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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위구르 관계사 왜곡

어하라 | 2012.04.27 20:54 | 조회 5195
중국의 위구르 관계사 왜곡
기사입력 2008-08-28 22:57
최준석 국제전문기자
중국의 서쪽 끝 실크로드 도시 카스(喀什) 시내에는 '반초(班超)기념공원'이 있다. 북쪽 톈산(天山)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려온 투만(吐滿)강이 옆으로 흐르고, 다른 한쪽으로는 2000년 전 쌓았다는 고대의 진흙 성벽이 서 있다. 공원은 높이 5m 정도의 나지막한 성곽 모양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입구에는 고대 중국의 깃발을 꽂아놓아 예스러운 분위기를 살리려 했다.

중국 내 900만 위구르인의 문화 중심 도시라는 카스에서 반초기념공원은 일반 관광객에게 별로 인기가 없다. 현지 가이드도 방문을 권하지 않은 반초기념공원이 기자의 관심을 끈 건 '중국의 위구르 역사 왜곡'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반초(33~102년)는 중국 후한(後漢)시대 장군으로 기원 후 73년 서역(西域)으로 불리던 카스, 호탄 등 현재의 신장 위구르 지역을 중국인으로는 처음 정복했다. 중국은 한나라시대 서역 정벌을 이 지역에 대한 권리 주장의 역사적인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반초는 '한서'(漢書)의 저자 반고(班固)의 동생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가 지난 1994년 세웠다는 '반초기념공원'의 안내판에 따르면 한나라의 위구르지역 '정복'은 '(중국과의)통합' 혹은 '(영토)회복'으로, '정복자'는 '나라를 통일시킨 대업을 완성한 전략가, 정치인'으로 되어 있다. 공원 안에 들어가면 정면에 3.6m높이의 반초 석상이 있는데, 석상을 뒤에서 반원으로 둘러싸고 있는 부조를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20m가 넘는 길이의 흰색 화강암 벽면에는 반초의 서역 정벌기가 새겨져 있다. 20대 여성 안내인 설명에 따르면 반초는 36명의 병력을 이끌었고, 오늘날의 카스인 당시 슐리를 '통합'(정복)한 뒤 슐리의 당시 지도자를 왕으로 임명했다. 반초는 이후 31년간 슐리에서 체류한 뒤 중국 뤄양(洛陽)으로 돌아간다. 이때 위구르인들은 반초에게 영원히 우리와 함께 머물러 달라고 했고, 일부 주민은 칼로 자결하겠다고 위협하며 체류를 탄원했다고 한다(안내판과 안내원 설명). 슐리의 왕은 말에 오르려는 반초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으로 부조에 묘사되어 있다. 벽면 조각도 가운데에는 반초와 슐리 왕이 마주 보고 있는데 반초의 머리 위에는 그의 성씨인 반(班)자가 새겨져 있는 반면 슐리 왕의 머리 위에는 충(忠)자가 그를 가리키고 있다.

반초기념공원은 정복자의 시각에 따라 세운 구조물이다. 위구르 민족을 배려하거나 포용하려는 기색은 이곳에서 발견할 수 없다. 옛날부터 중국에 대해 위구르인은 '충성'을 바쳐 왔다는 걸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자신들의 자랑스럽지 못한 역사를 방문객에게 설명하는 안내인은 위구르인이었고, 그걸 기자에게 영어로 담담히 옮기는 통역(중국 공산당청년단원)도 위구르인이었다.

중국 안에는 '위구르족' '티베트족' 등 공식적으로 인정된 55개 소수민족이 있고, 이들은 중국 인구의 92%를 차지하는 한족(漢族)이란 바다에 떠있는 쪽배와 같다. 위구르 분리주의자들은 최근 끝난 베이징(北京)올림픽 개막을 전후해 위구르자치구에서 세 차례 무장 공격을 감행한 바 있다. 베이징 정부는 소수 민족에 대해서는 한 자녀 이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등 우대 정책을 편다고 말한다. 하지만 소수민족을 진정 배려하고 포용하려 한다면 한족 중심의 사관(史觀) 강요는 중지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내부에 식민지를 가진 대국(大國)이 자국 내부 안정을 위해 갈 길이며, '중화민족주의'에 위협을 느끼는 주변국과 진정한 공존모색을 위한 방안이기도 하다.

[최준석 국제전문기자 jscho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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