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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사라진 역사 - 일제의「삼국유사」변조, 사실일까? - 성삼제

알캥이 | 2012.06.19 22:10 | 조회 8603

오늘은 광복절입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지 반세기도 훨씬 지난 지금, 우리는 일제 식민 잔재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을까요?

그 질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고조선-사라진 역사」라는 책을, 광복절을 기념하여 소개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사학자가 아닌 현직 교육과학기술부 학교제도기획과장인 성삼제님입니다.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 또한 흥미롭군요.

그는 2001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정부 대책반 실무반장을 담당했답니다. 그런데 한일 관계 역사와 고조선 역사에 대해 관련자료를
조사해가면 갈수록 너무도 중대한 사실들을 알게 되어, 조사 과정과 관련 자료에 대한 기록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조사한 고대사 관련 자료들 중 중요한 것이 너무 많아 4년 이상의 고생 끝에 책으로 펴낸 것입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단군 조선이 허구적 신화가 아니라 실제 역사임을 여러 항목을 통해 주장하고 있습니다.

1장 단군, 신화인가, 역사인가
2장 한반도의 청동기는 언제부터인가
3장 고인돌에 새겨진 역사
4장 단군릉과 단군뼈의 진실
5장 고조선은 대동강 유역에 있었나
6장 명도전은 고조선 화폐가 아닐까
7장 일본은 <삼국유사>를 변조했나
8장 위서 논쟁 속에 묻혀버린 고조선
9장 <환단고기>에 기록된 천문 현상
10장 고조선 논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10장에 걸친 이 책의 많은 내용 중 특히 저의 관심을 끈 부분은 '삼국유사 변조'에 관한 7장이었습니다.

저자의 주장이 구체적인 자료들을 통해 제시되고 있고, 그 자료를 수집하기 까지의 뒷얘기도 첨가되어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약간 복잡하지만 책에서 설명한 내용과 제가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요약해 보겠습니다.

일제의 초대 총독 데라우치가 1910년 11월 초부터 군인과 경찰을 동원하여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 소위 그들이 '불온문서'라 부르는 책들을 압수하였습니다.

그 서적이 얼마나 되는지, 어떤 서적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당시 총독부가 발행한 관보(官報)를 근거로 하여 판매금지 책자와 압수한 사료를 추정하면 20여만 권에 달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뒤 1919년 3.1 독립운동 이후 제3대 조선총독으로 사이토 마코토가 부임해 와서 문화통치의 기치를 내거는데, 그때 비밀리에 시달된 '교육시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조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역사, 전통, 문화를 알지 못하도록 하여 민족의 얼과 문자를 잊어버리게 한다.

② 조선사람 선인(先人)들의 무위(無爲), 무능(無能), 악행(惡行)을 많이 들추어내서 이를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쳐 그들 스스로가 선인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는 것을 기풍화 한다.

③ 조선의 청년들이 조선의 인물과 사적(史蹟)에 관한 부정적인 지식을 얻게 되면 실망과 허무감에 빠질 것이므로 그 때에 일본의 인물, 사적, 문화를 가르치면 쉽게 동화하여 반(半)일본인화 되게 한다.


이러한 문화정책의 기조에서
그들은 조선의 역사 편찬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쳤는데, 그 효시가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출간입니다.

고려의 일연 스님(1206년~1289년)이 쓴 「삼국유사」는 1310년에 처음 책으로 출간되었는데, 그 원본은 남아 있지 않고 가장 널리 알려진 목판본이 조선 중종 때인 1512년 임신년에 경주 부윤 이계복이 간행한 책으로 '중종 임신본'이라고 부릅니다. 중종 임신년이 명나라 황제 무종의 연호인 정덕과 같아서 '정덕본'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책은 원본에 가장 가깝다고 알려져 있는 국보급 문화재입니다.

그런데 그 책을 그 당시
조선의 대표적인 역사학자들도 구해 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서 ‘10년을 두고 삼국유사 정덕본(正德本)을 구해 보려 하였으나 부득이하였다’고 썼고, 육당 최남선도 ‘삼국유사 정덕본을 아직까지 보지 못하였으며, 결국 정덕본의 진본(眞本)이 한 권도 없음이 이 나라 사학계의 상식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1926년, 일본 경도제국대학 나이토 토라지로우(內藤虎次郞) 교수와 이마니시 류(今西龍) 조교가 '삼국유사 정덕본'을 간행합니다.

나이토 토라지로우가 쓴 서문에 따르면 "경주 부윤 이계복이 중간한 「삼국본사(사기)」와 「삼국유사」 양본이 다른 곳에서 간행한바 없는 귀한 것인데, 임진왜란 때 왜장들이 일본으로 가져가 소장하고 있던 것을 동경대학에서 소량 영인한 것을 경도제국대학 조교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1부 소장하고 있어서 이를 경도제국대학에서 다시 대량 영인하였는데 이를 경도제국대학 영인본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1932년 9월 서울의 고전간행회에서 이 영인본을 원형 크기로 발행하였고, 그뒤 조선사학회 명의로 영인본을 활자본으로 바꾼 「삼국유사」를 대량으로 발간하여 보급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인본 중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어, 변조 논란의 핵심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경도제국대학 영인본 삼국유사」의 <단군고기(檀君古記)> 중 "옛날 환인이 있었는데 (昔有桓因 : 석유환인) 그 서자인 환웅이...."란 대목이 나옵니다.

그 문장의 본래 글자가 '昔有桓國(석유환국)'인데
‘國(국: 口자 안에 玉자가 든 글자)’자를 因(인)’로 변조했다는 것입니다. 즉 자 안의 자를 긁어서 자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논란이 된 「경성제국대학 영인본 삼국유사」 중 '환인' 부분.

‘昔有桓國(석유환국)’‘옛날에 환국(桓國)이라는 나라가 있었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 이전에 이미 환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였다는 뜻이지요.

그 글자가 '昔有桓因(석유환인)'이 되면 환국의 존재 사실은 사라지고, 환인(桓因), 환웅(桓雄), 단군(檀君)으로 이어지는 신화적 인물의 이야기로 바뀌게 됩니다.

이 영인본은
이마니시 류의 박사학위 논문 「단군신화설」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각계에 널리 유포되어 많은 사람들이 단군을 신화로 믿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자료들은 1925년 6월 6일에 독립관청으로 설치된「조선사편수회」의 조선사 편찬 자료로도 적극 활용됩니다. 조선사 편수회의 조직에 관련된 인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문 : 이완용, 박영효, 권중현, 구로이따, 핫또리, 나이또, 야마다, 이윤용,
위원 : 최남선, 이능화, 어윤적, 윤필구, 현채, 홍희, 유맹, 이진호, 이마니시, 도리이, 마쓰이, 시하라, 오따니, 후지다,
간사 : 김동준, 정교원, 손영목, 엄창섭, 이대우, 이동진, 홍희, 신필구, 이병욱,
수사관 : 이나바, 후지다, 나까무라, 스에마쓰, 신석호,
수사관보 : 이병도


이들은 정무총감을 회장으로 하여 위원회에서 편찬방침을 결정하고, 실제 편찬업무는 수사관과 수사관보가 담당하였습니다. 거액의 기금을 들여 시작된 이 사업은 1931년 12월에「조선사(朝鮮史)」일부의 인쇄를 시작으로 1937년에 35책으로 완성됩니다.

그런데 이마니시 류와 함께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 중 주목할만한 분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역사학자 이병도입니. 당시 이마니시 류의 제자였던 그가 수서관보가 되어 '조선사 편찬'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것입니다.

그는 광복 후에 서울대 역사학과 교수, 문교부 장관까지 지내며 역사학의 정립과 국사 교과서 편찬에 중대한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날 한국사학계에는 직간접적으로 이병도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근대 한국의 역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분입니다.

그런데 그가 말년에 과거 자신의 역사관을 크게 수정하는 내용의 글을 조선일보 1986년 10월 9일자에 게재하였습니다. 단군은 신화가 아니라 우리의 국조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충격적인 '반성문'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그와 함께「한국상고사입문(1989년)」을 발간했던 상고사연구가 최태영 박사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 바 있습니다. 

내가 젊었을 때만 해도 한국땅에서 단군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실증사학을 내세워 단군을 가상인물로 보기 시작한 것은 이승만 정권 때부터지요.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이지만 이병도 박사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박사는 말년에 건강이 나빴는데, 어느 날 병실에 찾아갔더니 죽기 전에 옳은 소리를 하겠다며 단군을 실존인물로 인정했어요.

그 사실을 후학들이 모르고 이박사의 기존학설에만 매달려 온 것입니다.


그 뒤로도 간간이 고대사 논쟁이 있었지만, 한동안 수면 아래로 잠겨 있다가 일제의 교과서 왜곡 사건으로 인해 다시 논쟁거리로 등장한 것입니다.

저자인 성삼제님이 변조의 근거로 제시한 자료는 '경성제국대학 영인본'보다 훨씬 전인 1904년에 '도쿄제국대학'에서 발행한 「동경제국대학장판 삼국유사」입니다.

그는 조사 과정에서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서 뜻밖의 귀중한 수확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기도 전인 1904년에 발간된 그 책에는 '석유환국'의 나라 '국'자가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습니다.

1904년 도쿄제국대에서 발행한 삼국유사 중 '환국' 부분.

저자는 이 책의 7장에서 '석유환국'의 변조를 확신하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만, 저는 선뜻 저자의 결론을 따르기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위에 예로 든 자료 외에 여러 역사서 속에 '환인'과 '환국'이 혼란스럽게 사용되어 있고, 한자 표기도 조금씩 해석이 달라 아직까지 역사학계에서 확실하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고 반대 주장을 펴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누가 옳으냐 그르냐 하는 문제보다도 그러한 논란 자체가 시들하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저자가 제기하는 여러 문제들은 우리 역사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역사학계는 당연히 이를 검토하고 연구하여 일제에 의해서 또는 친일 역사학자에 의해서 왜곡되거나 사라진 역사가 있다면, 그걸 바로 잡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합니다.

그런데도 고대사 연구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견해가 너무 감정적으로 대립되어 있고, 전문가도 부족하고, 연구도 활기 있게 이루어지지 않고, 사회적 관심도 미약한 실정입니다. 저자 또한 그러한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자신의 책으로 논쟁거리라도 삼아 달라는 심정으로 책을 발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이 부분에 대한 역사학계의 반응은 여전히 미적지근하기만 합니다. 마치 그런 것은 논쟁거리도 안된다고 무시하거나, 일부러 논쟁을 회피하는 듯한 기색마저 엿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위에 제시된 일제시대의 친일 관련 역사적 사실들로 미루어 짐작할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아, 64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 식민지배의 후유증은 우리를 괴롭히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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