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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문학의 산실인 정훈 시조시인 고택 곧 사라질 위기, 어떻게든지 지켜내야

신상구 | 2016.06.24 17:01 | 조회 1782

                          대전문학의 산실인 정훈 시조시인 고택 곧 사라질 위기, 어떻게든지 지켜내야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 辛相龜

    소정(素汀) 정훈(丁薰, 1911-1992) 선생은 본명이 정갑주로 1911년 3월 16일 충남 논산군 연산면 인내에서 태어났다. 휘문고 3학년 때인 1935년에 교지인『휘문』에 처녀작 <연꽃>과 <민요>를 발표했고, 지도교사였던 정지용 시인의 주선으로『가톨릭 청년』(편집주간 : 정지용) 1월호에 시 <유월 하늘>를 발표했다. 이 시는 대전 시문학의 효시가 되었는데, 1937년 동인지『子午선』 창간호에 <유월공(六月空)>이란 제목과 재구성된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 후 1949년에는 첫 시집『머들령』을 상재하여 박용래(朴龍來,1925-1980), 한성기(韓性祺, 1923-1984) 시인과 함께 대전의 대표적 향토시인으로 꼽힌다. 그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부터 충청 문학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지 한때 문학 청소년들은 그를 동경의 대상으로 삼았다. 오늘날 그의 선구적이고 향토적인 치열한 문학정신은 지역의 소중한 문화자산으로 보전돼야 할 당위성을 지닌다. 
   그런데 대전문학의 산실인 정훈 시인 고택이 지역사회의 무관심 속에 또 한 번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지난 6월 20일 대전문학계에 따르면 중구 대흥동에 있는 정훈 시인의 고택이 최근 매각절차를 밟고 있다.
   정훈 시인은 충청이 낳은 대표적인 향토시인이자 한의사이자 교육자로, 젊은 시절부터 작고할 때까지 이 고택에서 반평생을 넘게 살았다.
   대전 중구 대흥동 50-7번지에 위치한 이 고택은 정훈 선생이 만든 지역 최초의 학생문학동인회인 ‘머들령문학회’가 탄생한 곳이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후 대전 최초의 문예지인『향토(鄕土)』와 『동백(冬柏)』을 창간한 요람이기도 하다. 차남 정병선(66) 씨의 증언에 따르면 정훈 시인은 생전 이곳에서 박용래, 이재복, 송석홍 시인 등과 함께 문예지인 『향토(鄕土)』와 『동백(冬柏)』을 만들었다. 그리고 소정 정훈 선생의 치열한 작가정신이 서려 있는 곳이자 박용래 등 내로라하는 지역 문인들이 들러 문학과 예술을 논했던 문학 사랑방이자 공부방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정훈 시인 고택은 충청지역의 문학사적 의미가 높게 평가받고 있다. 정훈 시인이 1992년 타계한 후 장남 고 정심 시인이 머물며 혜남한약방과 함께 문학 활동을 이어갔지만 20여 년 전 작고한 뒤부턴 차남 정병선(66)씨가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의 손길이 오랫동안 거의 닿지 않아 이미 폐허가 된 정훈 시인 고택 안채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마당가에는 개망초 바랭이와 함께 100년도 넘은 듯한 작약과 주목 한 그루만이 무심하게 <머들령> 문학의 산실을 지키고 있다.
   건축학적으로도 1930~194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한편에서는 문화재 등재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밀고 끌고

                                                                                  정 훈 대표 시조
 
                                                               날랑 앞에서 끌께
                                                               엄닐랑 뒤에서 미세요
                                                               한밭 사십리 길
                                                               쉬염  쉬염 가세요
                                                               가다가 지치시면
                                                               손만 얹고 오세요
                                                               걱정 말고 오세요                
                                                               발소리만 내세요
                                                               엄니만 따라 오시면
                                                               힘이 절로 난대요
                                                               나무 팔고 갈 제면
                                                               콧 노래도 부를께요
                                                               형은 총을 들고
                                                               저는 구루마 채장을 들고
                                                               형이 올 때까지
                                                               구김 없이 살아요
                                                               엄닐랑 뒤에서 계세요
                                                               절랑 앞에서 끌께요
                                                               우리의 거센 길을
                                                               밀고 끌고 가세요
 
   <밀고 끌고>는 ‘머들령’과 아울러 정훈 선생의 시 의식과 정서, 사유구조를 명쾌하게 드러내는 대표작이다. 이 시조는 전쟁 후의 궁핍과 고단함을 가족의 협동심으로 잘 극복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잘 표현해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가족공동체 와해가 가속화되는 이즈음 새삼 그리운 정경이다.
   소정 선생은 학교법인 호서재단을 설립하고 운영하면서 '호서문학', '차령', '청자', '머들령' '가람문학' 등의 문학 모임을 결성하는 과정에서 후견인도 마다하지 않았다. 척박했던 당시 지역문단을 일깨웠던 문학 정신은 오늘날 후학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런 유서 깊은 장소가 속절없이 사라질 판이다. 이토록 절박한 상황이 되도록 모두 눈을 감고 방관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차남 정병선씨가 처음으로 고택의 매각 의사를 밝힌 때는 3년 전인 2013년으로 알려졌다. 최근 인근 요양병원이 매입 의사를 밝히면서 현재 계약금까지 전해진 상태로, 내달 15일 전까지 잔금을 치르면 고택의 소유권은 요양병원으로 넘어가게 된다.
   고택의 매각 사실이 알려지자 지역 문인들은 대전시와 대전 중구청에 보존을 요구하고 나섰다. 단순히 시인 한명의 고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대전문학계의 큰 손실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게 문인들의 설명이다.
   대전지역 문인들의 삶이 기록된 곳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적은 이번이 첫 사례가 아니라는 점에서 보존의 필요성은 더 강조되고 있다.
   앞서 지난 2008년에는 눈물의 시인으로 불리는 고 박용래(朴龍來, 1925-1980) 시인이 20여 년간 살던 집이 철거 후 공영주차장으로 바뀌고 그 자리에 현재 표지석만 남아있어 지역문학계의 큰 아쉬움을 산 바 있다.
   대전문인협회에서 뒤늦게나마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다. 몰가치적인 문화행정 수준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박용래 시인의 생전 오류동 집도 그랬었다. 그 집을 그냥 헐어 버리고 그 자리에 공영주차장을 만들어 버렸다. 타 시도에서는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유명 작가의 조그만 숨결이 서린 곳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장소 마케팅을 활용, 문화 콘텐츠화해서 지역 정체성 및 문화 자원화 하는 추세와는 거리가 멀다. 입으로는 지역문화 창달을 외치면서도 지역 작가 정신을 기리거나 보존하는 일에는 인색한 까닭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못할 게 없다. 문화시민이라는 지역 자존심을 걸고 대전의 문화예술인들이 소정 선생 문학의 산실을 지키려는 뜻만 모으면 충분히 정훈 시인의 고택을 지켜낼 수 있다. 내 고장 문인의 삶과 혼, 업적을 통해 오늘의 가치를 찾고 미래의 비전을 설정하는 건 오로지 우리 몫이다. 대전시, 대전문화재단, 중구청, 중구문화원 그리고 대전문인들의 역할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권득용 한국문인협회 대전지회장은 “대전문학의 산실이 이렇게 또 사라진다니 막막할뿐”이라며 “이곳을 지키는 것은 문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대전시민의 책무”라고 강조하고, “시ㆍ구청과 대전문화재단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6월 20일 오전 대전시 도시재생본부와 중구청을 방문해 “고 정훈 시인의 자택을 문학 투어의 요지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박헌오 전 대전문학관장도 “대전의 현대문학이 잉태된 곳으로 쉽게 없애서는 안 될 역사적 현장”이라며 “화려하진 않지만 깊은 뜻이 숨어 있는 근대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고 단계적으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대전문협은 정훈 시인 고택 매각 사실을 전해 듣고 정훈 시인이 고택에 보관했던 문향 가득한 책 등 소장품 200여점만 간신히 수습한 상황이다. 지역문학계는 고택이 병원에 매각될 경우 완전히 헐려 주차장으로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문인협회 대전시지회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충청시단의 선구자 ‘정훈 시인’의 고택을 살리기 위해 지역 문인과 문인단체들을 대상으로 시인의 고택 보존을 촉구하는 연대서명을 받을 계획이라고 지난 6월 21일 밝혔다. 대전문협은 관계된 행정기관인 대전시, 대전중구청, 대전중구의회, 대전문화재단 등에도 탄원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그러나 문제는 인근 요양병원에서 고택을 매입해 현재 계약금까지 지불한 상황이기 때문에 요양병원 측의 양해가 없다면, 보존은커녕 더 이상 손도 쓰지 못하고 건물 철거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훈 시인의 둘째 아들 정병선 씨도 사실상 이 부분을 가장 난감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가 사리사욕과 이권 다툼으로 혼탁한 이 풍진 세상에 살면서 거짓말쟁이처럼 늘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지만 정작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즐기면서 우리의 전통 문화와 예술을 보존하고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키는 데에 헌신하는 사람은 드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약탈당하고 파괴되었던 수난의 역사를 우리가 지금까지 기억하며 분노하고, IS대원들의 무자비한 고대문명파괴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 대전 시민 대다수는 지역문화유산의 소중함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전통문화는 우리 한민족의 정신적 유산이며 최근 한류에 힘입어 미래창조경제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지역문화예술을 보존하고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나갈 책무가 있다. 그럼에도 현실은 어떠한가. 대부분의 근대문화유산은 거의 방치되다시피 하여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고 정훈문학상, 박용래문학상, 한성기문학상이 초라하게 대전문학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다른 지역에서는 언감생심 생각지도 못할 눈물의 시인 박용래가 살던 고택이 주차장으로 이미 변하였고, 보문산의 명물 청심등대 세계평화탑이 지난 6월 14일 전격 철거되었으며, 다시 정훈 시인의 고택마저 요양병원에 팔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작금의 긴박한 상황에 대해서 대전시와 대전문화재단 그리고 중구청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팔짱을 끼고 언제까지 침묵할 것인가.
   정훈 시인의 고택이 팔리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가 모르는 척 청맹과니(靑盲과니, amaurotic person)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대전시민들과 대전의 문인들이 나설 차례이다. 예술의 도시 대전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하여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정훈 시인의 고택을 지켜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대전문화예술인들의 사명이자 책무이기도 하다.
   소정(素汀) 정훈(丁薰, 본명 丁甲秀, 1911-1992) 시인은 1911년 충남 논산 출생으로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하여 메이지(明治)대학에서 수학했다. 학교법인 호서재단을 설립하고 호서중학교 교장과 호서대학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문총 충남지부장, 충남예술위원회 위원장, 호서문학회 회장, 차령시조문학회장(1978), 가람문학회장(1979)을 역임하며 충청지역 문학을 선도했다. 그러나 그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저항 한 번 못하고 두 번이나 대전 중구 정생동에 위치하고 있는 천비산(天庇山) 선영(先塋) 산하로 피신해 숨어 살면서 시를 쓴 것을 항상 죄스럽게 생각한 나머지 그의 시 여기저기에 죄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1959년에 머들령문학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해방공간과 그 이후 모두들 기웃거리는 중앙문단에서 의연히 벗어나 대전 문단을 이끌어온 진정한 향토시인으로 『머들령』(1949) ·『파적(破笛)』(1954) ·『피맺힌 연륜』(1958) ?『산조』(1966) ?『정훈시선』(1973) ?『박의 비애』?『산촌서정』?『거목』(1979) 등 많은 시집을 발간했고, 시조집으로『벽오동』(1955) ?『꽃 시첩』(1960) ?『취아』등을 발간해 해방 후 1950년대 말까지 대전 문단을 주도했다.

    1994년 10월 9일 동구 하소동 만인산 휴양림에 정훈 시비가 건립되었다. 현재 그의 시신은 금산군 복수면 신대리 신세기 공원묘지에 안장돼 있다. 
                                                               <참고문헌>
    1. 신상구, “정훈 시인의 출생지 논쟁”, 충청투데이, 2014.12.31일자. 21면.

   2. 이규식,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충청시인 정훈의 ‘밀고 끌고’”, 굿모닝충청, 2016.1.5일자.

   3. 권득용, “대전문학사 조종(弔鐘) 울리는 소리”, 중도일보, 2016.6.20일자. 22면.

   4.

   5. 박영문, “故 정훈 시인 고택 매각 위기 ‘머들령문학회 산실’ 지켜내야”, 대전일보, 2016.6.21일자. 5면.

   6. 임효인, “시인들의 사랑방…“고 정훈 시인 자택 보존해달라”, 중도일보, 2016.6.21일자. 8면.

   7. 홍서윤, “대전문학산실 '정훈 시인 생가' 매매… 박용래 시인 생가는 주차장 변질”,

충청투데이, 2016년 6월 21일자. 제7면.

   8. 홍서윤, “대전지역 문인들 '향토문인 고택' 살리기 전방위 지원나서 -고택보존 촉구 연대서명 추진”, 충청투데이, 2016년 6월 22일자. 제1면.

   9. “정훈 선생 작품 산실, 지역 자존심 걸고 지켜내야”, 충청투데이, 2016.6.21일자. 21면.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7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시부문 신인작품상, <한비문학>?<오늘의문학> 문학평론부문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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