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뉴스

우리민족 자긍심에 주름 편 상고사 ‘환단고기’

환단스토리 | 2014.11.19 17:43 | 조회 2884
[길을찾아서] 우리민족 자긍심에 주름 편 상고사 ‘환단고기’ / 정해숙
2011-07-06


1982년 무렵 증산교 공부를 하면서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았던 우리 역사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냥 단군 할아버지라고만 배웠던 단군이 47대까지 이어져 왔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또 소련의 여성 인류학자가 발표한 일본어로 된 논문도 봤는데 ‘조선의 역사는 1만년에 가깝다’는 내용이었다. 이 논문은 일본을 통해 입수했다고 했다. 우리는 5천년 역사라고 배웠고 지금도 그렇게 말하는데 환인·환웅·단군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짚어보니 1만년에 가까운 역사였다. 우리 역사를 일제 때 친일 어용 학자들이 절반으로 만들어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내 나이 40대 후반이었으니, 자라는 미래의 주인공들 앞에 선 우리 교사들이 잘 모르는 역사, 엉터리 역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이 앞섰다.

이듬해 5월 전남대의 증산교 동아리가 교내 학생회관에서 며칠 동안 우리 역사 관련 자료를 전시하는 행사를 열었다. 나는 솔깃해서 김은수 선생한테 ‘같이 가자’며 정보를 알려줬다. 하지만 김 선생은 함께 가지 못했다.

5·18 이후 광주에서는 5월이면 전남대를 비롯해 여러 단체들이 추모행사를 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경찰이 터뜨린 최루탄으로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어수선한 최루탄 연기를 뚫고 나 혼자 전시회장을 찾았다. <환단고기>라는 책을 소개하는 자료를 얻어 다음날 학교에서 김 선생한테 전해주었다. 상고사를 공부하고 싶어했던 김 선생은 반색을 하며 ‘환단고기’ 복사본이라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환단고기는 1911년 계연수가 편찬했는데 제자 이유립에게 경신년(1980년)에 이 책을 공개하라 부탁했다고 한다. 79년 영인된 뒤 일본인이 일역을 하고 원문을 게재해 알려지게 되었다. 나는 증산교를 통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광주에서는 유일하게 일본 서적을 취급하는 춘추서림으로 찾아갔다. 책은 들어왔는데 개인이 사 보기에는 값이 너무 비쌌다. 그래서 전남대 도서관의 민 관장께 연락을 했더니, 대출은 안 되니 복사해 주겠다는 호의를 베풀었다.

집안의 큰손자였던 김 선생은 할아버지한테 한학을 배워 한자 서적을 풀이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한자로만 되어 있는 ‘환단고기’를 번역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김 선생은 늘 벙실거렸고 이마의 내천 자가 풀렸다. “웬일이세요? 표정이?” “이 책 번역하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이 책을 보니 우리 역사가 이렇게 훌륭한 역사인지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김 선생은 마침내 85년 6월 <주해 환단고기>(가나출판사)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서문에서 ‘정해숙 선생님, 자료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환단고기’를 읽으면서 나 역시 가슴이 벅찼다. 5·16 쿠데타와 전두환 정권의 국가폭력으로 국민들 심성은 갈기갈기 찢기고 현실은 참혹했다. 하지만 특히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환단고기를 보면서 이렇게 훌륭한 문화를 가진 민족의 후손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책 출판 이후 서울의 <한국방송>(KBS)에서 학교로 취재를 왔고, 얼마 동안 연속적으로 방송했다. 한동안 ‘환단고기’에 대한 정사·야사 논쟁이 일어나 방송에서 토론회도 열렸다. 이병도 계열의 제도권 학자들은 야사라고 일축해 버렸지만 거기에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번역자인 김은수 선생이 대학교수였다면 다른 차원에서 접근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사회의 학문 풍토를 확인한 씁쓸한 장면이다.

‘환단고기’ 출간 이후 김은수 선생은 한신대 김신 교수로부터 하버드대학의 한국학 담당 미국인 교수와 셋이서 ‘토인비의 세계사가 쥐구멍을 찾을 날이 오도록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써보자’는 제안을 받아 그렇게 합의를 했다고 했다. 또 광주·전남지역의 금호문화재단에서 해마다 사회·역사·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사회적으로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상과 상금도 받았다.

상에 고무된 김 선생은 ‘세계사를 바르게 정리하겠다’는 큰 뜻을 품고 그 상금으로 공부할 책을 가득 사서 차에 싣고 장성의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철로를 지나다 목포에서 서울로 가는 특급열차와 부딪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나는 텔레비전을 통해 사고 소식을 들었다. 88년 1월이었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다. ‘환단고기’를 읽고 감탄해 김 선생을 찾아와 밤새 이야기를 나눴던 80대의 한학자는 김 선생 묘에 엎드려 ‘인재가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일찍 갈 수 있느냐’며 통곡하기도 했단다. 우리 역사를 같이 고민하며 마음을 나눴던 소중한 인연은 지금도 아픔으로 마음 한켠에 남아 있다.

- 한겨레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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