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현행 헌법은 민족정신 대 말살사건

윌버 | 2012.04.25 11:34 | 조회 6146

현행 헌법은 민족정신 대 말살사건

일제의 역사 왜곡과 말살

- 최태영 박사

《조선총독 10인》이라는 책자에서도 잘 나와 있듯이, 현재 구 조선총독부 건물이 철거는 됐으나 일제통치는 총독부 건물이 한 것이 아니라 조선총독 이하 일제관리들이 장본인인데 일제침략시대 당시 조선총독은 일왕의 대리권자로서 한국(조선)의 제반 통치행정을 책임지고 있었던 장본인이자, 우리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처단 제1호'의 인물이었습니다.


조선총독은 행정․입법․사법․군사통수권까지 장악한 채 한국을 포괄적으로 통치했는데 형식상 일본총리 하에 있었으나 한국통치와 관련해서는 대부분 전권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 바로 조선총독이었습니다.


일제침략시대 말기 중국이나 일본 본토는 물론 심지어는 남양군도로까지 한국인을 학병, 징병, 징용, 정신대로 강제 동원하였던 장본인이자, 특히 일제 지도층의 명령아래 4331년 우리 역사 중 2300년 실사인 '단군조선'을 비롯한 한국사 왜곡과 말살에 앞장섰던 장본인이 바로 조선총독들입니다.


'단군조선을 비롯한 한국사 왜곡과 말살 실태'에 대해서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위원회가 편찬한 <조선사편수회사업개요>를 비롯, <제헌국회사>와 일제침략시대 때 군수를 했던 문정창씨의 <군국일본조선강점 36년사> 그리고 30여 년 동안 ‘단군조선’ 관계 사료(史料)를 수집, 정리한 나와 친분이 있는 이상시(李相時, 1932~) 변호사가〈조선일보〉1985년 10월 4일자 11면 머리기사로 폭로한『일제의 한국 고사서(古史書) 대량 분서(焚書)』의 기사와 『일제의 한국상고사 말살실태와 단군실사』라는 표제의 논문집, <단군실사에 관한 고증 연구 우리 상고사는 다시 씌어져야 한다>는 저서에 잘나와 있습니다.


이상시 변호사는 “검사시절의 수사경험을 살려 한국상고사에 관한 한․중․일 문헌을 철저하게 비교 분석했다”고 말하더군요. 특히 조선일보 편집부국장으로 있는 서희건(徐熙乾, 1944~)씨가 1985년 10월 20일자부터 1986년 10월 26일자까지 총 51회에 걸쳐 '특별기획'으로 연재한『단군조선은 이렇게 말살됐다』와 광복 41주년 '특별기획'으로 1986년 8월 15일부터 말일까지 11회 연재한『국사교과서 새로 써야한다』에 잘 나와 있습니다.


1985년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으로 있던 서희건씨의『단군조선은 이렇게 말살됐다』를 장기 연재 할 수 있도록 지면을 할애해 주고 격려를 해 준 분들이 안병훈(安秉勳, 1938~) 조선일보 전무(편집인), 인보길(印輔吉, 1940~) 디지틀조선일보 대표이사, 조병철(曺秉喆, 1935~) 전 주간조선 주간(전 조선일보 편집국장 대우), 이남규(李南圭; 1936~) 전 조선일보 편집부국장 겸 문화부장입니다.


1910년 한국을 강탈한 일제는 심지어 우리 소학교(현 초등학교) 교과서까지 거두어 불태웠습니다.


1910년 8월 29일 한국을 강탈한 일제는 1906년에 설치했던 통감부를 '조선총독부'로 바꾸고, 1910년 10월 1일 관보(官報)를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총독부 ‘관보’를 근거로 하면 일본 군부의 최고 권력자였고, 한국민의 민족운동을 압살했던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는 취임하자, 1910년 11월부터 전국의 각 도․군․경찰서를 동원하여 1911년 12월말까지 1년 2개월 동안 계속된 제1차 전국 서적 색출에서 '단군조선' 관계 고사서 등 51종 20여만 권의 사서를 수거 불태웠다고 광복 후 출간된 <제헌국회사>와 문정창(文定昌)씨의 저서인 <군국일본조선 강점36년사>는 밝히고 있습니다.


사료 수집기간은 1910년 11월부터 <조선사> 완간 직전인 1937년까지 27년간 계속되었습니다.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단군조선 등 우리의 역사를 왜곡․말살하기 위해 마련한, 1938년 6월에 발행된 <조선사편수회사업개요(朝鮮史編修會事業槪要)>에서는 1923년부터 1937년까지 15년 동안 차입한 사료가 무려 4,950종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1910년 11월부터 1년 2개월 동안 수거된 서적이 51종에 20여만 권이고, 그 뒤 15년 동안 차입한 사료가 4천 9백 50종이라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우리 서적을 압수하고 불태웠는지 알 길이 없는 것이지요.

일제는 단군조선 등 한국사 관련 사료 등을 수집시 한반도는 물론 일본, 중국 및 만주에 있는 것도 수집하였습니다.


일본의 사학자이면서 평론가인 하라타사카에루(原田榮)의 저서 <역사와 현대> (1981년 4월 25일 발행)에 보면, “1923년 7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찬위원회 구로이다 가쓰미(黑板勝美) 고문이 대마도에 사료탐방을 하였을 때 한국과 관계가 있는 문서, 고기록 등이 다수 대주구 번주(藩主․영주) 종백작가(宗伯爵家)에 있는 것을 알고, 고문서류 6만 6천 469매, 고기록류 3천 576책, 고지도 34매 등을 은폐 또는 분서(焚書)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일제의 우리 고사서 인멸은 단군조선 등 한국사를 왜곡하고 말살하기 위한 전초작업이었던 것입니다. 조선총독부 취조국은 단군조선 등 한국사를 왜곡 편찬하는데 필요한 일부 서적만 남기고 모두 불태웠습니다. 현재 단군조선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같은 사서 등을 중심으로 남겨 놓았을 것입니다. 무단정치로 악명이 높던 초대 총독은 취조국이 관장하던 업무를 1915년 중추원으로 이관하고, '편찬과'를 설치하여 <조선반도사> 편찬을 담당시켰습니다.


새로운 <조선반도사>를 만들려는 일제는 전국에서 압수․분서한 이외에 한국사 왜곡을 위해 '근거자료'로 일부 사서를 남겨놓고, 총독부 취조국에서 1915년 중추원 편찬과로 편사업무를 이전하기 앞서 이들 사료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왜곡편사계획'을 수립했음이 분명합니다.


우리민족의 대역적인 이완용과 권중현 등 부일역적들을 고문으로 앉힌 조선총독부 중추원은 1916년 1월 중추원 참의와 부참의 15명에게 편사업무를 맡기고, 일본 동경제국대학 구로이다 가쓰미(黑板勝美) 박사와 일본 경도제국대학 미우라(三浦周行) 교수, 경도제대 이마니시(今西龍) 등 3인에게 지도․감독을 의뢰하였습니다.


<조선사편수회사업개요> 4~7면을 보면, 한국사료의 대량 분서와 한국사의 왜곡편찬 배경을 극명하게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서(즉 왜곡된 역사서)를 읽히는 것이 조선인에 대한 동화(同化)의 목적을 달성하는 첩경이며, 또한 그 효과도 현저할 것이다…. 이것이 조선반도사 편찬이 필요한 이유요, 또한 편찬사업의 근본정신이다”
조선총독부가 중추원을 앞세워 전국적으로 각 도청․군청․경찰서 등 위압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벌인 제2차 '사료수색'에서는 '역사'와 '전통문화예술' 그리고 '인물' 등 압수범위도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헌병경찰제도로 무단통치를 강행했고, 단군조선 등 한국사를 말살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던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는 일본 내각 총리대신으로 전임하고, 그 뒤 3․1운동을 철저히 탄압했던 제2대 총독에 이어, 1919년 8월 12일 문화정치를 표방하고 부임한 제3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는 교활하게도 한국사람을 반일본인으로 만드는 소위 '교육시책'에서


“먼저 조선사람들의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그들의 선조와 선인들의 무위(無爲), 무능과 악행 등을 들추어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조선인 청소년들이 그 부조(父祖)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그것을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고, 그 결과 조선인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史蹟)에 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어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니 그 때에 일본사적, 일본인물, 일본문화를 소개하면 그 동화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일본 이 조선인을 반(半)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인 것이다.”


라고 1922년 총독 사이토가 '조선사편수사업'을 지휘하며 말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단군조선을 비롯 한국사를 왜곡․말살하는데 앞장을 선 제3대와 제5대 총독을 지낸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쿤스(E․W․Koons)가 교장으로 있고, 내가 경신학교 교무주임(지금의 부교장)으로 있을 당시인 1926년 9월 경신학교 대강당 낙성식 때 사이토 총독이 참석해 축사를 했는데 이 때부터 안면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 뒤 1934년~1937년까지 보전 논문집 편집책임을 맡게 된 이유로 인해 조선총독부를 그 누구보다도 많이 다니게 되었습니다.


일왕의 대리권자로서 이 땅에서 저지른 행악의 총책임자들인 조선총독중 직접 대면한 사람은 제3대와 제5대 총독이었던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입니다.


총독보다는 조선총독부 학무국장(지금의 교육부장관)을 많이 대했습니다.


1920년대 일제의 정책은 수탈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우리민족을 분열시키고, '역사'를 단절시키는 수준에까지 나갔습니다.


일본은 '자생왕조'라는 허구의 합리화 이외에도, 당시 3․1운동으로 고조된 한국인의 독립의식을 희석시킬 고차원의 식민지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더욱이 '역사' 왜곡을 자행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의 '역사의식'을 흐리게 하여 장기적인 식민지화의 포석을 굳히는데 있어서, 무력으로 한국을 병탄한 일제는 군사적․경제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역사적․문화적 측면'에 있어서도 일본이 한반도 지역보다 우위에 있었음을 조작, 교육하는 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그 시책의 하나로서 1922년 12월 훈령(訓令) 제64호 ‘조선사편찬위원회규정’을 제정, 공포하여 새롭게 ‘조선사편찬위원회’를 설치하고,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을 위원장으로 주요인물을 중심으로 한 15명의 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완용, 권중현 등 부일 역적들과 일본인 어용학자들이 합작하여 떠벌려 놓은 이른바 ‘조선사편찬사업’이 한국인 학자들의 외면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자 조선총독부 총독인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는 '조선사편찬위원회'를 확대․개편하였습니다.


그리고 명칭을 ‘조선사편수회’로 바꾸고, 일황(日皇)의 칙령으로 설치근거의 격(格)을 높였습니다.


1925년 6월에는 '일황칙령' 제218호로 ‘조선사편수회관제’를 제정․공포하고 조선총독부 총독이 직할하는 '독립관청'으로 승격시켰습니다.


관제(官制)를 새로 제정한 다음달인 1925년 7월 개편한 조선사편수회의 참여인물들을 보면, 일제가 얼마나 단군조선 등 한국사 왜곡편찬에 심혈을 기울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조선사편수회 고문에 부일 역적들인 이완용, 권중현을 다시 앉히고 박영효, 이윤용 그리고 일본인 거물들과 어용학자들을 위촉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조선사편수회의 위원장급 회장들로는 현직 정무총감들이 맡아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일본인들을 참여 시켰습니다.


1910년 11월부터 1937년까지 무려 27년간의 사료수집 기간을 제외한 35권의 <조선사>편찬기간만도 1922년 12월 '조선사편찬위원회' 설치 때부터 1938년 3월 완료되기까지 만 16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이 사업을 위해 일제가 쓴 예산만도 엄청났습니다. 일제가 본격적으로 그들의 역사보다 2천년이나 앞서있는 단군조선 등 우리의 '역사'를 왜곡․말살시키기 위해 '일황칙령'으로 설치근거의 격(格)을 높이고, 조선총독부 총독이 직할하는 '독립관청'으로 승격시킨 ‘조선사편수회’에서 일본인 이마니시(今西龍)와 한국인 ○○○, ○○○ 박사 등 세 사람이 '단군조선'을 '신화'로 왜곡하고 말살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장본인들입니다.


일본인 이마니시(今西龍)는 <조선사> 편찬의 주역으로 '단군조선' 등 한국사 왜곡 업무에 조선사 편찬 초기부터 16년 2개월 동안 앞장서 관여해 왔는데 이마니시(今西龍)는 1921년 <단군고(檀君考)>라는 '단군신화설'을 만들어 그의 모교인 경도제국대학에 <조선고사의 연구(朝鮮古史の硏究)>라는 논문을 제출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습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1916년 1월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 때는 새로 편찬할 한국사의 시대구분을 ‘상고․삼한(上古․三韓)’, 즉 '단군조선'을 집어넣기로 결의했으나, 7년 후인 1923년 1월 8일 '조선사편찬위원회' 제1차 위원회에 서는 ‘상고․삼한(上古․三韓)’을 단순히 ‘삼국이전’이라는 한편으로 축소하여 놓고, 1925년 10월 8일 '조선사편수회' 제1차 위원회에서는 ‘삼국이전’과 ‘삼국시대’를 줄여 ‘신라통일이전’이란 한편으로 하였습니다.
이처럼 일제는 '단군조선' 등을 없애려고 편찬기구의 개편 때마다 상한선을 아래로만 끌어내렸습니다.


특히 일제는 <조선사>가 공명정대한 학술적 사서(史書)라는 것을 강조하였는데 이것을 가시적으로 보장해 주는 편찬체제가 바로 '편년체'였습니다.


당시 사학계에 풍미되었던 실증사학을 보장해 주는 듯이 간주되었던 것이 편년체였는데 이것의 근본목적은《'취사선택'하여 남긴 사서에서 이 사서들을 기준으로》연도가 정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단군조선'을 사서에서 제외시켜 버리려는데 있었습니다.


또한 이 연장선에서 단군조선을 계승한 부여 등 열국시대를 말살시키려 했던 데도 그 일단의 목적을 두었습니다. 실제로 <조선사>에 이러한 목적이 관철되었는데 ○○○, ○○ ○ 박사 등 식민사학자들이 '실증사학'을 도입함으로써 역사학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 이면에는 이와 같은 의도가 숨어 있었습니다.


한민족의 기원과 관련되는 사서들을 모조리 탈취, 소각, 인멸했던 일제는 단지 고려시대 중엽과 말엽의 사서인 <삼국사기(三國史記)>(1145년 편찬)와 <삼국유사(三國遺事)>(1285년 편찬) 등 '취사선택'하여 이와 같은 사서들만 남겨놓고, 그 이전의 사서들은 소각함으로써 그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단군조선 등 삼국이전을 제대로 기록하지 않은 <삼국사기>와 단군조선을 불교신화로 각색한 <삼국유사>는 이유야 어찌됐든, 결국 이 두 사서는 일제가 단군조선을 부정 4331년 우리 역사 중 2300년 역사를 말살시키는데 활용할 수 있는 '근거'를 일제에 제시해 주는 결과를 초래한 셈입니다.


일제는 <조선사> 편찬작업을 통하여 '취사선택'하여 남긴, 즉 단군조선을 제대로 언급하지 않은 <삼국사기>를 한국상고사의 기본사료로 못박아 단군조선을 말살, '한국사'를 2천년 역사로 축소시키는 데 성공하였고, 단군조선을 불교신화로 각색한 <삼국유사>의 기록은 사설(史設)로 규제해 버림으로써 단군조선을 '신화'로 왜곡 처리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단군조선을 비롯 우리 역사가 왜곡 말살된 이유'는 많은 전란을 겪으면서 사료들의 소실과 새 왕조가 역사에 등장할 때마다 전(前)왕조의 업적을 강등하고 파괴시킨 자괴행위, 중국을 위하는 사대사관이 낳은 역사왜곡 등이 있지만, 특히 일제침략시대 때 우리 역사를 왜곡․말살하여 교육하는, 즉 우리민족의 말살정책사관인 '식민사관'에 의한 철저한 역사 왜곡이 그 근본이유입니다.

twitter facebook kakaotalk kakaostory 네이버 밴드 구글+
공유(greatcorea)
도움말
사이트를 드러내지 않고, 컨텐츠만 SNS에 붙여넣을수 있습니다.
499개(24/25페이지)
환단고기-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역사관련 사이트 링크 모음 환단스토리 7807 2020.11.06
38 우리의 신교 문명의 전통을 잃어버린 안타까움.. 환단스토리 4760 2012.08.20
37 일본인의 컴플렉스 환단스토리 5795 2012.08.20
36 우리 민족의 이동은 서->동이 아닐 것입니다. 비밀글 환단스토리 9 2012.07.09
35 지영 탐방 전라북도 ‘전주·익산’ ... 사진 아름다운 4825 2012.06.26
34 환단고기 해제 전체 목차 환단스토리 5150 2012.06.22
33 우리 글 변천과정 38→28→24 어하라 8138 2012.06.19
32 아름다운 한지의 변신 아름다운 5457 2012.06.15
31 환단고기 위서론의 모순 [4] 알캥이 5918 2012.06.13
30 기독교에 의한 역사 왜곡 박찬화 5071 2012.05.04
29 불교에 의한 역사왜곡 박찬화 5761 2012.05.04
28 유교에 의한 한민족사의 왜곡 실상 박찬화 5184 2012.05.04
27 밝혀지는 신교神敎문화 알캥이 4949 2012.05.11
26 신교의 근본 정신이 녹아 있는 음부경( 陰符經) 전문. 알캥이 7169 2012.05.11
25 뭇종교의 시원(始原) - 신교(神敎) 알캥이 5055 2012.05.11
24 북한 최근의 생활모습 - HSG 사진 알캥이 6388 2012.04.29
23 김홍신씨 “발해역사 제대로 복원하는 게 국회의원 열번하는 것보다 보람” 알캥이 5352 2012.04.29
22 뉴라이트 ‘대안 교과서’에서 달라지는 인물 평가 사진 알캥이 5076 2012.04.29
21 “2071년 한반도 기온 4도 상승… 고산식물 멸종” 사진 알캥이 5215 2012.04.29
20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사진 알캥이 5955 2012.04.29
19 흑피옥은 한민족 고대문명 풀 열쇠 사진 알캥이 5425 2012.04.29
 
모바일 사이트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