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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두만강 1400㎞ 답사] (3) 고구려 도읍지 지안을 가다

알캥이 | 2012.04.29 14:55 | 조회 5224

[압록강~두만강 1400㎞ 답사] (3) 고구려 도읍지 지안을 가다


Name: 개척자., Date: 2009.10.08. 18:56 (Hit: 42)

[압록강~두만강 1400㎞ 답사] (3) 고구려 도읍지 지안을 가다

역사학자 이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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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고구려 香 지운들 이 땅이 중국史 될까 
ㆍ동북공정 탓에 10년 사이 휘황찬란한 유흥도시로우리 고대사 중국에 예속 ‘랴오허 문명론’이 더 문제

‘백두산 역사탐방단’ 일행은 지난달 5일 단둥에서 압록강변을 거슬러 올라가는 코스를 잡아 지안(集安) 탐사에 나섰다. 압록강 하류에는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표시하는 철조망을 새로 설치해 놓았고, 철조망을 따라 포장길이 뻗어 있었다. 길가에는 복숭아단지, 밤나무단지가 연달아 조성되어 있었고 강물에는 가두리 양식장도 보였으며 강변호텔도 덩그렇게 서 있었다. 번창하는 풍경이었다.

발굴·복원공사가 한창인 지안시 남성로의 국내성 성벽.


하지만 다장커우(大江口)를 지나 상류로 올라갈수록 옥수수밭이 이어졌고 강폭도 좁아지고 길도 지그재그로 뚫려 있었다. 더욱이 새로 도로를 건설하면서 산이고 강이고 바위를 가릴 것 없이 마구잡이로 뚫고 파헤쳐 놓았다. 특히 강변의 길을 넓히는 작업 때문에 강가에 자라는 물버드나무가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저녁 8시가 넘어서야 고구려 500여년 도읍지였던 지안 시내로 들어갔다. 한 마디로 표현해 휘황찬란했다. 상점에는 최신 유행 상품이 진열되어 있고 유흥업소의 네온사인은 밤거리를 밝혔다. 시내 곳곳에 도로를 확장하고 건물을 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10년 전 답사 때와 비교하면 ‘천지개벽’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당시는 택시가 없어서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로 끄는 탈것으로 돌아다녀야 했다. 산골 마을인 지안이 도시로 탈바꿈하는 배경으로는, 첫째 몰려드는 한국의 관광객, 둘째는 동북공정의 진행, 셋째는 동북공정의 결과로 고구려에 관심을 둔 중국 관광객의 급증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지안시 광개토왕릉을 오르는 관광객들. 2004년 7월 장군총, 환도산성 등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지안의 고구려 유적지가 말끔하게 단장됐다.


우리 탐방단이 든 숙소는 추이위안(翠園)빈관이었는데 바로 지안시내에서 중심부의 가장 넓은 거리인 승리로에 있다. 이 호텔 앞에는 고구려유지(遺址)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이 호텔과 공원이 바로 국내성의 중심 궁궐이 있던 곳이다. 우리가 국내성의 중심부에서 우연히 하룻밤을 묵게 된 것에 나름대로 의미를 둘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원 앞에 보존된 몇 미터 정도의 성터만이 화려했던 국내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현재 시 당국에서 남성로의 도로공사를 하다가 고구려 유적으로 보이는 거대한 석축물 더미를 발견하고 이를 보존하면서 발굴을 서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이 돌아본 환도성 아래의 고분군, 장군총(장수왕릉으로 추정), 광개토대왕비와 왕릉 등은 예전보다 정비가 잘 되어 있고 모든 관광객에게 개방하고 있다. 다만 지안박물관은 내부 수리 중, 고분 벽화는 전면적 보수를 하고 있어 잠정으로 개방하지 않고 있었다. 1차 5개년 동북공정을 2007년에 마무리한 뒤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 곳곳에서 감지되었다.

동북공정은 한 마디로 말해 소수민족통일국가론에 따라 고조선, 고구려, 발해를 중국 소수민족의 정권으로 규정해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는 작업이었다. 그중에서도 고구려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많은 논문을 양산해내면서 고구려의 남쪽 영역을 대동강 아래의 한강유역과 금강과 남한강 상류(충주)로 설정했다. 이 지역이 다분히 고구려 영토여서 한때 중국 영토에 속한다는 이미지를 풍겼다.

공정이 계속되는 동안 남쪽 학자들의 접근을 막았고 공정에 관련된 자료유출도 통제했으며 비디오나 사진촬영도 금지시켰다. 중국 국적을 지닌 조선족 학자들도 동북공정의 진행에 대해 몸조심하느라고 입을 다물었다. 심지어 현재도 안시성 등 통제 유적에 허가 없이 잠입한 학자나 사진작가들은 비자를 내주지 않고 있다. 하지만 2004년 한국 정부와 역사학자, 민간단체의 강력한 항의에 부딪혀 논문 발표를 자제하기도 하고 부분적으로 개방을 허용하기도 했으나 근본적 문제가 풀린 것은 아니다.

문제의 심각성은 또 다른 데에 있었다. 현재 중국 사회과학원 등 여러 유관 단체는 동북공정의 뒤를 이어 랴오허(遼河)문명권 5개년(2006~2010) 작업을 벌이고 있다. 중국의 문명 발상지로 황허, 창장, 화이허, 그리고 랴오허를 꼽고 그 지역의 문명을 중화문화의 원류로 보고 탐원(探源)하는 것이다. 랴오허문명론은 중국 고대 전설에 나타나는 제왕을 주요 구성체로 내세우고 있다. 랴오허문명은 랴오둥의 뉴허량(牛河梁) 적석총 유적을 통해 신석기시대에 고대 국가 단계에 접어들었는데 이를 훙산(紅山)문화라 부르며, 샤자뎬(夏家店) 하층문화 유적을 통해 청동기시대 황허문명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황허문명 곧 중화문명은 여러 문명이 어우러져 중국문명을 이룩했다는 결론을 얻으려 하고 있다.

고대 랴오허는 동이(東夷)에 속하는 지역이었고 샤자뎬 하층문화는 연대로나 문화의 특성으로 보아 단군설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는 단군이 백두산에서 하강했다는 건국 설화를 가지고 있다. 랴오허문명론이 북방계 문화임을 인정하고 있으나 결국 중국문명에 동화했고, 이어 랴오둥을 거쳐 한반도로 이어졌으므로 단군은 결국 중국 고대 황제의 갈래로 풀이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의 백두산 이미지도 달라질 수 있다.

다음 랴오허문명론의 일환으로 기자 조선을 들 수 있다. 기자는 은의 왕족인데 주 무왕이 조선의 왕으로 책봉해 평양에서 단군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는 전설 같은 기록이 있었지만 거의 부정되어 왔다. 이를 정사로 다루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황빈의 <기씨조선사화> 등) 또 한사군의 영역을 조선의 황해도 지역까지 연결시키고 조선을 식민지 상태로 지배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기자를 정통으로 보려는 사관이 있어왔는데 이를 정사로 규정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어 설인귀의 이미지 조작도 서두르고 있다. 당의 장수 설인귀는 고구려 정벌에 큰 공로를 세웠다고 기술하면서 설인귀의 용맹성과 승리를 부각시키고 있다. 게다가 랴오둥 일대에 떠도는 설인귀와 관련되는 민간 전설을 모아 문화현상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보기를 들면 랴오닝성 펑황산에서 설인귀가 바위에 화살을 쏘았다는 전설에 따라 전안(箭眼)을 석각한 것, 지린성 린장시 압록강변에서 설인귀가 칼을 갈았다는 바위에 당도석(當刀石)을 새겨 놓은 것, 고구려 고분 벽화의 마전도(馬戰圖) 따위에 의미를 부여해 서술하고 있다. 설인귀를 부각시키면 을지문덕과 연개소문의 대중적 이미지는 쪼그라든다. 이런 작업은 단순한 역사를 서술한 것이 아니라 ‘역사상 강역’을 연구한다는 것을 내걸고 변강학(邊疆學)을 조작하고 왜곡하고 아전인수로 이용하려는 저의가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과정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특히 티베트와 베트남을 겨냥한 서남공정, 신장 위구르족과 러시아와 몽골을 겨냥한 서북공정의 과정을 보아도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동북공정의 후속인 랴오허문명론은 얼핏 보면 중국문명의 복합성을 규명하는 것 같지만 단군 기자 위만 등 우리 고대 역사를 중국에 예속시키는 이론들이다. 통일이 이룩될 때 고구려 역사는 중국사이니 대동강을 넘어올 수 없다고 우길 수도 있고, 간도의 영유 문제는 이미 간도신협약(1909년 일본과 체결)에 따라 중국에 귀속된 것이라고 강변할 수도 있고, 백두산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창바이산(長白山)으로 차츰 각인될 것이다. 그래서 이 분야의 전공학자 박선령 교수는 “고구려는 현대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무튼 9월 초순 현재, 지안 일대에서는 고구려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안내 표지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비록 정비와 개수를 한 뒤 유물들이 개방되고 있으나 여전히 비디오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 노영금양은 자신을 독립군 후손이라고 소개하면서도 남쪽에서 고구려를 인식하는 얘기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주 조심하는 태도가 엿보였다. 또 만주에 있는 조선족 출신의 학자들도 애써 동북공정과 랴오허문명론에 대해 거의 논의를 하지도 않고 입을 다물고 있다. 이를 보아도 중국 당국의 역사 왜곡 의도를 짐작할 만하다.

다만 예전처럼 표면으로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표현을 조심하는 모습이 감지될 뿐이다. 2단계로 접어들어 새로운 상징 조작의 방식에 따라 역사 왜곡을 은밀하고도 조용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안에서 발길을 돌리는 한 역사학도는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다.

<역사학자 이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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