다. 법원이 이 책을 ‘청소년 유해도서’로 판시하면서, 책은 더 유명세를 탔다. 마치 최근『제국의 위안부』를 언론과 법원이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준 것과 유사한 상황이 이미 10년 전에 발생했던 것이다. 『친일파를 위한 변명』이 해프닝으로 잊혀졌다면, 학계에서의 논쟁은 더욱 심각했다. 2002년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서양사)는 한 학회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집착’을 비판했다. 발단은 2001년 민족문제연구소의『친일파 인명사전』 출간 선언이었다. 안병직은 이후 ‘과거사 규명, 무엇이 문제인가’(2005)라는 제하의 글을 발표하면서 한국 사회의 친일파에 대한 ‘강박관념’을 비판했다. 그는 한국 사회의 강박관념이 식민지 시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리고 있으며, 과거사 법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과거사 청산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또 친일잔재 청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식민지의 회색지대』(2003)를 출간한 윤해동 한양대 교수(한국사)는 ‘과연 친일파라는 모호하고 임의적인 대상을 깨끗이 청산해버릴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친일파 청산이란 ‘정신적 위안을 얻기 위한 도덕적 정언명령’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친일과 반일이라는 두 가지 대립된 틀로만 식민지 조선인들을 이해할 수 없으며, 다수의 회색지대가 존재했던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동요하면서 협력하고 저항하는 양면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까? 안병직과 윤해동의 주장은 역사학계와 민족문제연구소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이들의 주장은 소위 ‘식민지근대화론’이라고 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 이데올로기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친일파 인명사전』을 주도한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의 기준을 ‘자발성’과 ‘고위직’에 한정했기 때문에 ‘지원제’를 가장해 강제로 동원된 대학생들, 강제로 이루어진 창씨개명의 경우 친일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밝혔다. 친일파에 대한 논쟁이 중요한 것은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식민지 시대를 반일과 친일의 이분법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당시의 시대상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이후 식민지 시기 연구의 발전에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의 ‘개발’과 ‘근대’가 곧 식민지에 대한 수탈과 함께 ‘카이로 선언’에서 규정한 제국주의적 침략과 팽창을 동반한다는 역사적 사실을 망각한 채 강조된다면, 제국 일본의 식민지 정당화를 위한 논리와 다를 것이 없다. 둘째로 이 논쟁이 정치화되었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은 친일파 논쟁의 한 축이 되었다. 해방 직후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60년간 해결되지 못하면서, 과거사 문제는 남남갈등의 한 이슈가 된 것이다. 한국 사회의 주류는 비주류에 의한 청산작업을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다. 친일파 척결을 주장하는 그룹은 ‘좌빨’로 규정되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제때 해결되지 못했을 때 이데올로기와 관계없이 민족적·국가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본래의 성격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당사자 대부분이 사망한 상황에서 친일파 문제는 더 이상 처벌의 문제가 아니다. 학계에서는 사실 규명의 문제이며, 사회적으로는 정의를 세우는 문제이다. 더 중요하게는 친일파나 식민지근대화론 문제가 한·일 간 감정싸움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런 의미에서 ‘일본에 친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민족을 팔고 은사금을 받은 사람들, 탐욕과 폭력에 근거한 ‘제국주의 전쟁’에 협력한 사람들의 죄상을 밝히는 것이 더 중요한 임무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인류 보편적인 공감대를 얻어낼 수 있다. ‘매국’과 ‘전쟁범죄’의 진상을 밝히지 못할 때, 또 다른 매국과 전쟁범죄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민족문제연구소와 한배달을 중심으로 친일파 조사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재야 사학자들을 중심으로 친일파 청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1. 임종국,『실록 친일파』, 돌베개, 1991.2.1.
2. 박태균, “광복 70주년 특별기획 - 친일파 논쟁, 경향신문, 2015.5.6일자. 8면.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등 61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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