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법의 창시자는 설총이 아니라 단군시대 왕문이다.
이두법의 창시자는 설총이 아니라 단군시대 왕문이다.
설총
이두는 한자의 음과 새김을 빌어서 우리말식으로 적어 쓰던 문자이다. 일반적으로 이두법은 신라말의 정치가요 대학자인 설총이 처음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68(진흥왕 29) 북한한에 세운 진흥왕 순수비문에도 이두가 나오는데 이것은 설총 이전에 이미 이두문이 쓰였다는 증거이다. 또 향찰표기 작품인 <서동요>, <혜성가>가 진평왕 때, <풍요>가 선덕여왕 때 이미 있었다.
그림 2 진흥왕 순수비문
그러므로 설총은 이때 이두를 창제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리․집대성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면 이두를 창제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에 대해서 환단고기에서는 창제자가 소개되고 있다.
누사가 세상을 떠나자 을미(단기 1468,BCE 866)년에 아들 이벌(44세왕)이 즉위하였다. 병신(단기 1469 BCE 865)년에 한수 사람 왕문이 이두법을 만들어 올리니 천왕(31세 등올단군)께서 기뻐하시고 삼한에 명하여 시행하게 하셨다.
설총보다 약 1600년 앞선 (BCE 865) 단군조선 때에 만들어 보급되었다. 설총은 왕문이 창안한 이두를 더욱 발전 체계화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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