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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뿌리의 인연, 브라만교, 불교, 힌두교 - 쿠르간 가설

환단스토리 | 2019.05.08 21:09 | 조회 1092


한 뿌리의 인연, 브라만교, 불교, 힌두교

쿠르간 가설


글 | 홍익희    세종대 교수


조선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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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야 김부타스
인도유럽어족에 대해 공부하다 재미난 가설을 알게 되었다.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고고학자 마리야 김부타스(영어:Marija Gimbutas, 리투아니아어:Marija Gimbutienė)는 고고학과 언어학을 결합하여, 인도유럽어족의 기원에 관해 1956년 ‘쿠르간 가설’을 발표했다.
 
쿠르간은 터키어로 ‘언덕’이라는 뜻으로 고대의 거대분묘를 의미한다. 고대에 있어 민족들 간의 가장 뚜렷한 문화적 구분은 조상을 묻는 매장방식이었다. 여기에 착안하여 김부타스는 러시아 남부 초원지역의 쿠르간(Kurgan, курган)이라는 ‘봉분 있는 무덤’을 가진 문화에 주목하고 이를 조사하여 "쿠르간 문화"라고 불렀다. 전형적인 쿠르간 무덤모양은 신라 왕릉에서 보여 지는 ‘적석목곽분’ 형태로 이런 유형이 흑해 북안과 알타이 지역에서 흔히 보이는 오리지널 쿠르간 무덤 형태이다.
 
그녀는 쿠르간 문화의 전파 경로를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기원전 50~30세기에 걸쳐 흑해 북안에 살던 종족이 처음으로 말을 길들여 강한 무력으로 주위를 정복해 나갔다는 ‘기마민족설’을 제기하면서 이들을 통해 쿠르간 분묘와 그 문화가 유럽과 중앙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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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간 가설에 의한 인도유럽어족의 이동

그녀의 이론은 한 동안 절대적으로 통용되었다. 그러다 1987년 영국 고고학자 콜린 랜프류는 인도유럽인이 기원전 70세기 이전에 소아시아에서 건너온 농경인이라는 주장을 제기하여 폭 넓은 지지를 받았다.
 
최근에는 이 유력한 두 이론을 통합하려는 시도가 있는데 이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유전학자 카빌리 스포르짜의 유전자 연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쿠르간 문화와 관련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유전형질은 중앙아시아에서 서아시아, 인도, 이란, 유럽 중부와 동부 슬라브족, 유럽 북부 스칸디나비아인에 자주 보이며 그 주변으로 갈수록 점점 드물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에 따르면 소아시아에서 유래한 농경민족이 발칸반도로 들어선 후에 북쪽의 흑해 북안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말을 타는 기마민족이 되어 유럽과 북인도 지역을 정복해 나갔다는 주장이다. 어쨌든 이들이 한 뿌리에서 나온 인도유럽인이고 이들이 쓰던 언어가 인도유럽어이다. 이 언어에서 많은 언어들이 파생되어 나왔다. (출처; 인도유럽인, 세상을 바꾼 쿠르간유목민, 라인하르트 쉬메켈 지음, 푸른역사)
 
아리안의 이동
 
기원전 25~20세기경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코카서스 지방에 인도유럽어를 쓰는 아리안이라 불리는 백인 유목민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이 최초로 불의 온도를 1000도 이상으로 끌어올려 철기시대를 연다. 그 뒤 기후 변화로 초원의 풀이 사라지자 그들은 먹이를 찾아 이동해야만 했다. 철기와 전차로 무장한 그들은 쉽게 주변 청동기 부족들을 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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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안의 대이동이 시작되어 일부는 유럽으로, 일부는 지중해 바닷가로, 일부는 이란을 거쳐 인도 북부를 침입해 정복했다.
 
이들이 정복 과정에서 탄생시킨 종교가 조로아스터교와 브라만교이다. 선과 악의 대결이 강조되었던 조로아스터교는 유대교에 영향을 주어 오늘날 기독교 사상에 크게 영향을 미쳤으며 브라만교는 인도 토속 종교와 결합해 오늘날 힌두교의 모체가 되었다.
 
 
브라만교의 탄생
 
카스트제도는 아리안이 기원전 15세기경 북인도를 침입하여 원주민인 드라비다족을 정복하고 자신들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아리안은 원주민을 평정한 다음 지배를 확고하게 하기 위해 '바루나'(Varna)나 불리는 신분제도를 만들었다.
 
'바루나' 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색'을 의미한다. 결국 피부색에 의해 신분이 구분된 것이다. 백인인 아리안이 지배계급이다. 그 뒤 아리아인들도 사회적 기능에 따라 계급이 구분되어졌다. 따라서 고대 신분제도인 바루나가 카스트 제도의 기본을 이루고 있다.
 
카스트 제도에 따른 인도인의 신분은 브라만(승려). 크샤트리아(왕이나 귀족). 바이샤(상인). 수드라(일반백성과 천민) 등 4개로 구분되었다. 그 외에 최하층인 수드라에도 속하는 않는 불가촉천민이 있다. 불가촉천민은 '이들과 닿기만 해도 부정해진다.'는 생각 때문에 이렇게 불렸다. 또 각 계급에서도 구체적인 직업에 따라 계급이 세분되어 바이샤와 수드라의 경우 2천 여 개 이상으로 세분된다.
 
신분이 다른 계급 간에는 혼인을 금했다. 그리고 이름에서부터 신분간의 차이가 드러나도록 했다. 카스트 제도는 브라만교의 '업'과 '윤회'사상을 근거로 정당화되어 사람들이 이를 숙명으로 여겼다.
 
카스트 제도의 목적은 이렇게 아리안들이 들어와서 선주민들인 혼혈족을 지배하고 자기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선주민들과 혼혈 뿐 아니라 식사하는 것까지 금하고자 종교의 이름을 빌려서 제도화시킨 것이다. 이것이 브라만교가 탄생된 이유의 하나이다. 그래서 브라만교에는 특정 교조가 없다.
 
브라만교에 대해 알아보자. 초기 브라만교는 다양한 신을 숭배했고 그들로부터 구복을 바라는 단순한 형태였다. 자연현상의 배후에서 지배력을 행사하는 신들을 상정하고 그것을 인격적 주체로 구체화하고, 더불어 불과 같은 요소를 숭배하여 장수, 다산 등을 바랬다. 곧 태양신 수르야, 어둠과 축복의 신 푸샨, 선의 신 미트라, 공기의 신 인드라 등 삼라만상의 존재를 신격화했다. 아마 수메르 신화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신을 가려서 제를 올렸기에 그 수는 33신 혹은 3,333신이나 되었다.
 
아리안들이 인도 이주 뒤 처음 만든 경전이 "베다"이다. 베다는 알다(知)라는 뜻이다. 브라만교 교의와 제례규정, 찬가 등을 담고 있는 방대한 산스크리트어 문헌으로 성경의 6배에 달한다. 브라만교 전통에서 베다는 인간이 만든 작품이 아니라 신의 계시를 받은 리시(rishi, 성자)를 통해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베다를 하늘의 성전이라는 뜻의 슈루티(Sruti)라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후 브라만교는 '우파니샤드'라는 경전이 탄생하면서 우주의 근본원리 브라만(Brahman, 梵)과 개인의 본체인 아트만(atman, 我)이 동일하다는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이 브라만교의 중심사상이 된다.
 
우주의 근본원리인 범(梵)과 불변하는 영원한 참 존재인 나(我)는 하나라는 뜻이다. 외부가 아닌 나의 내면에 있는 신을 찾고 의례적인 제식이 아니라 만물에 스며있는 브라만을 찾으라는 가르침이 핵심이다.
 
그리고 기초개념으로 ‘윤회와 달마(達磨), 업(業), 해탈’을 제시했다. 이러한 관념은 뒤에 인도에서 발생한 모든 종교의 근본개념이 된다. 특히 이는 훗날 불교의 중심사상이 된다.
 
브라만교는 제사장인 브라만의 역할에 따라 개인과 우주의 운명이 달라진다고 가르쳤다. 그 무렵 씨족 사회를 벗어나 군데군데 소국을 세운 왕들은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해 브라만과 손잡았다. 왕들은 대규모 제사의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제왕으로 인정받았다. 종교와 정치의 결탁은 신정일치의 사회를 이루어 계급구조를 공고히 하며 기원전 6세기 신흥세력의 도전에 직면할 때까지 계속됐다.
 
 
불교의 탄생
 
이러한 브라만 중심의 지배질서에 맞선 신흥세력들이 갠지스 강 유역에서 힘을 키웠다. 그리고는 누구든 전생의 업으로 비롯된 운명에 충실해야 더 나은 생을 얻는다는 브라만식 사상 대신 인간의 운명이란 각자 행하기 나름이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붓다 사상을 받아들였다.
 
붓다의 일깨움은 평소 하층계급과 연결된 모계혈통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던 마우리아 제국의 3세손 아소카 왕을 크게 고무시켜 하나의 인도 건설을 뒷받침하는 통치이념이 되었다. 그 뒤 서민들이 불교에 마음을 열었다.
 
이렇게 카스트 제도와 브라만교에 반발해 태어난 종교가 불교다. 불교는 만민평등사상을 그 뿌리로 삼고 있다.
 
불교가 출현한 기원전 6세기경의 브라만교 실상과 사회 환경을 살펴보자. 다신교인 브라만교는 신과 조상들에게 드리는 제사의례를 중시했다. 그리고 카스트 4계급이 각각 지켜야 할 의무를 강조했다. 브라만교는 기원전 6~7세기에 인도 중부와 동부로 퍼져나갔다. 이 새로운 지역에 도시들이 생겨나고 상공업이 발달해 강력한 군주국들이 출현했다.
 
이에 따라 브라만들의 종교적 권위와 지도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도시 분위기는 보다 합리적인 새로운 종교를 요구했다. 번잡한 제사의례에 대한 비판과 제사 행위 대가로 사후 천상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린다는 관념에도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범아일여 사상에도 나타났다. 인간은 '유한한 행위'(業 karma)로서는 도저히 영원한 세계를 얻을 수 없고 끊임없이 윤회하며 생과 사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자각이 일어났다. 더불어 인간의 참 자아와 우주의 궁극적 실재를 아는 신비적 지식을 통한 해탈이 강조되었다.
 
카스트의 본질은 인간을 원천적으로 생각하는 자(영혼이 있는 자)와 단순히 일만 하는 자(영혼이 없는 자)로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카스트 체제에서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존재는 영혼을 가진 브라만 등 상층계급에 국한된다. 하층계급 특히 카스트에도 속하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은 영혼이 없는 존재로 치부되었다. 이러한 하층민들에게는 브라만교가 아닌 새로운 종교가 필요했다.
 
그러자 인도에서는 브라만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제사행위와 내세를 거부하는 새로운 종교운동들이 나타났다. 이러한 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을 사문(沙門)이라 불렸다. 그들은 출가자들로서 숲속에서 고행과 명상을 통해 인생문제에 대해 다양한 해결방식을 제시했다.
 
그들 가운데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가 있었다. 석가모니라 함은 석가족 출신의 성자라는 뜻이다. 성은 고타마, 이름은 싯다르타이다. 뒤에 깨달음을 얻어 ‘붓다’라 불렸다. 신도 사이에서는 진리의 체현자(體現者)라는 의미의 여래(如來), 존칭으로서의 세존(世尊), 석존(釋尊)으로도 불린다.
 
석가족 왕자로 탄생한 석가모니는 안락한 삶을 살았지만 영혼의 평안을 얻지 못했다. 그는 29살에 출가해 6년간의 고행 끝에 35세에 크게 깨달아 녹야원이라는 동산에서 다섯 명의 비구들에게 최초의 가르침을 주었다. 그 뒤 그는 45년에 걸쳐 인도 각지를 돌며 설법을 전파하며 해탈의 길을 제시했다. 기원전 6세기의 일이었다. 그 뒤 브라만교는 불교에 밀려 쇠퇴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고 난 후 불교가 발전되어 오다가 기원전 3세기경 대부분의 인도지역을 통일한 아소카 왕에 의해 불교가 세계 여러 곳으로 전파되었다. 아소카 왕은 해외에 전법사를 보내 스리랑카, 미얀마를 비롯해 이집트, 그리스, 북아프리카까지 불교를 전파했다.
 
특히 불교가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1세기경부터로 이때 새로운 불교운동이 일어났다. 자신의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중생들의 교화를 위한 보살사상을 우선하기 시작했다. 이를 대승불교라 한다. 대승불교는 이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지방을 거쳐 중국, 우리나라 일본 등지로 전해지며 크게 발전했다.
 
 
브라만의 역습, 힌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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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는 1세기부터 3세기까지가 불교의 전성기였다. 그러다 4세기경 반전이 일어났다. 인도가 불교의 발상지임에도 5세기경부터 불교가 쇠퇴한 이유는 불교가 기본적으로 인도인의 뿌리박힌 사상인 카스트 제도에 반대하고 남녀평등 사상에 따라 승려계급에 여성 참여를 허용해 기득권층의 격렬한 반발과 저항을 샀기 때문이다.
 
서민종교인 불교가 쇠퇴하면서 인도인에게는 그들의 성향에 맞는 새로운 종교가 필요했다. 이때 브라만교가 변신을 시도하고, 소나 말 같은 동물을 잡아서 드리던 제사 대신 이를 꽃과 과일로 간소화했다. 그리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만나는 삶의 고비마다 의미를 부여해서 작명식, 돌잔치, 결혼식, 장례의식을 철저히 챙겼다. 낮은 곳으로 더 가까이 다가간 것이다. 이렇게 브라만교가 인도의 여러 토착종교와 결합하고 기존 불교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비슈누와 시바’를 최고신으로 하는 힌두교로 발전했다.
 
반면 불교는 참선, 고행을 강조하며 민초들의 삶에는 세심한 눈길을 주지 못했다. 밑바닥 사람들은 굿을 하던지 푸닥거리를 해야 사는 재미가 났다. 그 뒤 불교는 신도와 승려의 거리가 멀어지고, 민중 속으로 파고들어 토속신앙과 결합한 힌두교를 당해내지 못했다.
 
인도 종교와 철학은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는 가의 여부에 따라 두 파로 나뉜다. 곧 정통파를 뜻하는 아스티카와 비정통파를 뜻하는 나스티카로 구별된다. 아스티카 그룹은 대략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6세기 동안 분화되어 여섯 힌두철학 학파 곧 삼키아 · 요가 · 니야야 · 바이셰시카 · 미맘사 · 베단타 학파로 나뉘었다. 반면 불교 · 자이나교 · 차르바카파와 기타 다른 종교나 학파들은 나스티카로 분류되었다.
 
이 시기에 이들 학파들은 지지자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힌두교는 베다 전통이 민속 신앙들과 융합하면서 고대의 베다 종교가 새로운 모습으로 부흥한 형태로 시기적으로는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하였던 8세기경에 출현했다. 이렇듯 인도인의 사상 속에는 베다를 중심으로 하는 사상이래야 정통으로 인정되고 불교와 같은 나스티카 종교나 사상들은 비정통으로 인식되는 뿌리 깊은 베다 사상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힌두교와 고대 브라만교와 차이점이 있다면, 브라만교가 《베다》에 근거하여 희생제를 중심으로 하며 신전이나 신상(神像) 없이 자연신을 숭배한 데 비해, 힌두교는 신전과 신상이 있으며 인격신이 신앙의 중심이 된다는 점이다. 또한 신불(神佛)에 산 제물을 바치는 공희(供犧)를 반대하여 육식이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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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의 경전은 브라만교에서 유래된 《베다》와 《우파니샤드》이며 그 외에도 《브라흐마나》, 《수트라》 등의 문헌이 있다. 힌두교는 브라만교에서 많은 신관(神觀)과 신화를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다신교 같이 보이지만, 신들의 배후에 유일한 최고신을 설정하고 힌두교의 여러 신들을 최고신의 다양한 현현(顯現)으로 통일시키고 있는 점에서 일신교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오늘날 인도는 헌법적으로 만민평등 사회이다. 그럼에도 인도인의 일상생활에서 힌두 카스트식 불평등사상과 신분질서가 실질적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아이러니다. 현재 인도의 최대 종교는 힌두교이다. 인도인의 80%가 힌두교를 믿고 있는 반면 불교신도는 전체 인구의 0.8%인 800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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