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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 정동문 선생의 단군 신앙

신상구 | 2015.03.10 02:00 | 조회 2607

                                      용담 정동문 선생의 단군 신앙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신상구

   용담(龍潭) 정동문(鄭東聞, 1913-2001) 선생은 1913년 5월 19일 충북 청원군 가덕면 상대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20세까지 향리에서 한문을 공부했다.

   정동문 선생은 25세 때인 1935년(소화 12년)에 일제강점기 때부터 나라의 주권은 일제에 빼앗겼으나 우리나라의 국조이신 단군할아버지마저 잊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단군상 사진을 늘 가슴에 품고 다녔다. 그 때 마침 뜻을 같이 하는 6명이 있어 의형제를 맺고 일제시대에 우리나라가 독립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단군 할아버지 사진을 가지고 팔도 명산을 다 다니며 조선독립을 하루 빨리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6명의 의형제가 대전에 기도하러 왔을 때에 어떤 사람이 헌병대에 고발하는 바람에 여섯 의형제 모두가 헌병대에 투옥되어 갖은 고문을 당하며 고초를 겪던 중 일본이 패망하고 해방되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해방 후 정동문 선생은 국조단군을 숭배하는 금강대도(金剛大道)와 대종교(大倧敎)의 신자로 활동했다. 그는 국조 단군 바로세우기와 충효가 바로 서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뜻있는 동지들과 함께 정성을 모아 정진하던 중 1960년 3월 15일 국민들을 분노케 하는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 소식을 들었다. 전국 각지에서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저항하는 항거가 일어나자 정국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정동문 선생이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2동에 거주할 당시 4.19학생의거와 5.16군사혁명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국조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을 근본으로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5.16 군사혁명 직후 박정희 대통령에게 단군전과 단군동상 건립을 건의했다. 그런데 박대통령이 고맙게도 남산 너머 후암동 산 5,000평 부지를 마련해 주셨다. 그래서 그곳에 3층의 단군전 조감도까지 만들어 놓았었다. 단군전 조감도를 보면, 1층은 사월의거학생전, 2층은 충의열사전, 3층은 단군할아버지 사당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기독교계의 결사반대로 국회에서 부결되어 무산되었다. 그러자 정동문 선생은 박근혜 대통령이 주도했던 충효회 관악구 회장으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정동문 선생은 83세로 노쇠하자 더 이상의 활동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아들이 거주하고 있는 대전시 동구 용운동에 위치한 용화사로 내려왔다.

    정동문 선생은 1995년 대전에 내려와서도 충효회 활동을 유지들을 찾아다니며 하였는데, 낯선 곳이라 생소하여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2001년 1월 2일 향년 8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만운 스님이 노쇠하여 절 운영을 하기가 어렵게 되자 2013년 3월에 용화사를 연광(煉光) 정진길(55세) 스님에게 매각하고 대동 펜타뷰아파트로 이사를 가서 노후를 보내고 있다.

    대전 동구 용운동 719번지 성동산 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연광사는 용화사를 헐어내고 그 자리에 지하 2층, 지상 4층의 현대식 고층 건물을 새로 세우고 창건한 사찰이다.

    연광사는 대지 500평, 건평 450평의 6층 건물로 2층에 법당이 마련되어 있다. 연광사 법당에는 부처님 3분을 봉안해 놓았는데, 연옥을 관장하는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시고 있다. 그리고 법당에는 단군상도 봉안되어 있는데, 이 단군상은 용화사 만운 주지 스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그리고 연광사 법당에는 300명의 위패와 영가가 모셔저 있고, 천도제도 지내주고 있다.

    자성 스님은 일본 고려사에서 10여 년 간 수도생활을 하다가 귀국했는데, 2014년 초에 에 연광사가 창건되자 그 절에 잠시 머물다가 수도권의 어느 절로 옮겨갔다. 그리고 경상남도 양산 출생의 등법(속명 : 이상범, 54세) 스님이 주지로 부임해 현교(속명 : 정원종, 57세) 스님과 같이 수도 생활을 하고 있다.

    자성 스님의 증언에 의하면 원래 절에는 부처님만 모시게 되어 있는데 국조 단군상을 버릴 수가 없어 부처님과 같이 모셔놓았다고 한다.

    다행히도 신도들이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고 불공을 드리고 있어 단군상을 철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연광사의 주요 행사가 부처님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단군상이 법당의 동쪽 구석에 홀로 봉안되어 있어, 신도들로부터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

                                                  <참고문헌>

1. 북애자 저 · 민영순 역,『규원사화』, 다운샘, 2012.2.15.

2. 안경전 역주,『환단고기 역주본(원전)』, 상생출판, 2012.6.20.

3. 신상구,「태안지역 무속문화의 선도문화적 고찰」, 국학연구원,『선도문화』제13집,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출판부, 2012.8. pp.515-551.

4. 이전오, “용운동 용화사에 단군영정이, 사월혁명비, 충효비가 서게 된 까닭”, 대전작가회의,『작가마당』제25호, 도서출판 심지, 2014.11.21. pp.212-236.

5. 이한배, “한밭불교회, 호국영령 영산대집회 봉행”, 불교공뉴스, 2011.6.25일자.

6. “갈수록 설 자리 잃는 단군상”. 연합뉴스, 2014.10.2일자.

<도움말 주신 분>

1. 대전광역시 동구 용운동 719번지 연광사 자성 스님.

2. 대전광역시 동구 용운동 719번지 연광사 현교(속명 : 鄭元鍾, 57세) 스님 증언.

3. 대전광역시 동구 용운동 719번지 연광사 연광 정진길(55세) 스님.2888>

4. 2012.6.17일과 2012.6.20일 용화사 정만운(鄭萬雲) 주지스님 증언.

<필자 신상구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등 60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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