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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칼럼 - 5.환국의 역사에 눈을 뜨며

어하라 | 2012.04.27 14:06 | 조회 5087

5.환국의 사에 눈을 뜨며

역사칼럼 - [05]

 

이홍배 증산도사상연구회 수석부회장

 

“지난 1,000년 역사에서 가장 중요했던 인물은 누구인가?” 1995년 『위싱턴포스트』지가 20세기를 보내면서 던졌던 질문이다. 『위싱턴포스트』지는 그 답을 구하기 위해 역사 궤도를 추적하여 갔다. 1,000년 전 유럽인이 만든 지도는 유럽 동쪽을 거인들의 땅으로 그리고 있었다. 그 당시 그들에게 세계는 극도로 크고 신비스러우며 대부분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었다(CEO 칭기스칸, 김종래, 삼성경제연구소).  

다각적인 검토 끝에 『위싱턴포스트』지의 눈길이 가장 먼저 머문 대상이 콜럼버스였다. 그러나 콜럼버스라는 이름은 곧 암초를 만난다. 그는 최초의 유럽인 탐험가가 아니었다. 콜럼버스가 항해에 나선 것은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동방견문록』 때문이었다. 콜럼버스는 마르코 폴로가 간 육로를 바닷길로 가려 했을 뿐이었다. 그는 당시 유럽을 초라한 시골로 생각하는 엄청난 제국의 칸에게 줄 편지를 가지고 갔지만 전해주지 못했다. 그러나 최초의 유럽인 마르코 폴로 역시 벽에 부딪히게 된다.

 

1,000년 전에는 어느 누구도 유럽 기독교도들이 이 지구를 식민화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을 완전히 뒤흔든 게 새로운 제국의 출현이었다. 그것은 칭기스칸의 제국이었다.」는 결론으로 『위싱턴포스트』지는 지난 1,000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칭기스칸을 뽑게 된다. 서양의 역사는 그를 호전적이고 잔혹한 인물로 묘사했지만 우주처럼 광대한 지구를 좁게 만들어, 사람들이 대륙을 넘어 서로 왕래할 수 있도록 만든 주인공으로 결국 평가 받았다. 유럽인들의 시선이 여기에 머물면서 노마드(Nomad, 유목민) 경영, 디지털 노마드(Nomad)의 시대 등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마르코 폴로가 언급하였던 엄청난 제국의 칸, 칭기스칸은 지리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이 미친 듯이 정복만 하였는가? 역사 기록 속에서 아주 재미난 내용을 만나게 된다. 몽골인들은 샤머니즘의 신봉자였으며, 풍부한 구비전승을 가지고 있었다. 샤머니즘은 서양 학자들이 싸잡아 훼손시킨, 잡스럽고 야만적인 원시신앙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에서만 독특하게 존재하였던 고대인의 철학이 담긴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샤먼이야기, 양민종). 그 샤머니즘의 중심에 서 있는 샤먼은 다름 아닌 신과 인간의 갈등과 대립을 치유하고 질서와 화해를 추구하는 우주의 중재자였다. 신의 가르침(신교)을 받아 내리는 우주의 중재자, 우리는 여기서 한민족의 위대한 신교(神敎)문화와 조우하게 된다. 샤머니즘의 실체를 알지 못하고는 동북아시아의 실상을 전혀 알 수 없다.  

우리는 『위싱턴포스트』지가 했던 것과 똑같이 역사의 시간을 자꾸 뒤로 돌려 가면서 한민족의 역사 속에 놀라운 사실을 만나게 된다. 바로 칭기스칸이 지배하였던 지역보다 더 광활한 제국, 광명의 제국이라는 환국(桓國)의 신화를 만나게 된다. 남북 5만리, 동서 2만여리의 광대한 제국, 땅의 논리인 12지지(地支), 하늘의 순환 논리인 태양 운행의 1주기인 황도 12순환 통로에 따라 12개의 거대한 분국으로 구성된 환국의 모습에 새로운 역사의 눈을 얻게 된다. 인류 최초의 4대 문명지로 알려진 지역의 문명을 낳아 준, 신교문화의 원산지 환국의 문명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위대한 광명의 대무(大巫)라는 화이트 샤먼(White Shaman)이 나와서 일으킨 위대한 정신문명의 대선인(大仙人)들 나라가 환국의 실체임을 누가 있어 제대로 알까? 환국을 구성하였던 한 일파인 몽골족의 후손들이 광명의 제국을 다시 한번 역사 속에 드러낸 것이 칭기스칸의 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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