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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학의 거두 이병도의 뒤늦은 참회 (1986년,1988년)

환단스토리 | 2012.07.07 22:20 | 조회 6791

식민사학의 거두 이병도의 뒤늦은 참회 (1986년,1988년)

이병도 [李丙燾 ] [1896~1989]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a180012.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257pixel, 세로 325pixel

1919년 와세다 대학 사학과졸업후 귀국

1925년 조선사편수회에 촉탁

1934년 진단학회 이사장-

1941년부터 이화여자전문학교에 출강하였다.

1946년 서울대학교 교수

1960 문교부 장관 충무공훈장, 문화훈장대한민국장, 학술원상, 국민훈장무궁화장, 인촌(仁村) 문화상, 5·16 민족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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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57pixel, 세로 521pixel

1986년 이병도 조선일보 기고“단군은 신화아닌 우리 국조”

식민사학의 거두 이병도가 죽음을 삼년 앞둔 시점에서 평생 자신의 학설을 뒤집고 단군 조선의 실재를 인정한 기사로 1986년 10월 9일 조선일보에 실린 글이다. 당시 사학계의 거두였던 두계 이병도의 이 참회기사는 조선일보 특집기사로 1면에 실릴만큼 사회의 파장은 엄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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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a18000e.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293pixel, 세로 399pixel

최태영 박사는 이병도씨를 설득하여 “한국상고사입문”이라는 저서를 출간합니다.(1989) 최태영 박사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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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86pixel, 세로 307pixel

한사군위치 국사대관(1948년,이병도) 한국상고사입문(1989년,이병도,최태영공저)

“내가 젊었을 때만 해도 한국땅에서 단군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실증사학을 내세워 단군을 가상인물로 보기 시작한 것은 이승만 정권 때부터이지요.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이지만 이병도 박사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박사는 말년에 건강이 나빴는데, 어느 날 병실에 찾아갔더니 죽기 전에 옳은 소리를 하겠다며 단군을 실존인물로 인정했어요. 그 사실을 후학들이 모르고 이박사의 기존학설에만 매달려 온 것입니다. (서울대법대 초대학장을 역임한 상고사연구가 최태영 박사, 2000년 1월3일자 문화일보특별대담)

이병도는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죽었으니 그나마 용서가 가능할까 ?



최태영박사 인터뷰1 http://youtu.be/zXpXYKNEI8s 인터뷰 2 http://youtu.be/T2LlzVTzK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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