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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훈 시조시인 대흥동 고택 7월 7일 전격 철거 단행 역사속으로 사라져

신상구 | 2016.07.09 18:52 | 조회 1678

                           고 정훈 시조시인 대흥동 고택 7월 7일 전격 철거 단행 역사속으로 사라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 辛相龜
        
   충청문화역사연구소는 대전 동구에 위치한 사설 연구소다,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신상구(辛相龜, 66세) 국학박사는 2년 전부터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사비로 밤을 지새우며 충청지역(대전광역시, 세종시, 충청북도, 충청남도) 문학사를 포괄적으로 집필하고 있다. 우리 충청문화역사연구소가 대전에 위치하고 있어『대전 문학 600년사』를 중심으로  집필하고 있다. 충청지역의 수많은 문인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문학 유적지를 답사하는가 하면, 도서관을 찾아 자료를 수집정리하고 있다. 이처럼 충청지역 문학사를 정리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경비가 소요되어 어려움이 많이 있다. 그렇지만, 공직 퇴직 후 사회봉사 활동의 일환으로 사명감을 갖고 즐겁게 문학 사료를 수집해 충청지역 문학사를 정리하고 있다.
   대전 문학사는 조선 초기부터 시작되나 이제까지 해방 이전의 대전 문학사는 어느 누구도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했다. 영광스럽게도 우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에서 처음으로 해방 이전의 대전 문학사를 정리하고 나니 감개무량하다. 우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에서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의 대전 문학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고 정훈 시인을 알게 되었다.
   고 소정(素汀) 정훈(丁薰, 본명 丁甲秀, 1911-1992) 시조시인은 고 박용래(朴龍來, 1925~1980) 시인, 고 한성기(韓性祺, 1923-1984) 시인과 함께 대전의 3대 시인으로 대전 근대문학의 초석을 다져 대전 문학사에서 그 이름 석 자가 찬란히 빛나고 있다. 정훈 시인은 한의사이자 교육자로, 젊은 시절부터 작고할 때까지 이 고택에서 반평생을 넘게 살았다. 이 고택은 정훈 선생이 만든 지역 최초의 학생문학동인회인 '머들령문학회'가 탄생한 곳이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후 대전 최초의 문예지인 '향토(鄕土)'와 '동백(冬柏)'을 창간한 요람이기도 하다. 또 박용래 등 내로라하는 지역 문인들이 들러 문학과 예술을 논했던 문학 사랑방이자 공부방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정훈 시인 고택은 충청지역의 문학사적 의미가 높게 평가받고 있다.
   정훈 시인이 1992년 타계한 후 장남 고 정심 시인이 머물며 혜남한약방과 함께 문학 활동을 이어갔지만 20여 년 전 작고한 뒤부턴 차남 정병선(66)씨가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의 손길이 오랫동안 거의 닿지 않아 이미 폐허가 된 고택 안채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마당가에는 개망초 바랭이와 함께 100년도 넘은 듯한 작약과 주목 한 그루만이 무심하게 '머들령'문학의 산실을 지키고 있다.
   정훈 시인 고택이 건축물대장에는 1956년도에 지어진 것으로 표시돼 있지만, 안채는 1930년대에 건립된 전형적인 근대건축물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건축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정훈 시인 고택의 문화재 등재를 검토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훈 시인의 고택은 세종노인전문병원에 주자장용으로 팔려 2016년 7월 7일부터 7월 8일 오전까지 철거되었다. 7월 7일 오후와 7월 8일 오전에 정훈 시인의 고택이 철거되는 현장에 가보니 어떤 문인도, 어떤 신문 기자도, 어떤 공무원도, 어떤 주민도 눈에 띄지 않았다. 철거에 동원된 인부와 포크레인과 트럭만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일 뿐이었다. 강렬한 햇볕이 사정없이 내려쪼여 숨이 콱콱 막힐 정도로 무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포크레인과 트럭이 움직일 때마다 내는 시끄러운 광음이 귀를 먹먹하게 해도 가족들의 생계 유지를 위해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막노동을 열심히 하는 인부와 포크레인 기사와 트럭 운전기사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나의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그리고 정훈 선생 고택이 순식간에 허물어져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고, 건물 잔해만 앙상하게 쌓여 있는 황량한 모습을 보니, 너무 나도 황당하고 허무한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눈가를 촉촉하게 적시고 말았다.
   7월 8일 오전 11시 30분경 대전 문학사 관련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대전 문협 사무실에 들러보니 여성 간사 한 분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전 문협에서는 대흥동 정훈 고택이 이미 매각되어 7월 7일부터 철거에 들어간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6월 말부터 받기 시작한 서명을 계속 받고 있었다. 서명부를 보니 2016년 7월 8일 오전까지 230명의 문인들이 서명에 참여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중구청, 대전시청, 도시재생본부 등 관계 기관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한편 대전일보, 충청투데이, 중도일보, 금강일보 기자를 초청해 간담회를 개최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대전 중구청 공보실에 가서 2016년 7월 8일자 한 지방신문을 보니 3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게재되어 있었다.
   “충청시단의 선구자인 ‘정훈 시인’의 고택을 살리기 위한 범시민 운동이 본격화됐다. 대전예총과 대전민예총을 비롯해 대전문인협회, 대전작가회의, 호서문학회 등 10개 문인단체는 7일 오후 3시부터 대전시청역 2번 출구 앞에서 소정 정훈 선생 고택 살리기를 위한 탄원서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정훈 선생의 고택은 최근 인근 요양병원이 매입키로 계약했으며, 오는 15일까지 잔금을 치르게 되면 소유권이 최종적으로 넘어가게 된다. 서명운동은 시작 40분만에 150여명이 넘는 시민이 참여하면서 정훈 선생 고택에 대한 시민들의 높은 관심을 증명했다. 이날 서명운동에 참여한 시민 이종만(67) 씨는 “문화의 발자취를 보존키 위해 시민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촉구했다. 문인단체들은 향후 대전시장에 탄원서를 전달하는 한편으로, 매입자인 요양병원 측에 매입보류 요청과 정훈 시인을 재조명하는 심포지엄 등을 지속해서 개최한다는 방침이다."
   대흥동 정훈 고택은 이미 매각 절차를 끝내고 7월 7일부터 철거에 들어갔는데,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헛수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사후 약방문’, ‘버스 지나간 뒤에 손들기’ 등과 같은 속담들이 실감났다.
   중구청 문화재 담당자인 박인혁씨를 찾아가 문화재 관리 및 유지 보수에 관해 문의해 보았더니, 다음과 같이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중구청에는 문화재 담당 공무원이 1명뿐 이고, 2016년 문화재 유지 보수 관련 예산이 1,000만 원에 불과하다. 관리 대상 문화재가 49개에 달하는데, 정훈 고택과 청심등대세계평화탑은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아 관리 대상에서 빠져 있다.”
   한 마디로 요약 정리해 보면, 요즈음 충청지역 언론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대흥동 정훈 고택과 보문산 청심등대세계평화탑은 중구청의 관리 대상에서 제외되어 전혀 관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는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보존할 가치가 있는 근대 건물이나 비지정문화재도 예산을 확보해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행히도 중구청 문화재 담당자인 박인혁씨도 나의 제안에 공감을 표하면서 앞으로 대전 시청 문화재 담당자와 협의해 대책을 마련해 보겠다는 확답을 듣고 돌아올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다시 한 번 대흥동 정훈 고택 철거 현장을 가보니 철거가 한창 진행 중에 있었다. 이제는 정훈 시인 고택을 볼 수가 없다고 생각하니 정말로 너무나 마음이 허탈하고 안타까웠다. 미리 대책을 세워 지켜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후회스러워 죄책감마저 들었다.
   정훈 시인 자제인 정병선씨를 통해 정훈 시인 고택의 매매 과정을 알아보려 했으나 전화번호를 바꾸어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정훈 시인 고택 바로 옆에 있는 세종노인전문병원에 두 번이나 들러 정훈 시인 고택 매매 과정을 알아보려 했으나 담당 이사가 출타 중이어서 문의해 보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중구문학회 회원들의 모임에 참석해 다음과 같은 요지의 발언을 했다.
   “문인들의 바람과는 달리 대흥동 정훈 고택이 철거되는 현장을 가보니, 너무나도 황당하고 안타까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정훈 선생 후손마저도 정훈 선생 유지를 받들기를 거부하는 것 같아 너무나 안타깝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훈 시인 고택을 어떻게든지 지켜내기 위해 일간 신문에 여러 번 기고도 하고 지자체에 찾아가 여러 차례 보존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결국 지켜내지 못해 죄책감마저 듭니다.”
   중구문학회 회원들 대다수가 나의 발언에 공감하는 것 같아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전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와 근현대 건축물들이 하나 둘 사라져버려 정말로 안타깝고 어처구니없고 한심하다. 이미 박용래 시인의 고택은 2008년에 헐려 주차장에 표지석만 세워져 있고, 보문산 청심등대세계평화텁은 한 달 전에 전격 철거되었으며, 정훈 시인 대흥동 고택도 2016년 7월 8일 철거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전통문화와 근현대 건축물은 일단 철거되어 사라져버리면 원형 그대로 복원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철거보다는 유지 보수하는 방향으로 문화재 관련 정책을 펼치고 있다.
   청심등대세계평화탑은 이 탑을 설계한 채수황(蔡洙凰, 79) 씨의 증언에 따르면 약 3000만 원이면 원래의 모습으로 보수가 가능했다. 하지만 자치단체와 보문산공원관리사업소가 건축전문가나 유지보수추진위원회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많은 비용을 들여 철거해버려 시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이제는 시민단체들이 전면에 나서서 지자체와 문화재청의 문화재 관리 실태를 점검하고 감시하면서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와 근현대 건축물들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데에 앞장서야 한다.
                                                               <참고문헌>
   1. 신상구, “대전문학의 산실인 정훈 시조시인 고택 곧 사라질 위기, 어떻게든지 지켜내야”, 중앙매일, 2016.6.29일자. 16면.
   2. 신상구,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정훈 시조시인 고택 지켜야 한다”, 중부매일, 2016.6.30일자. 15면.
   3. 신상구, “보문산 명물 청심등대세계평화탑 철거에 부쳐”, 디트뉴스, 2016.7.7일자.
   4. 홍서윤, “정훈고택 살리자 대전 문인들 지역단체와 서명운동 시작 - 대전예총·대전민예총 등 10곳”, 충청투데이, 2016.7.8일자. 3면.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9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시부문 신인작품상, <한비문학>?<오늘의문학> 문학평론부문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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