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뉴스

이병도 전집 완간

어하라 | 2012.04.29 21:58 | 조회 5769

한국史 태두의 ‘70년 업적’ 집대성
故 이병도 전집 16권 死後 23년만에 완간


2012년 04월 26일(木)





현대 한국사학의 개척자인 두계 이병도(1896~1989)의 학문적 업적이 사후 23년 만에 집대성됐다. 두계이병도전집 편집위원회(위원장 한영국)는 최근 본집 15책과 별집 1책 등 총 16책으로 기획된 ‘두계이병도전집’(한국학술정보·사진)을 상재했다.

지난 1999년 5월 타계 10주기를 맞아 한우근·이기백·전해종·고병익 등 지금은 대다수가 타계한 노령의 제자들을 비롯해 30여명의 문하생들이 모여 ‘두계전집’을 내기로 결정한 뒤 13년 만에 이룬 결실이다.

하지만 출판사가 수해를 입어 원고 일부가 유실되는 등 전집 출판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무엇보다 출판이 지연되면서 한영국 편집위원장이 지난 2월7일 별세했으며 당초 현직에 있었던 편집위원(민현구·이기동·이태진·최병헌·김두진·정만조) 모두 지금은 퇴직교수 신세가 됐다.

이번에 출간된 ‘두계이병도전집’은 ▲개설서인 ‘한국사대관’과 ▲‘한국사 고대편’ ‘한국고대사연구’ 등 고대사 부문 3책 ▲‘한국사 중세편’ 등 고려시대사·지리도참 부문 2책 ▲‘한국유학사’ 등 조선시대 유학사 부문 3책 ▲‘국역 삼국사기’ 등 역주 부문 4책 ▲‘국사의 지도이념’ ‘수상 잡필’ 등 사론·잡기 부문 2책 ▲별책 추모문집인 ‘역사가의 유향’ 등 16책으로 구성돼 있다.

기존에 출간된 책들은 가로 판형으로 새롭게 짜는 등 통일된 체제를 갖췄으며 고대사와 유학사 논고 및 사론·잡글 등을 조사·수집해 새로 4책을 만들었다.

19세기 말 경기 용인에서 충청도 수군절도사를 지낸 이봉구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난 두계는 어려서 한학을 배우다 11세 때 서울로 올라와 신학문에 눈을 떴다. 보성전문학교 법률학과를 거쳐 일본 와세다(早稻田)대 사학 및 사회학과에 진학한 그는 만국공법에 대한 흥미로 당초 서양사를 공부하려 했으나 한국사 연구의 중요성을 깨닫고 방향을 바꾸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해 중앙학교에서 역사와 지리, 영어를 가르치는 교원생활을 하던 두계는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 일본 도쿄(東京)대 교수의 권유로 학문 연구자로서의 지위와 기회를 얻고자 조선사편수회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일본인 학자들과의 갈등으로 전임이던 수사관보(修史官補)의 직은 물론, 무급촉탁 직도 그만두고 1920년대 후반부터 20년간 직장 없이 연구에만 매달렸다.

양반 출신으로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를 가졌지만 가계에 도움을 받기 위해 때로 학생들 하숙을 치기도 했다고 한다.

1934년 진단학회의 설립과 ‘진단학보’ 간행을 주도하는 등 30, 40대 20년간을 공부에만 집중한 이 시기가 사실상 두계의 이후 학문인생을 결정지었다. 49세에 광복을 맞은 그는 재건된 경성대 법문학부 교수로 임용되고 서울대 설립과 사학과 개설에 참여하면서 학계의 중심에 위치하게 된다.

1939년 ‘진단학보’ 제10호 간행 직후 사학자 손진태는 진단학회 설립과 두계를 회고하며 “당시로 말하면 한국사람들의 지식층이며 학생 간에 사회주의니 민족주의니 하는 논쟁이 일세를 풍미해 우리들처럼 순수학구적 방면으로 향하는 자는 사람의 수에 들어볼 생각도 못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시사잡지라면 몰라도 학술잡지의 경우 필요성도 인정받지 못했고 ‘반동적’이라는 경멸까지 감수해야 했던 두계로 대표되는 진단학회에 참여한 이른바 순수학구파들이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며 남한 학계의 중심에 서게 됐다.

반면 백남운으로 대표되는 사회경제사학자나 정인보 등 민족사학자들은 해방정국에서 정계에 투신하며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물론 철저한 사료 비판과 냉철한 객관화를 중시하는 두계의 실증사학에 대해서는 오늘날 다양한 평가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1961년 서울대에 이어 1969년 성균관대 교수를 퇴임할 때까지 해방 이후 24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사학계를 이끄는 태두(泰斗)로 자리매김했던 그가 이후 타계할 때까지 20년에 걸쳐 보여준 학문적 업적은 후세 연구자의 귀감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80대에 저술한 ‘국역 삼국사기’와 ‘한국고대사연구’, 구순에 접어들어 결실을 맺은 한문으로 쓴 ‘한국유학사략’과 이의 국역판 격인 ‘한국유학사’의 출간 등 두계는 70대 중반 이후 노년기에 오히려 약 25편의 논문과 10권에 가까운 책을 펴냈다.

두계의 학문적 업적은 크게 ▲한국고대사 체계의 재정립과 ▲지리도참사상을 통한 고려사의 추적 ▲조선유학사의 체계화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이를 위해 그는 일생 동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고려사’ 등을 섭렵하는 한편, 30대 후반 규장각에서 조선시대 문집 수천 권을 열람하고 방대한 유학사 자료를 가려 뽑아 정리했다.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기초자료를 일독한 뒤 한국사의 체계를 세운 것이다.

편집위원인 민현구 고려대 명예교수는 “조선후기 실학자로 소급되는 한국의 전통적 역사학과 근대 역사학의 방법을 결합시켜 엄격한 사료비판과 실증을 토대로 한 독자적인 학문 세계를 구축한 것이 바로 두계사학의 본령”이라며 “이번 전집을 통해 두계의 70년 연구성과와 한국 현대사학에 기여한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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