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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를 통해서만 밝혀지는 동명왕의 정체 : 동명과 주몽은 다른 인물

환단스토리 | 2012.07.07 21:50 | 조회 6265

환단고기를 통해서만 밝혀지는 동명왕의 정체 : 동명과 주몽은 다른 인물

동명신화는 최초의 기록인 <<논형>>(1세기)부터 6세기 문헌에 이르기까지 고구려의 건국신화가 아닌 부여의 건국신화로 구분하고 있는데 반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동명왕편> 등에서는 주몽의 건국신화로 되어있다. 따라서 동명이 어떻게 왜곡됐느냐 하는 실체가 오직 <<환단고기>><삼성기>에서만 밝혀지고 있다.


BCE108년 한나라 무제가 요하의 우거정권(우거는 번조선을 찬탈한 위만의 손자)을 멸한 뒤 군현을 설치하고자 대군을 동원하여 동방(당시 북부여)을 침략했다. 이 때 거국적으로 위병을 일으켜 파죽지세로 몰려오는 한족 침략군을 막아낸 북부여의 구국영웅이 고두막한이다. 고조선 47세 고열가단군의 후손인 그는 거병에 앞서 졸본에서 동명왕으로 즉위하였고, 훗날 민심을 얻어 북부여 5대단군에 즉위하였다. 고두막학은 동명이라는 나라의 왕 (동명왕)으로 22년간 재위하였고 북부여 5세 단군(고두막 단군)으로 27년간 재위하였으나 합하여 49년간 왕과 단군으로서 나라를 다스렸다.


동명은 흔히 고구려를 개국한 주몽으로 알려져 있으나 연개소문의 아들인 연남산의 묘지명에 "옛날에 동명은 이군에 감응되어 표천을 건넜고, 주몽은 광명으로 잉태되어 패수에 임하여 도읍을 열었다(昔者 東明感氣 踰俵川而啓國 朱蒙孕日 臨浿水而開都) 라고 하여 동명과 주몽이 전혀 다른 인물로 기록되어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e780007.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940pixel, 세로 548pixel

천남산묘지명(泉男産墓誌銘).

제작년 : 702년(주(周) 측천무후(則天武后) 장안(長安) 2년).

출토 및 소장 : 1922년 낙양 출토, 북경대학교 원고고학실 소장.

형 태 : 정방형. 탁본 – http://goo.gl/CCq57

大周故金紫光祿大夫行營繕大匠上護軍遼陽郡開國公泉君墓誌銘幷序」

君諱男產遼東朝鮮人也昔者東明感氣踰㴲川而開國朱蒙孕日臨浿水

而開都威漸扶索之津力制蟠桃之俗雖星辰海嶽莫繫於要荒而俎豆詩」

書有通於聲敎承家命氏君其後也乃高乃曾繼中裏之顯位惟祖惟禰傳


대주(大周)의 고(故)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행영선대장(行營繕大匠) 상호군(上護軍) 요양군개국공(遼陽郡開國公) 천군(泉君)의 묘지명(墓誌銘) 및 서(序) 군(君)의 휘(諱)는 남산(男産)이니 요동(遼東) 조선인이다. 옛날에 동명(東明)이 기(氣)를 느끼고 사천(㴲川)을 넘어 나라를 열었고, 주몽(朱蒙)은 해를 품고 패수(浿水)에 임해 수도를 열어, 위엄이 해뜨는 곳[扶索]의 나루에 미치고 세력이 동쪽 지역[蟠桃]의 풍속을 제압하였으니 비록 성진(星辰)과 바다와 산악이 변방지역[要荒]에 걸려 있지 않았어도 예절[爼豆]과 시서(詩書)는 성교(聲敎)에 통하여, 가(家)를 잇고 씨(氏)를 받았으니 군(君)은 그 후예이다.


천(연)남산 묘 관련 자료 http://www.dragon5.com/news/news2005101802.htm


삼국사기에는 동명과 주몽을 같은 인물로 기록해놓았다. 그러나 김천령金千齡(연산군때의 문관)은 자신이 지은 부에서 “동명이 창업하고 주몽이 계승하였다 東明啓其赫業 朱蒙承其餘波”라고 하여 동명과 주몽이 전혀 다른 인물임을 전하였다.


다른 역사 기록서인 <만주원류고> 권1 부여조에 “고구려는 부여에서 나왔고 부여는 색리에서 나왔는데 부여는 고구려의 북쪽에 있고 색리 또한 부여의 북쪽에 있었으므로 동명은 (색리에서) 남쪽으로 달아나 부여에 이르렀고 주몽은 역시 (동부여에서) 남쪽으로 달아나 고구려에 이르렀다. 高麗出自夫餘 夫餘出自索離 夫餘在高麗北 索離又在夫餘北 故東明南走而至夫餘 朱蒙亦南走而至高麗 ”로 기록되어져 있다.


역사스페셜 동명루트를 찾아서 편에서는 동명을 이렇게 결론 내리고 있습니다.


“부여의 건국시조가 동명왕이다. 그동안 동명왕을 주몽으로 알고 있던 우리에게 조금 당혹스런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삼국사기나 동명왕편을 비롯한 여러 사서들에선 주몽을 동명왕으로 전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12세기 이후에 기록된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주몽은 추모왕이나 추모성왕으로 불리다가 고려시대 이전 그 언제부턴가 동명왕으로 불렸을 테고 지금으로선 그 시기를 정확인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가 왜 부여의 건국시조인 동명왕과 같은 이름을 같게 됐는지 또 건국신화 역시 비슷한 내용을 갖게 됐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 한 가지 있습니다. ‘朱蒙自北夫餘道難 至卒本夫餘’ 즉 주몽이 북부여에서 도망하여 졸본부여에 이르렀다는 삼국사기의 내용입니다. 주몽이 다름 아닌 부여출신이란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고구려는 강한 부여계승의식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자 그렇다면 고구려의 이처럼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동명왕이 세운 나라 부여. 과연 이 부여는 어떤 나라였을까요.”


“동명이 걸었던 길을 찾아 나선 2천 킬로미터의 대장정. 거기엔 우리 고대국가들의 뿌리 부여가 있었다. 고구려와 백제 나아가 발해에 이르기까지 부여는 우리 고대국가 형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고 그들에게 동명왕이라는 존재는 정신적 구심점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고대 이래로 우리민족에게는 바로 동명왕의 후예라는 생각이 이어져 왔던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잊어진 부여사를 하루 빨리 복원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부여 동명왕의 실체를 찾고 그 위상을 회복하는 일은 바로 우리의 근원을 되찾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010년 역사스페셜 동명루트를 찾아서 http://blog.daum.net/santaclausly/11793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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