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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컴플렉스

환단스토리 | 2012.08.20 22:30 | 조회 5803
‘ 일본인의 한민족에 대한 콤플렉스 2000년’ 내가 읽은 책의 정확한 제목이다.

일일이 나열하자면 한 문장과 맞먹을 정도로 긴 제목이다.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한 마디로 재미있을 것 같아서이다. 나는 물론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거의 무조건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본 사람들을 싫어한다. 웬만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일본에 호의적인 말을 하거나 칭찬을 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 사람이라면 칭찬 받을 만한 일이라도 일본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비난받을 이유가 충분히 된다는 듯이 험담을 해대는 것이다. 나 역시 거기서 예외가 될수는 없다. 어릴때 부터 받아온 일본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에 기들여졌고 여기에다 커서는 일본이 우리나라에 저질렀던 그 긴 세월동안의 수탈의 역사를 배우면서 점점 더 일본에 대한 혐오감, 심하게 말하면 증오심을 키워나갔던 것이다. 일본은 왠지 꼭 미워해야할 대상, 미워하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듯한 대상으로 여겨왔던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충분한 이유와 명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나라에 대한 대표적인 침략,약탈의 역사인 일제 36년 이전에도 벌써부터 우리나라에 끊임없는 피해를 주었던 것이다. 차라리 피해를 주고 모르는 척이나 하면 몰라도 얄밉게도 쳐들어올때는 그렇게도 모질게 해놓고는 자신들에게 필요할때는 언제나 웃음을 지으며 무척 친해지고 싶어하는 척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속으로는 전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으면서 그러는척 싫다. 임진왜란 이전에도 끊임없이 우리나라에 왜구를 보내어 부녀자를 겁탈하고 식량과 재물을 빼앗아 가고 하면서도 자기네들이 선진문물을 받을들이고 싶을때는 언제든지 잘못을 비는 척 하면서 통신사들을 보내주기를 우리나라에 요청하는 것이다. 앞에서는 웃으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구하고 뒤로는 뒤통수를 때리는 겪이다. 그들이 보통 일본국민이 아니라 범죄자라는 변명하나만으로 그렇게 해온 것이다. 또 임진왜란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코를 베고 귀를 베고 코무덤,귀무덤까지 만들어 자기네 나라에 가져가고 수많은 양민 포로들을 잡아가고 우리의 유학자,도공, 활판인쇄공,불상,서적,등등 헤아리수도 없을 만큼 수 많은 물건들과 귀중한 기술자들을 데려가고 우리 국토의 무려 삼분의 이나 황무지로 만들어 놓고가서는 나중에 뻔뻔스럽게도 다시 우리나라에 통신사를 요청해 자기네들에게 선진문물을 전해줄것을 요청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렇지 그렇게 당하고도 무슨 인심이 그렇게 후한지 교역을 다시 시작했다.만약 내가 그 시대 임금이었다면 절대로 그러지도 않았을 것이며 일본을 그냥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쓸데없는 당파싸움이나 하며 제 살 파먹기에 가렴주구하기에 바빠 정작 경계해야할 요주의 대상은 그냥 내버려 두는 바람에 일제 36년 동안 그 많은 수모와 약탈을 당한 것이다.이처럼 우리는 당했으니까 그래서 일본을 미워한다는 명문이라도 있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우리를 왜 그렇게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일까.

일본인들이 우리를 싫어하고 괴롭히는 이유를 나름대로 분석해본 책이 ‘일본인의 한민족에 대한 콤플렉스 2000년이라는 책이다’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이 책에는 그 다지 그 원인에 대해서 자세히 적어놓은 것 같지는 않다 그저 개괄적인 내용 몇줄에 주로 일본의 역사, 특히 도래인이 일본에 끼친 영향에 대해 중점을 맞춘 역사에 많은 중점을 둔것 같다. 책의 분량이 워낙 작은 탓에 많은 것은 기대할수 없겠지만 그래도 일본사람들이 우리들을 싫어하는 이유중의 하나를 어렴풋이 알게 되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흔히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표현한다. 여기에서 가깝다는 것은 거리상의 거리를 말하는 것이고 멀다는 것은 마음을 거리를 말하는 것이다. 거리는 가까워도 마음은 거리가 먼 다른 나라보다도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는 일본에 당한 것이 있어 거리를 느낀다. 그렇다면 우리게 당한 것도 없는 일본은 왜 우리에게 적대감을 느끼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흔히들 메이지 유신 때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대한 적대감을 주입식으로 심어왔다고 한다. 또한 이것도 무시할수 없는 이유중에 하나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이런 눈에 확 들어오는 이유보다 좀 더 근원적이고 좀 더 오래된 그런 이유를 주장하고 있다. 그 내용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간단히 살펴 보면 일본인의 대부분이 한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거의 구십 퍼센트라고 한다. 물론 이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건너간 사람들이라면 우리에게 적대감을 가질 이유는 없다. 문제는 정상적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아니었다는데 있다. 물론 다른 나라들도 그런면이 있지만 원래 우리나라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나라가 아닌가. 예로부터 외국에서의 침입도 거의 천번에 이르고 있고 원래 우리끼리 있으면 서로 싸우기를 그렇게 좋아할수가 없었던 것같다. 특히 삼국시대 무렵 신라의 통일정책에 따라 차례 차례로 다른 여러 나라가 사라져 갔다. 먼저 가야를 정복했는데 이때 가야가 망하면서 가야의 지배층이 먼저 사람들을 이끌고 일본으로 떠났다. 원래 전쟁에서 지면 지배층들을 그 자리에서 남자들은 죽임을 당했고 여자들은 노예가 되었다. 그래서 가야가 망하면서 신라에 굴복하지 않은 왕실사람들은 일본에 건너가 새로운 땅에서 살아갔다. 또 백제가 망하고 고구려가 망하고 하면서 계속해서 본토에서 살수 없었던 왕실 사람들이 일본으로 몰려갔다고 한다. 즉 한반도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갔던 곳 남아 있는 본토사람들에 대한 강렬한 미움을 가졌던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다. 두번째로 일본에 건너갔던 사람들의 부류는 최하층 부류인 부랑자 ,범죄인, 가난한 사람,유랑인등이었다. 이 사람들도 역시 본토에서는 살수없어서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반도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강렬한 증오심이다. 필자는 이 증오심이 대대로 거쳐 내려오면서 2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남아 있어 좀 더 근본적인 한일 앙숙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그 거둘수 없는 미움이 지금까지 남아 끊임없는 적대행위와 원수갚음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나타나는 두드러진 현상으로 일본인들이 자신들이 한반도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을 들고 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성을 마구 바꾸어 자신의 조상을 숨기고 확실한 도래인의 성씨를 가진 사람들도 자신들의 성씨가 온 곳은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이라고 우기고 있다. 그래서 황실에서도 우리나라와 관계가 있는 자료는 계속 불살라 없애왔으며 지금 현재에도 그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조작된 역사기록인 자신들의 고대 기록을 마구 조작하여 말도 안되는 터무니없는 삼한 정벌이나 미마나국 건설따위 주장을 해대고 자신들의 후손들에게도 교육시키고 있다. 솔직히 나는 나 자신을 현실주의 자라고 생각한다. 이주할때부터 가졌던 증오심을 이천년이 넘도록 키워와서 생긴것이 우리나라에 대한 증오심이라는 필자의 말은 감상적인 대일 감정만으로 인정하기엔 너무나 객관적이지 못한 점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해도 이 사람의 주장은 충분히 한일 적대 관계의 이유중의 하나라고 볼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일본 사람들은 정말로 우리 나라 사람을 그렇게 미워하나.이 책에서는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거기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싫어하는 경향은 우리나라 관련뉴스에서도 찾아볼수가 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 대해 보도할 때는 좋은 점보다는 나쁜점 을 골라서 추려 보여준다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물론 뉴스는 우리나라에 나쁜점이 많아서 그랬다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향이 일반 뉴스가 아닌 스포츠 중계같은데서도 나타난다고 한다. 우리나라 선수가 이기는 영광스런 장면 같은 것은 거의 내보내지 않고 우리나라 선수가 다른 나라 선수에게 당하는 비참한 모습을 주로 모아서 보내준다고 한다. 비단 스포츠 중계 뿐만이 아니라 자신들이 개최하는 스포츠 대회에서도 우리나라에 대한 차별대우는 확연히 드러난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최근에 열렸던 1994년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을 보면 확실히 알수 있다. 우리나라선수들의 연습시간을 거의 대부분 점신시간으로 정해 놓아 우리 선수들이 연습을 하려면 점심을 굶어야 하고 밥을 먹으려면 연습을 할수 없게 만들어 놓거나 볼링 같은 경우엔 아예 우리 선수들에게 연습장조차 마련해 주지 않아 시내 사설 연습장을 전전하며 연습하게 하여 우리 선수단들이 정식으로 항의하는 소동까지 일으키게 만들었다. 아무리 싫어도 그렇지 최소한의 자존심이 있다면 어떻게 그런식으로 행동할수 있겠는가. 이런일을 당할때마다 느끼는 점은 과연 우리가 강대국이었다면 일본이 감히 그런식으로 우리를 우롱할수 있었겠냐는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우습게 보이고 약해 보였으면 그런 식으로 행동할수 있었겠느냔 말이다. 이럴 때는 그저 국력이 키워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이런 점에서는 일본만이 그런것은 아니다. 단지 강대국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국제 사회에서 무시당하는 경우가 있을 때마다 화가 난다. 그리고 아무리 약소국이라고 해도 필요 이상으로 굽히고 들어가는 것을 볼때는 정말 속이 뒤집힐 정도이다. 일본이 히로시마 게임에서 보여준 차별이 이것뿐이었겠는가. 나는 일본과 싸웠던 여자농구 결승과 남자농구를 보았다. 여자 농구에서는 물론 편파적이긴 했지만 처음에는 자기들이 우세해서 그런지 그렇게 티를 태지는 않았다. 그런데 후반에 들어가면서 부터 우리나라가 착실히 일본을 따라잡아가고 역전의 기회를 맞을 때마다 심판이 심하게 일본의 편을 드는 것이다. 오죽하면 해설위원이 이건 우리나라 사람 다섯명과 일본사람 여섯명이 싸우는 것과 같다고 했으며 왜만하면 심판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은데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말했을까. 보통 심판에 대해서는 왠만한 편파적인 판정이 나와도 군말 안하는 것이 거의 관례처럼 되어있다. 그런데도 해설의원이 그런 말을 한것을 보면 오죽 불공정했을까. 일반인인 내가 봐도 열불이 나서 속이 뒤집혀질 정도였다. 공정한 심판을 위해서 제 삼 세계에서 모셔온 심판이 그 모양이었다. 아닌 말로 일본에서 데려온 심판이니 일본에 뇌물이라도 먹은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저도 심판으로서의 자좀심이 있지 어떻게 리바운드하다가 몸싸움이 나도 우리 파울 ,일본이 발을 걸오도 모르는 척,우리가 엔드라인의 가쪽만 살짝 밟아도-일 센티도 채 안될 것이다-엔드라인을 벗어났다고 선언하고, 일본이 반칙을 하면 점핑볼,아무것도 아닌 일에는 우리 파울이라고 한두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그럴수가 있나. 그러고도 얼굴을 들고 다닐수가 있는지 모르겠다. 남자 농구도 그랬다. 남자농구는 초반부터 실력차가 너무 나니까 불공정한 판정이 초반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우리 선수중의 한 명은 너무나 어이가 없어 얼굴이 반쯤 넋이 나가 버렸고 거의 더불스코어로 이겨도 선수들은 거의 기분이 나빠보였다.나도 너무나 화가 나서 당장 달려가서 심판을 뻥 차버리고 싶었다. 단지 스포츠나 보도방송에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한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차별이 있는 것이다. 칠십만 한인 동포들이 살아가면서 받고 있는 설움,한국 유학생들은 자취방이나 하숙방도 구하기가 어려워 한국 사람이란 걸 숨기기도 한다고 한다. 이 책에 자료료 일본인들이 우리를 얼마나 싫어하는 지에 대해 조사해 놓은게 있다. 1963년 3월 세카이지에서 실시한 일본인 의식조사에서 일본인들이 조사대상 열 여섯 만족중 에서 한민족의 순위는 열 다섯번째 였으며 좋아하는 사람의 퍼센트지는 백프로 중 겨우 이 프로였다고 한다. 또 1967년에 조사한 NHK의 ‘편견의 구조’에서는 조선인을 좋아한다는 답은 극소수이고 싫어하는 정도는 흑인다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 사람들중에 한국민들을 만나본 사람들은 얼마나 되냐하면 거의 없다. 한국 사람들과는 만나본 적도 없으면서 무조건적으로 한국사람들을 싫어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이 일본인을 싫어하고 일본인이라고는 구경조차 해보지 않은 학생들도 일본이라는 말만들어도 알레르기 반응 일으키듯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과거에 당했던 그 많은 고통과 수모가 아랫새대 사람에게도 전해져 일본사람들을 미워하는 것이라지만 일본인들은 별로 객관적이지도 못한 단순한 편견 ‘한국민들은 더럽다,한국민들은 가난하다,한국민들은 불쌍하다,한국민들은 배속이 시꺼멓다.’는 등등의 말도 안돼는 이유를 우리를 싫어하는 근거라고 대고 있다. 가난한 걸로 치자면 우리나라보다 널린게 가난한 나라이고 위생적걸로 쳐도 마찬가지이다. 정말로 우리가 지난세대에 당한 것이 억울해서 그들을 미워하는 것처럼 그들도 이천년전에 본토에서 쫓겨나다시피 이곳에 건너온 것을 아직도 잊지 못해 그러는 것일까.솔직히 나는 일본사람들이 우리를 미워하건 말건 상관이 없다. 내가 일본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그건 내 마음이고 내가 정할 일이기 때문이다.그러니 내가 그들을 싫어하는 데 그들더러 날 좋아하라고 강요할수는 없는 일 아닌가. 다만 내 생각은 그들은 스스로 반성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안하는 인간들이니만큼 우리가 국력을 키워서 그들보다 우위에 서서 그들에게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우리에게 사과하기를 바란다는 콩에서 싹나기를 바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우리가 정당한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대접받을 만한 국력을 키우는 것이다.이것은 비단 일본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전 세계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말이 인도주의적 평화주의적 세계관이지 다른 나라가 언제 우리 이익에 신경이나 써줄것 같은가 그저 우리가 힘을 길러야지 강대국이 되고 강대국이 되어야 대접을 받는 것이다.확실하게 눌러주지 않으면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다. 우리가 힘이 강할때에도 조금마한 틈만 보여도 끊임없이 괴롭혔던 일본인데 자기들이 힘이 세지면 얼마나 우리를 괴롭히는지는 일제 삼십육년 동안에 지겹도록 알아았을 것이다.한반도에서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에 쳐들어왔었던 일이 모두 합해 약 천번정도라고 한다. 이들 중에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에 싸움을 걸었던 일도 물론 있었지만 이건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고 규모에 관계없이 횟수로만 친다면 그 대부분이 일본이 우리나라를 괴롭힌 역사라고 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임진왜란,일제 식민지 시대와 그때 당시 있었던 간토 대지진때의 대량 살인 만행, 간토 대지진의 살인 만행 사건은 일본인들이 자신들이 당했던 재해를 이유없이 한국민들에게 분풀이 한 것이다. 일본은 원래 섬나라로서 지진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지진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평소에도 일어나고 있는 지진을 이용해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학살하는 정당한 이유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당시 군정 당국이 온갖 유언비어를 만들어 일본인들의 감정을 격하게 만들어 자신들이 앞장서서 한국민들을 학살하게 만든것이다. 이 때의 피해 보고 조사서도 여러가지이다. 가장 차이를 보이는 한국 독립 운동사 애국동지 원호회가 만든 피해자수는 육천 육백 육십일 명인데 일본 내무성에서는 중인인 세명과 조선인으로 오인하여 죽인 일본인 오십 아홉명까지 합해서 겨우 이백명이 죽었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기는 커녕 감출수 있는 건 최대한 감추고 인정할 것도 최대한 인정하지 않고 버티다가 할수 없을때 겨우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도 사실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축소해가지고 발표하는 반성할줄 모르는 일본인들의 성격을 여기서도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물론 자기 잘못을 반성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것은 비단 일본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 ,세계 어느 민족이라도 힘든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숨기기만 하고 부정하기만 하기에는 저지른 잘못이 너무 크지 않은가. 또한 그때 잘못을 저지른 세대들은 거의 죽은 이 마당에 이제는 좀 솔직하게 말할때도 되지 않았는가. 그때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보상은 못해줄 망정 자신들이 지은 죄는 솔직히 인정해야 하지 않는가. 이런 점에서 일본인들과 철저히 비교되는 것은 바로 독일이다. 독일도 유태인이라는 민족에게 일본인이 우리민족에게 한 것 못지 않게 모진 학대와 탄압 대략 살륙을 감행했다. 그 뒤 전쟁이 끝난뒤 독일은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고 피해를 당한 유태인들을 보상을 받지 못했으면 자신들이 직접 찾아 나서서라도 꼭 보상을 해주려고 노력했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해서 그들이 지난날에 했던 일들이 용서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후세대로서 할수 있는 최대한 죄갚음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일본은 보상은 커녕 제대로된 사과 한 마디 할 줄 모른 철면피들이다.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기에 바빠서 자신들이 강제로 끌고왔던 종군위안부들을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 군대가 후퇴할수 죄다 살해해버리거나 전쟁터에 버려둔채로 떠나버렸다. 그리고 강제로 끌려가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간신히 해방이 되어 그리운 고향땅에 돌아갈 꿈에 부풀어 있는 징집노무자들이 타고 있는 배 우키지마마루를 일본인이 그것도 일본 군인들이 폭파해버린 일이 있었다. 일본은 당시 폭파 원인이 미군이 설치한 폭탄 때문이었다고 하는 데 당시 살아남은 목격자의 말로는 사실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이라는 것이다. 힘들게 강제노동하다가 간신히 집으로 돌아오게된 우리 노동자들이 이렇게 억울하게 죽어간 것이다. 또 일본은 이 사건에서 오백 사십 구명이 죽었다고 했는데 삼천명이 승선한 배가 어떻게 오백 사십 구명밖에 안 죽었겠는가. 이것 역시 일본인들의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철저히 축소하는 철면피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온 결과이다. 일제 식민지 지뱅에서 벗어난지 근 오십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핍박은 계속되고 있다. 일본인 고고생이나 대학생들이 공공연하게 칼이나 각목,쇠파이프등을 가지고 한국인들을 폭행하는 것이다. 폭행에서 구제 받고자 경찰서로 뛰어 들어가도 가벼운 학생끼리의 싸움으로 취급해 버리거나 심한 경우에는 한국학생들이 잘못한것처럼 만들어 오히려 폭행한 일본인 학생들은 돌려보내고 억울하게 맞은 한국 학생들만 유치장에 가두거나 등록증을 제시하라는 말만하고 상처를 치료해줄 생각도 안하고 경찰서에서 쫓아내기에만 급급하다고 한다. 소위 지성의 성당이자 학문의 상아탑이라고 부르는 대학교 내에서도 한민족에 대한 모욕적인 낙서들이 공공연히 나붙어 있다고 한다. 또 이런 낙서에 정식으로 학내신문에 항의했다고 해서 협박전화가 걸려온다면 말 다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무리 제 정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대학생이라는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자부심과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그런짓을 할수가 있을까.또 한국인이 썼다고 거짓말을 해 가면서 까지 자신의 잘못을 미화하고 치장하기 바쁘다.소위 한국의 저명한 사람이 지었다고 말하는 추한 한국인이라는 책에대한 것이다. 이 책에는 한국인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비하하고 잘못은 자기에게 있는 것처럼 말하고 일본인을 비난하는 것이 정당하지 못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런데 더욱 웃긴 것은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이런 책을 조작해 쓴 정도라면 그 특정인만 비난할수 있고 그 특정한 일본인이 잘못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건 그만큰 일본 국민 전체가 자신의 잘못을 숨기고 될수 있으면 미화시키려하고 있다는 걸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한 마디로 집단적으로 양심을 잃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잘못을 꾸짖는 말을 듣기 인정하기도 싫지만 듣기도 싫은 판에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이 그것도 일본인이 아닌 피해를 입은 당사자인 한국인한테서 나왔다고 하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그러니 너도 나도 마구 그 책을 사 댔을 것이다. 과연 그 책이 정말로 한국사람이 썼는가 따위는 그 사람들은 알 필요도 없었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져서 망신 당하는 일만 없으면 일본 사람이 썼건 한국 사람이 썼건 관계가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 왜 이 책이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 쓴책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첫째로 한국인들의 해꼬지를 두려워해 필명으로 이 책을 썼다는 저자 박태혁이 가진 프로필은 너무 호화 찬란해서 세계적으로 몇 사람 꼽을 사람이 없는데 한국 사람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들 딴에는 그런 유명하고 능력있는 사람이 썼다고 하면 사람들이 인정해줄 것 같아 그렇게 썼을 것이다. 한 마디로 자기 발등을 자기 도끼로 찍은 것이다. 조작 하기에 바빠 너무 엉성하게 하게 해서 정체가 탄로난 것이다. 이 것 뿐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국민 학생이라고 해도 당연히 알고 있는 간단한 곶감과 호랑이 이야기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일본 사람들을 오랑캐라고 부르는 등의 한국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쓸수 없는 너무 생소하고 맞지 않은 표현이 많다고 한다. 게다가 저명한국인사라고 주장하고 있는 사람이 국민학교만 졸업하면 충분히 알고 있는 자기 나라 국어를 모른다면 말이 되는 것인가. 이 책에 나오는 한글 표기 대부분이 틀렸다 중인을 ‘주옹인’ 상인을‘사인’ 현대를‘휸다이’라고 적고 있다고 한다.한국인 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고 알수밖에 없는 역사적 사실도 모르고 있고 역사의 인식 방법도 한국인과는 다르다.그리고 책의 내용도 될수 있으면 한국을 비난하고 일본을 미화하는 내용의 글이다. 어떻게 이런 글이 정상적인 한국교육을 한국의 저명인사가 쓴 글이 될수가 있겠는가. 저자는 이런 일본인을 추한 한국인을 쓴 추악한 일본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좀 다른 표현을 하고 싶다. 추악한 일본인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치사한 일본인,불쌍한 일본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치사한 일본인이라고 말한건 어떤 식으로 생각을 해 보아도 일본인들이 치사한 짓을 마구 하고 있고 기회만 있으면 하려고 하는 것이 확실한 사실이기 때문이고 불쌍한 일본인이라고 한건 단지 남을 비난하고 자신의 잘못을 무마하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온갖 짓을 하고 소위 그 사회의 저명인사라고하는 일본 작가까지 거짓말을 하는걸 보니 밉다는 생각앞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위에서 계속 언급한 대로 일본인들은 이 천년동안의 긴 세월동안 끈질기게 우리나라 사람들을 미워하고 기회만 있으면 괴롭히고 있다.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일본인이 우리를 미워하고 있는 것은 일본인이 그 옛날 우리나라에서 살지 못하고 우리 나라에서 쫓겨간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일본인들의 다수가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것이 확실한지 그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 근거로 이 책에서는 일본에 건너간 한반도 도래인에 관한 몇 가지 주장과 우리나라와 거의 흡사한 모양을 가진 일본 고대인들의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항해술이 발달하지 못한 고 시대라고 해도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갈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해풍과 해류를 이용하는 것이다.대량이주의 시작은 기원전후 부터였는데 멸망한 삼한,삼국의 왕과 귀족들이 주민들을 이끌고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 그 때부터 였다고 한다. 삼한 삼국이 신라에 차례로 멸망되어가고 거기에 가야 육국도 신라에 병합되어 갔다. 계속되는 병합과 전란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본으로 망명해 갔다. 이 때에 건너간 사람들중의 대펴적인 사람들이 진씨와 한씨라고 한다. 이들은 사,오세기에 일본의 대호족으로 성장했고 일본문화 발전의 중심이 되었다고 한다. 귀화인들에 대한 기록은 일본 고대기록인 고지키, 니혼쇼키, 조쿠니혼키, 신센쇼지로쿠등에 많다고 한다. 특히 육백육십년에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패하면서 백제 왕실을 중심으로 다수의 백제 지도급 인사가 일본으로 망명해 갔다고 한다. 그 뒤에도 끊임없이 고구려인과 신라인들도 일본에 귀화해 갔다고 한다. 원시 일본이 국가로서 탄생한 근원이라고 하는 야마토국은 처음에는 왜국이라고 불리다가 나중에 야마토국이라고 고쳤는데 일본 최고의 문화지대이자 정치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그런 야마토국의 인구중에 구십퍼센트가 한반도 도래인이라고 한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이 진씨 한씨였다고 하며 일본에서 조정에서 일하는 사부가 되거나 병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공업에 종사하면서 일본의 살았다고 한다. 죠몬 시대의 일본사람들의 인구는 약 삼십만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육백년이 지난 다음에는 인구가 팔백만이 넘었다고 한다. 정상적인 인구증가로서는 도저히 그렇게 될수가 없다. 이 비 정상적인 인구증가는 바로 한반도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일본으로 자꾸만 귀화해갔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삼한 삼국이 망하고 가야 육국이 망하고 백제가 그 뒤를 이어가 고구려가 계속해서 신라에게 패하여 병합되어 그 망국민들이 끊임없이 일본으로 가 이 비정상적인 인구증가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인정하기 꺼려하고 있다. 팔세기에 이르러 일본인들에게는 독자적 문화를 이루려고 하는 움직임이 일었는데 그 주체사관이 계속 이어져 메이지 유신때 최절정을 이루고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일본인들의 대부분이 한국으로부터 온 사람이라는 걸 철저히 숨기고 싶어한다. 어쩌다가 일본 학자들중에 사실을 밝히려는 사람이 나와도 그 사람을 매국노 취급하거나 학계에서 영원히 쫓아내거나 했다고 한다. 심한 경우에는 투옥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고대 한일 관계를 연구하는 것조차 크게 금기시되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비교적 객관적 시각으로 고대 한일 관계 연구도 나오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대부분이 황국사관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객관적 연구를 하려는 노력이 나타난것만도 앞으로는 좀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우선 기원 전후에는 규슈에 한반도에서 도래해온 한반도인 집단이 야마토왕국을 건설하였다. 그 증거로는 야마토왕국은 왕이나 호족이 죽으면 지석묘를 써서 장례를 치렀으며 부장품으로 청동기를 넣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지석묘라는 것이 한반도에 많이 남아 있어서 이 야마토 사람들과 동일한 민족이라고 여기고 있다. 야마토 왕국은 기원 일,이 세기에는 중국에 사절을 보내기도 했는데 이때 주고받은 물건이 지금의 북규슈 지방의 많은 유물, 유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다카다 야스토시는 철저한 황국사관에서 이 글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벼농사와 철기기술을 가진 집단이 기원전 삼세기경부터 이주해서 이들이 토착주민을 지배하고 국가를 세웠는데 이것이 야마토 왕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야마토 왕국의 혈통이 그대로 지금의 천황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것은 에가미 나미오의 기마민족설에 근거한 주장인데 에가미 나미오는 이 기마민족이 한반도에서 건너온 것이 아니라 다른나라에서 건너온 어떤 민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말이 안된는 것이다. 철기 기마민족의 유물이 나오기는 하지 이것을 한반도 사람이라고 할수는 없지 그래서 만들어낸것이 엉뚱한 다른나라 기마민족이라고 둘러대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 외에는 일본으로 건너올 그런 민족이 중국밖에 없는데 철기 기마민족이 바다를 건너오지는 않았을 것이고 한반도를 거쳐 내려와 일본으로 들어갔다는 얘기인데 그 당시는 고구려의 힘이 무척 강할 때이므로 우리마날 사람들 모르게 어떤 기마민족이 건너갔다는 것은 말이 될수가 없다 정말로 그런 민족이 있었다면 분명히 그 흔적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야마토를 세운 도래인이라는건 결국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이즈모국과 도래인에 대한 것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아다치 이와오라는 사람이 글을 내놓고 있다. 그는 일본 고대왕국의 정통정권은 이즈모국이며 그 이즈모국의 연장선상에 야마토왕국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즈모국과 조선과의 관계 ,이즈모가 보여주고 있는 조선적인 것들,고분출토에서 보여주는 조선적인것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건국신은 조선의 신이었으며 그 근원을 고령으로 보고있고 일본의 전신이 한반도의 식민국가였으며 고대일본의 신앙과 정신은 모두 조선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이즈모는 신라와 관계가 깊었으며 매우 큰나라였다고 말하고 있다. 한반도 도래인들이 한반도에 수많은 전쟁이 일어날때 대량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국가를 세웠는데 도래인들은 국가 건설의 중심적인 역활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또 구니미쓰 시로는 일본 고대 부족 국가중 히미코라는 여왕이 다스리는 야미타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중국과도 사신교류가 있었던 나라라고 한다. 그런데 그 야미타이국의 여왕인 히미코가 한반도에서 도래된 사람이었다고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히미코외의 그 당시의 거의 모든 나라의 왕이 한반도에서 도래된 사람들이었다고 보고 있다. 구미니쓰 시로는 마한및 가락국의 사람들이 신라의 억압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왔는데 그 중에 조선남부의 기장이란 곳이 있어 이 기장의 여자가 일본에 와서 성공을 거두어 오기나가다라시히메가,즉 야마타이의 여왕인 진고황후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또 그는 조선반도를 빼놓고는 야마타이국을 설명할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한반도 도래인들이 야마타이국을 건설하고 점차 세력을 넓혀 야마토국을 만들고 초기의 한반도 도래인 지도자들이 세대가 지나면서 후손들에게 신으로 받들어지게 되고 일본에 널리 분포하고 있는 신사의 제신이 되고 더 나아가서는 천황의 위치에까지 오르게 된다고 보고 있다. 이 말대로 하면 이본의 왕실, 즉 천황가도 우리민족의 후손이라는 말이 된다. 이시와다리 신이치로는 일본 천황가를 백제계 도래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람들이 가서 우리가 가진 문화와 기술로 나라를 세운 사람들이 한반도의 후손이기를 거부하고 도리어 자기네들이 고대에 우리나라를 경영했다느니 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이 안되는 것이다.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한데도 그들이 그렇게 우기는 데에는 그들의 잘못이 크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잘못이 아주 없다고는 할수 없다. 오히려 우리의 잘못이 아주 크다고 말할수 있다. 그중 한가지 큰 이유는 바로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버렸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버려놓았으니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마구 변조해서 자기 편한식으로 설명해도 확실한 설명 한 마디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버렸다는 것은 바로 신라인들이 백제의 역사를 마구 변조해서 버린것을 말한다. 신라인들이 백제를 점령하고 그 지배를 편하게 하기위해 옛 백제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백제의 역사를 마주 칼질해서 내버렸던 것이다. 그뒤 정권을 잡은 고려인들이라도 백제의 역사를 바로 잡았으면 다행이었을 것인데 자기들의 전신이라고 생각되는 고구려의 역사에만 신경을 썼지 백제의 역사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만신창이가 된 백제의 역사를 자기들식의 해석을 가해 엉망징창의 고대사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자신들의 지배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백제의 역사를 축소,비난, 왜곡해서 흐릿해져 버린 고대사를 마치 자신들이 강대한 힘을 가진 식민지 경영국가였던 것처럼 바꾸어버린 것이다. 임나 일본부설이니 대군을 이끌고 한반도를 쳐들어왔느니 하는 날조된 역사적 사실을 만들어 내고 자신들의 역사, 문화가 더 오래됐다고 말하기 위해 역사의 시기를 몇백년이나 앞당기고 바꾸고 했다. 그런데 바꿀려면 좀 치밀하게 바꾸지 바꾸는 것도 엉성하게 바꾸어 놓았다. 얼마나 엉성하면 일본학자들 조차도 자기네들의 역사서의 연대를 몇 백년이나 내려놓고 연구를 하겠는가. 그런데 이런 조작된 마미나 일본설 같은 버젓이 자기들의 국정 교과서에 써놓고 자기들의 후세들에게 교육시키다니 참으로 뻔뻔스럽고 대담하다고 하지 않을수가 없다. 우리들은 일본인들의 이런 말도안되는 주장을 그래도 듣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좀 더 연구하고 국력을 키워서 올바른 역사를 바로 세울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야마토왜는 팔세기까지는 우리옷을 입고 우리말을 썼으며 일본 천황가와 일본 지배층은 한반도인들이었으며 육세기 이전의 일본은 백제의 직할 영토였다고 한다. 윤영식은 백제는 일본을 무려 삼백년동안이나 직할 영토,즉 식민지로 지배하였다고 한다. 결국 백제인에 의해 일본이 건설되고 본토에서 백제가 멸망한 뒤로는 백제계 일본인들에의해 국호가 일본으로 개칭하게 된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또 일본역사에 나오는 오진천황은 대가야국의 왕자였으며 그외에 흔히 나오고 있는 천일창과 이사사도 결국은 이름만 다르지 오진천황과 동일인물이라고 보고있다. 이 종항은 고대 가야족이 세운 규수왕조라는 책을 썼는데 여기에서그는 벼농사 문화가 가장 먼저 전해진 곳이 규슈였는데 이를 전한것은 고대 가야사람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왜는 한반도 서남단과 규슈지역에 살던 우리민족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주장에 대한 근거로 들고 있는 것중에 첫번째로는 걸식하는 왜인집단 일천인이라는 기록을 들고 있다. 왜인이 단지 일본에만 사는 사람이었다면 단지 구걸하기 위해서 현해탄을 건너왔다는 말이 된는데 이것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따라서 이때의 걸식하는 왜인 일천명이란 한반도의 서남단에 살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둘째로는 금성을 포위,공격하는 왜인이라는 말인데 그 당시에 물리친 왜인의 수가 일천여급이나 된다고 하는데 그 당시의 일본은 제대로된 국가다운 국가가 없는 상태였다. 그러니 바다를 건너 그토록 많은 숫자의 군대를 한반도로 보낼만한 능력이 없는 상태라고 본다. 그러니 그 당시 금성을 공격한 왜인이란 일본섬에 있던 사람이 아니라 위와 마찬가지로 한반도 서남단에 있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세번째 근거로는 역사기록에 있어서 서남단 지역의 대부분이 공백으로 남겨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 서남 해안지역에는 고분과 지석이 수두룩하게 있다. 이 말은 우리나라 서남 해안지역에도 다수의 국가가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이 종항은 이 지역이 바로 연합해서 신라에 반기를 들었으며 그들의 일부가 왜라고 불리었던 것이라고 한다.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광개토대왕비에 기록된 왜가 침입했다는 것은 결국 우리나라 사람들끼리의 분쟁으로 설명할수 있고 일본의 한반도 경영설 따위는 한마디로 헛소리로 일축해 버릴수가 있다. 이 광개토대왕비의 기록도 확실하다고 말할수 없다. 일본의 군인이 이 광개토대왕비의 내용중에서 자기나라에 불리한 내용들은 다 빼버렸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충분히 그런짓을 하고도 남을 인간들이다. 증거 위조로 의심받고 있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왕자가 일본왕에게 주었다는 칠지도도 증거인멸의 의심을 받고 있다. 칠지도를 발견한 사람이 금상감한 글씨 중에서 일본에 불리한 글자를 흐릿하게 지워버려서 알아보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한반도 사람의 여러가지 도래설 과 함께 일본사람이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이라는 주장의 근거로는 일본에서 발견되고 있는 여러가지 고대 문화 유산들이다. 고대에 일본에 전해준 문화로 말할수 있는 것의 하나가 벼농사를 짓는 법을 가르쳐준 일이다. 최근에 발견된 일본의 고대미와 한국남부지방의 쌀이 동일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또한 벼와 같은 시기에 일본에 전해진것은 금속문화 였다. 그리고 북규슈의 야요이 시대의 장례문화와 한반도 남부의 장례문화가 거의 같다고 한다. 이로 보아 일본에 건너간 사람들은 한반도 사람들의 후손임이 거의 확실하다.더 자세히 말하면 일본 고분에 묻힌 사람들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세운 군소왕국의 왕묘라고 한다. 이 고분들에서는 조선제 청동기들이 한꺼번에 출토되었는데 일찌기 그 유례가 없었던 일이라고 한다. 이 물건들은 미마나 일본설이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근거가 됨과 동시에 오히려 일본이 한반도의 식민지였다는 증거가 된다. 그리고 일본에는 산성이 아주 많은데 이것이 백제인들이 건설한 조선식 산성이라는 것이다. 이 조선식 산성은 그 당시 건너간 한반도인들이 산성을 건설한 것이라는 증거가 된다. 일본국민은 거의 다가 불교 신자인데 이와 동시에 거의 다가 신사를 믿고 있다. 어떤 조사에서는 일본국민이 믿고 있는 종교가 일인당 거의 1.8%로라고 나와있다. 거의 일인 이종교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불교도 우리나라에서 전해주었을 뿐 아니라 이 신사라는것도 한반도에서 건너간 자기네들의 조상신인 고대군왕을 모시는 것과 그 군왕을 위해 공적을 쌓은 신하들을 신격화하여 모신것이다. 일본에 불교를 전한 한반도의 나라는 백제라고 한다. 백제는 국사시간에도 배우듯이 일본과 매우 친분이 두터웠던것 같다. 백제가 신라에 멸망당할때에도 일본에서 군사를 보내어 백제를 도우려 했던 것만 봐도 알수 있다. 자신들의 모국이 아닌 다음에야 왜 군사까지 내어 남의 나라 싸움에 끼여 들려 하겠는가. 여하튼 일본의 불교는 백제에서 전해준 것이며 일본의 유명한 고승도 백제계 도래인중에서 나왔는데 그는 바로 후에 대승정이 된 걸승 행기이다. 스님이 되는 것 외에도 백제계 도래인들은 일본불교의 중흥에 힘을 대단히 많이 썼는데 그 대표적 예로 토다이사의 대불을 만든 백제 후예들을 들수 있다. 이 대불을 만들기 위해 모은 돈을 내놓은 사람도 이 건물과 불상을 만든 기술자들도 거의가 백제계 도래인이었다고 한다. 일본 불교는 9세기경에나 가서야 비로소 토착화 되어 독자적인 불교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일본전역에 퍼저 있는 신사도 초기에 한반도에서 건너가 업적을 쌓았던 자기들의 조상들을 제사지내기 위해 제사를 지내던 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대상이 신격화 되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신을 모시는 신사가 된것이라고 한다. 신사에도 급이 있어서 위로는 옛날의 천황이었던 신을 모시는 사당과 아래로는 그 천황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쳤던 신하를 위해지은 신사까지 있다. 이 신사는 대표적인 도래인이 진씨가 전국으로 퍼져가면서 신사도 점차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고 한다. 일본의 신사는 고대 우리나라의 환웅,환인,단군을 모시던 사당인 신궁과 여러 부족장을 받들던 사당이 그 원형이라고 한다. 일본보다 훨씬 앞서있던 도자기 문화도 일본에 건너가 일본의 문화 발전에 큰 몫을 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도자기를 매우 좋아하여 어떤 사람들은 임진왜란이 도자기를 뺏기위해 일으킨 전쟁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임진왜란때에는 많은 도자기 명인들이 일본으로 끌려갔는데 그때 끌려간 조선사람들중에 몇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꿋꿋이 우리나라의 성과 이름을 지켜가면서 우리의 도자기문화가 일본에 전해진것임을 말해주는 산증인도 남아있다고 한다. 지금 대를 잇고 있는 도자기 명인은 어릴때 자기가 조선사람이라고 제 또래 아이들이 괴롭히는 것이 제일 싫었다고 한다. 이 사람이 왜 어릴때 그런 수모를 받으면서 커야 했던가 그것은 다 우리가 우리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치고 받고 공자왈,맹자왈 옛 글귀나 읊으며 별 쓸모나 의미도 없는 예의 범절이나 가지고 당파싸움이나 하면서 국력이나 소모하는 바람에 힘없는 백성들이 도자기 굽는 기술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국땅에 잡혀가 모진 시련을 겪게 된 것이다. 과거에만 이런 일이 있으라는 법이 없다 그 증거로 임진왜란이 끝나도 정신을 못 차리더니 일제 삼십육년간 모진 고생을 하지 않았는가. 권력이나 잡아 세도정치로 가렴주구나 일삼으니 그런일이 생기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일제가 물러간지 이제 근 오십년이 가까워 간다. 그 오십년동안 우리는 힘을 키우기 위해 전력을 다해 큰 발전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아직은 강대국으로 부터 우리나라를 충분히 지켜낼만한 힘을 가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강대국을 상대하기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우리민족끼리 싸우기 위해 군비를 증강하고 힘을 비축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것을 조신식으로 치자면 아주 큰 당파싸움이라고 왜 못하겠는가. 지금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힘을 합쳐도 자기 자심을 지키기 힘든 시기이다. 그러니 임진왜란 ,일제 삼십육년의 수모를 다시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집안싸움에 치중하지 말고 힘을 합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우리를 지켜야 할 것이다. 당장 통일이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최소한 상대편을 공격하기 위해서라는 오직 그 이유하나만으로 외국과 힘을 합치는 따위의 일음 없어야 할 것이다. 구한말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 일본 세력을 끌어들이고 청국을 끌어들이고 러시아를 끌어들이고 하다가 큰 고통을 당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자기 자신을 상처내기 위해 외국에 자기 약점을 잡혀서는 않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 말고도 일본에 큰 영향을 준 문화로는 유학이 있다. 일본에 유학을 전한것은 전라도 태생인 왕인이다. 왕인을 일본에 가서 일본문화 발전에 큰 업적을 세웠다. 그래서 현대의 일본에도 왕인의 업적을 찬양한 비가 여럿 남아있다고 한다. 그 왕인이 전한 일본유학을 중흥시킨것은 임진왜란때 일본에 포로로 잡혀간 강항인데 왕인이 전한 유학이 일본에서 불교와 신도의 세력때문에 빛을 못보고 있었는데 강항으로 인해서 일본유학의 획기적인 전환을 맞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에 문화를 중요한 통로의 하나로는 통신사를 들수가 있는데 에도 시대의 일본이 외교를 한 국가는 오직 조선뿐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말도 일본 말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는데 일본에 전래되고 있는 만요슈라는 글이 있는데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고대어가 들어있고 내용도 우리의 옛 역사를 노래한 것이라고 한다. 그 증거로는 이 만요슈라는 글이 일본어로도 해석이 안 되고 한자로도 해석이 안되어서 일보에서는 그저 무의미한 글로 여기고 있었는데 이 만요슈가 우리나라 고대에서 끄던 신라의 이두로 해석이 된다는 것이다. 이때 해석되는 글의 내용은 겉에 나타나는 것과는 달리 삼국시대의 처절했던 세력타툼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에는 우리나라와 흡사한 여러가지 민속적 풍습이 남아있다고 한다. 재수없는 사람이 오거나 액을 물리치기 위해서 소금을 뿌려두거나 감을 딸때는 배고픈 새들을 위해 몇개 남겨두기도 하는 풍습이 일본에서도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일본에 건너간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세력다툼에 진 사람들이나 우리나라에서 살수 없는 하류계층들이 일본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그 때의 원한을 잊지 못해 근 이천년동안 우리나라를 괴롭혀왔고 그 이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나라를 미워하고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일리도 있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감상적인 이유만으로 일본과 우리나라 사람들간의 적대감정을 모두 설명해 버리고 싶지는 않다. 사람중에도 워낙 외국을 침략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이 국가 중에도 그런 국가가 있을 수 있다. 불행히도 그런 국가 옆에 있다는 죄로 우리가 그렇게 당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거 하나가 아주 중요한 요인이다.라는 식으로 설명하고 싶지 않다. 저자가 주장한 전통적 감정과 함께 일본인들의 호전적인 성격, 옛날부터 우리나라보다 못했다는 열등감을 없애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존심이 국가적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지나치게 커져버린 우리나라에 대한 적대감,메이지 유신 때에 그 당시 열강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열강들의 백인 우월주의 대신에 우리나라에 대한 적대감을 선택한것,옛부터 끊임없이 도전해도 얻지 못했던 나라라는 욕구불만같은 것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생긴 감정일 것이리라. 물론 내가 들고 있는 것이 틀렸을 수도 이외에도 아주 중요한 큰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이가 나빠진 이유가 아니다. 더 연구하고 노력해서 살아가기 위해 경쟁하는 대상이라는 사실이외에 오래된 원수라는 묵은 감정같은 것은 없애야 할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나부터라도 아무리 일본이 우리에게 잘해준다고 해도 꺼림칙한 기분을 없앨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력을 한다면 우리 대에 안되다리도 다음 대에라도 묵은 감정은 없애고 이웃이라는 친한 감정은 가지지 못해도 최소한 다른 나라를 대할 때와 같은 객관적인 시각이라도 가질수 있을 것이다. 일본을 아주 가깝게 느끼고 친구처럼 지내라는 것은 아니다. 우선 나도 가지고 있고 근거가 없는 미움이 아니라걸 알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지금은 과거에 집착할때가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야할 때이며 특정 민족에 대한 묵은 감정 따위는 우리가 뛰어가야할 미래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굳이 세계 평화를 위한다느니 하는 거창한 이상을 내세우지 않더라고 우리자신을 위해 우리 미래,우리 후손을 위해 쓸모없는 감정 싸움따위는 버려야 한다. 설사 일본이 계속 그런 감정을 가진다고 해도 남이 한다고 따라 할수만은 없듯이 우리는 우리가 나아가야할 올바른 길을 따라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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