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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태백일사는 조선 사문란적 고서 원문 보존의 문제였지, 위서의 문제가 아니었다.

윤석현 | 2012.11.27 17:38 | 조회 10717

환단고기 태백일사는 조선 사문란적 고서 원문 보존의 문제였지, 위서의 문제가 아니었다.

멸종 위기 씨종자 보존의 문제였지,

이뻐지기 위한 성형의 문제가 아니란 소리이다.

<서양의 눈으로 동양 고전을 볼 때 발생하는 오류 bias : 위서론>

서양학문에 익숙한 사람들이 “동양 고전”을 공부 할 때 하는 실수는 “한사람”의 저술에 의해 “한권의 책”이 만들어 진다는 생각이다. 서양은 “한 사람”의 저술가에 의해 “책 한권”이 적히는 형태이다. 상상에 의한 창작이 가능한 형태이다. 적힌 역사서가 진실인지 후대 사람의 상상인지 알 수 없는 형태이다. 그래서 “위서론이란 개념이 나오는 것이다.

<위서가 필요없는 동양의 주석 문화>

동양의 출처를 밝힌 고대 원문에 자신의 생각을 주석으로 다는 형태이다. 뒤집어 이야기 하자면 나의 생각과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정당성과 타당성 확보를 위해 공신력 있는 “고대의 원문”들을 “인용”하는 형태이다.

동양 고전은 자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구지 과거 원문을 위조 하지 않아도 된다. 자기 구미에 맞는 고대 원전의 원문을 가져와서 주석을 써 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원문 철자가 틀리면 공신력이 떨어지는 구조이다.

<동양 고전은 원문 암기 싸움>

나의 사상과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내 주장을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고전 원문을 많이 알아야만 했다. 그래서 방대한 양의 고전 원문과 주석을 “있는 그대로 통으로 외운 것”이다. “경전 원문 암송”을 누가 더 “정확히” “많이” 아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학문의 경지가 판단되어 졌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동양에서는 아무리 혁신적이고 다양한 생각이 있다 하더라도그 사상을 공인 받을 수 있는 과거의 선례에 해당하는 고대 원문이 없다면 공인 받을 길이 없다. 진시황은 사상 통제 위해 그 사상을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고대 원전”을 불태워 없애면 가능하다고 생각하여 “분서갱유”를 단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대 원문을 통으로 “암송”하는 문화 때문에 그리 성공적이진 못했다. (최근 연구된 중국 번역서를 보면 실제로 문헌을 다 태운 것도 아니고 경고의 퍼포먼스 였다고 한다)

<조선왕조의 사문란적>

고려를 멸망시키고 중국 사대주의 성리학을 지도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 왕조가 “고려의 정통성”을 부여하는 “환단”관련 고대 역사서들을 금서로 지정한 것은 시대적인 요구요 필연적 과정이었다.

조선왕조는 진시황처럼 무리수를 둬 가며 분서갱유을 하지 않았다. 사상 통제를 위해서 특정 고대 원전을 인용하지 못하게만 하면 됬기 때문이다! 그것이 조선 왕조가 행한 “사문란적” 정책이다. 주자가 주석을 달아 놓은 책 이외의 원문을 읽는 것만으로 “9족을 멸하는 정책”을 취한 것이다. 가장 쉽고 돈이 가장 안드는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세조의 사서 수거령과 예종의 닉자처참>

“춘추”와 “자치통감 강목”만을 사필로 여기고 한민족의 고유 사서를 이단이라 하여 모조리 압수 소각 하였다. 조선 세조 3년 8도 관찰사에게 명하여 거두어 들이도록 한 고서만도 20권이 넘었다고 한다. 예종 1년 때에는 닉자처참 匿者處斬 (고서를 숨기다 발각 된 사람은 목을 베라)는 명령까지 내렸다.

<역사의 아이러니 - 자료의 집대성>

중종 때 조선왕조 실록을 기록하던 찬수관(편수관) 일십당 이맥 선생은 실록을 적기 위해 수많은 고대 문헌 data base 구축 작업이 집업이셨다. 그 때 수서령으로 수거 되어 보관되어 있던 “환단”과 관련된 금서들을 열람을 하게 되고 본인 직업답게 원문 이기 작업을 하게 되었다. 훗날 “태백의 역사와 관련된 금서 data base 모음집 -태백일사”를 찬수하게 된 것이다.

<태백일사는 고대원문 저장하기 “back data”였다>

동양 고전 문화는 결국 “고대 원문 암송과 보존” 싸움이이다. 조선왕조가 망하고 “새로운 왕조”에서 다시 “환단의 역사”를 주장하여 복원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환단의 고대 역사 원문”이 남아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환국부터 고려 까지의 “역사서 원문 data base”를 이기 작업을 하여 “숨겨뒀던 것”이다.

태백일사는 “태백에 대한 숨겨진 역사”이면서 “태백에 대한 숨겨서 후손들에게 반드시 전해주어야 하는 역사책” 이였던 것이다.

<결론>

애초부터 “태백일사” 가 제작된 이유가 씨종자 - <원문 보존의 문제>였지 성형 - 위서의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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