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뉴스

한국 연극계의 산증인 고 백성희의 명복을 빌며

신상구 | 2016.01.09 21:38 | 조회 2556

                                                 한국 연극계의 산증인 고 백성희의 명복을 빌며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신상구
 
   원로 연극 배우 백성희(白星姬, 본명 이어순)는 1925년 9월 2일 서울에서 출생했다.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에서 연극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부모님 몰래 동덕여고 재학 중인 17세 때에 3대 1의 경쟁을 뚫고 빅터무용연구소(소장 : 이시이 브리가) 연습생으로 들어가 열심히 무용과 연극 연습을 한 결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빅터가극단 단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첫 공연 작품은 부민관에서 공연된 가극 <심청전>이었고, 배역은 뺑덕 어미였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항석 선생의 추천으로 동덕여고 3학년 때인 1943년에 극단 현대극장(대표 : 유치진) 단원으로 입단한 후 연극 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해 그 이듬해인 1944년에 연극 '봉선화'로 데뷔했다. 이 연극은 김 선영, 이 화삼, 유 계선, 강 홍식 등 연극계의 거성들이 등장하는 참으로 볼 만한 연극이었다. 극단 현대극장은 만주의 심양성과 길림성 일대까지 가서 순회 공연을 했다.  

   1950년에 극단 신협에 들어간 이후 2013년까지 400여 편(재공연 및 지방공연 포함)의 작품에 출연했다. 특히 1950년 창단한 국립극단의 현존해 있는 유일한 창립 단원이자 현역 원로단원으로, 최근까지 연극 '3월의 눈(2013)', '바냐아저씨(2013)' 등에 출연했다. 대표작으로는 <봉선화>(1943), <뇌우>(1950), <나도 인간이 되련다>(1953), <씨라노 드 벨쥬락>(1958), <베니스의 상인>(1964), <만선>(1964), <달집>(1971), <무녀도>(1979),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81), <메디아>(1989), <강 건너 저편에>(2002), <3월의 눈>(2011) 등이 있다.
   1972년 국립극단에서 처음 시행한 단장 직선제에서 최연소 여성 단장으로 선출돼 1974년까지 재직했고, 리더십과 행정력을 인정받아 1991∼1993년 다시 한번 단장을 지냈다. 그리고 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 국립극단 지도위원, 문화예술총연합회 이사 등 주요 직책을 맡아 한국 연극계의 리더로 활약했다. 한편 그는 1970년 이후 1990년대 까지 연극 공연 현장에서 유치진, 김동훈, 이애랑, 장미호 등 원로 연극 배우들과 함께 한국 연극계를 이끌어왔으며 1998년부터는 국립극단 원로단원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그는 18세에 연극 무대에 데뷔한 이후 현대극장, 낙랑극회, 신협, 국립극장, 백성희 ․ 장민호극장에서 70년 넘게 연극을 공연하면서 한 길만을 걸어온 한국 연극사의 산증인으로 꼽혔을 뿐 아니라 2010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배우의 이름을 따 문을 연 극장인 `백성희 ․ 장민호극장`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백성희 ․ 장민호극장은 한국 연극 100년사에 길이 남을 극장이다.  
    2002년부터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80대 고령으로 갈비뼈를 다치고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마에 시달림에도 불구하고 90세로 타계하기 2년 전까지 장민호, 박근영, 박정자 등 원로배우들과 함께 연극 공연을 하여 한국 리얼리즘 연극의 진수를 보여줌으로써 후배 연극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국립극단은 2015년 12월 22일 회고록 발간에 맞춰 고인의 연극계 업적을 기리는 연극인 심포지엄 ‘국립극단 65년과 백성희’를 개최했다. 손숙, 남명렬의 사회로 진행된 행사에는 배우 박정자, 김소희, 박상규(前 국립극단 단장, 상명대학교 연극학과 교수), 김남석(회고록 엮은이,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이 패널로 참석하였으며, 약 230명의 연극인이 자리를 함께했다.
   고 백성희는 회고록『연극의 정석』에서 밝혔듯 "작품은 가려서 선택하지만, 배역은 가리지 않는다"는 신조로 평생 400여 편의 연극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한국연극영화예술상(제1회 백상예술대상,1965), 동아연극상(1965), 3.1연극상(1969), 대통령표창(1980), 보관문화훈장(1983), 대한민국연극제 여자주연상(1985), 동랑유치진연극상(1988), 대한민국문화예술상(1994), 이해랑연극상(1996), 춘강상(1997), 대한민국예술원상(1999), 비추 미여성대상(2009), 은관문화훈장(2010) 등을 수상했다.
   백성희는 서울의 연세사랑요양병원에서 입원하던 중 노환으로 2016년 1월 8일 밤 11시 18분께 91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12일 오전 8시 30분이다. 장례는 대한민국 연극인장으로 치러지며 12일 오전 10시 용산구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영결식을 갖는다. 영결식 후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손진책 前 국립극단 예술감독의 연출로 노제가 진행된다. 장지는 분당메모리얼파크다.
   유족으로는 외아들 나결웅(67세)이 있다.  
                                                                               <참고문헌>
   1. 홍준호, “국립 극장의 귀신이 되려나 - 연극배우 백성희”,  털어놓고 하는 말,    2014.6.8.
   2. 김남석,『연극의 정석(백성희의 삶과 연극)』, 연극과인간, 2015.11.30.
   3. 황서연, “배우 백성희가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 티브이데일리, 2016.1.9일자.
   4. 문완식, “연극계 큰별 지다...백성희, 8일 별세 향년 91세”,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2016.1.9일자.
   5. 김정은, “'한국 연극계 산증인' 배우 백성희 별세(종합)”, 연합뉴스, 2016.1.9일자.
   6. 유연석,  “한국 연극의 산 역사, 원로배우 백성희 별세(종합)”, CBS노컷뉴스, 2016.1.9.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5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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