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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 석장승

신상구 | 2015.03.22 23:19 | 조회 2988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 석장승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신상구

장승은 민속학의 기본개념이다. 장승(長丞)은 한국의 마을 또는 절 입구, 길가에 세운 사람 머리 모양의 기둥을 말한다. 장승의 명칭도 여러 가지인데, 조선시대에는 한자로 '후(堠)', '장생(長栍)', '장승(長丞, 張丞,長承)' 등으로 썼다. 그리고 요즈음은 지방에 따라 장승·장성·벅수·법수, 당산할아버지·수살목이라고도 한다. 장승의 종류는 돌로 만든 석장승과 나무로 만든 목장승이 있으며, 전국에 분포한다. 장승의 기원에 대해서는 고대의 성기(性器) 숭배에서 나온 것, 장생고(長生庫)에 속하는 사전(寺田)의 표지(標識)에서 나온 것, 목장승은 솟대(蘇塗)에서, 석장승은 선돌(立石)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등의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확실한 기원은 알 수 없다.

장승의 기능은 첫째 지역간의 경계표 구실, 둘째 이정표 구실, 셋째 마을의 수호신 역할이다. 길가나 마을 경계에 있는 장승에는 그것을 기점으로 한 사방의 주요 고을 및 거리를 표시하였다. 수호신으로 세운 장승에는 이정표시도 없으며, '천하대장군'류의 표시도 없고 마을의 신앙 대상으로서 주로 액병(厄病)을 빌었다. 장승은 보통 남녀로 쌍을 이루며, 남상(男像)은 머리에 관모를 쓰고 전면에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상원대장군(上元大將軍)'이라 새겨 있으며, 여상(女像)은 관이 없고 전면에 '지하대장군(地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하원대장군(下元大將軍)' 등의 글이 새겨 있다.

장소에 따라 채색·형상·크기 등이 다르나 모양이 괴엄(魁嚴)한 점만은 일치한다. 장승에 쓰는 장군명에는 민속적인 신명(神名)이 등장하는데 동쪽에 있는 장승에는 동방청제축귀장군(東方靑帝逐鬼將軍), 서쪽에는 서방백제축귀장군(西方白帝逐鬼將軍), 남쪽에는 남방적제축귀장군(南方赤帝逐鬼將軍), 북쪽에는 북방흑제축귀장군(北方黑帝逐鬼將軍)이라고 써서 세워, 축귀하는 민간 신앙의 성격을 나타낸다. 뿐만 아니라 장승을 서낭당·산신당·솟대와 동등한 것으로 인정하며, 액운이 들었을 때나 질병이 전염되었을 때에는 제사를 지냈다.

그런데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에 사람 키 크기의 특이한 석장승 2기가 위치해 있어 최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왼쪽의 석장승은 왕검(단군)을 상징하는 석장승이고, 오른쪽의 석장승은 환웅을 상징하는 석장승이다. 화강석재로 만든 장승의 앞면 복부에는 예서로 환웅(桓雄), 왕검(王儉)이라 새겼다. 뒷면에는 장백산(長白山), 구룡연(九龍淵)이라고 했다. 백두산이라고 하지 않고 중국에서 부르는 장백산이라고 표기한 점이 눈에 띤다. 구룡연은 우리나라 3대 폭포의 하나인 구룡폭포 아래에 깊이 13m의 연못을 말하는 것 같다.

왼쪽의 석장승은 크기가 182㎝, 두상이 55㎝, 밑둘레가 158㎝이다. 오른쪽의 석장승은 크기가 172㎝, 두상이 56㎝, 밑둘레가 140㎝이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류승국 원장에 의하면, 월천리석장승은 300년 이전의 것으로 단군신앙의 신앙신체로는 희귀한 자료에 속한다.

월천리석장승은 1995년에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30호로 지정되었다. 이 석장승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월천리 출신 매당 허방환(梅堂 許邦煥) 선생이다. 그 후 이 석장승을 문화재로 만드는 데 공헌한 사람은 부안군 향토사학자 김형주 선생이다.

매당은 1894년 진사에 합격한 우재(愚齋) 허권(許權)의 아들로서 부안지방 4대 갑부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대일항쟁기 친일파의 거두였던 전라북도 도지사 김대우(金大羽)와도 재판을 벌여 승소해 화제가 됐다. 부안 사람들은 매당이 똑똑하고 배짱이 있던 분이요, 배일(排日)적인 인물이었다고 평했다. 집에는 고종황제의 아들인 의친왕(義親王)이 친필로 쓴 매당(梅堂)이라는 당호 편액이 처마에 걸려 있었는데, 강도를 당해 지금은 볼 수가 없다.

매당은 매월 초하루 보름이면 개암사(開岩寺)에 불공을 드리려 다녔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초 어느 날 꿈에 산신이 나타나 “내가 거북뫼 도랑에 누웠는데 네가 내 배를 밟고 다니니 내가 배가 아파서 못 살겠다”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그래서 거북뫼(龜山) 도랑에 가서 살펴보니 과연 한 쌍의 석상이 다리로 놓여있었다. 그는 일꾼들을 동원해 집으로 옮겨 세웠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성수 명예교수는 “월천리석장승에 환웅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는 것은 월천리석장승 제작자가『삼국유사』의 '고조선(古朝鮮)조'를 읽었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부안군은 바닷물에 잠겨있었다. 육지와 변산반도가 바닷물로 갈라져 있던 것인데 육지로 변하면서 부안 땅이 된 것이다. 섬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단군문화유적이 남아있는 것”라고 설명했다. 실제 부안군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돌솟대와 돌장승이 많다. 다시 말해 박성수 명예교수는 부안군은 섬이라는 지형 덕분에 외래문화가 들어오기 전의 귀중한 자료가 보존될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참고문헌>

1. 박성수, 『단군문화기행』, 서원, 2000.

2. “장승”, 네이버 두산백과사전, 2015.3.22.

3. 윤한주, “환웅과 단군의 역사를 증언하다! - 단군문화기획 58편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석장승”, 국학뉴스, 2015.3.15일자.

<필자 신상구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등 60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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