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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일본부설 개요

환단스토리 | 2012.08.20 22:33 | 조회 7191

임나일본부설 개요

임나일본부는 우리나라 삼국시대 가야라는 지역 즉 임나에 있었다는 일본 고대국가의 식민지 통치기구를 말한다. 종래 일본 내의 통설적인 견해로는 임나일본부는 왜가 신라를 위시한 삼한지역의 국가를 평정했다는 369년경 이 지역에 설치되어 562년 대가야가 멸망한 시기까지 존손하였다고 한다.

임마일본부설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후 스에마츠에 의해 보완되고 집대성되었는데([임나흥망사]1949) 그 주요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일본서기] 신공황후 49(369)조에 보면, 아리타와케, 가가와케 등을 보내 백제 장수들과 함께 신라를 치고 이어서 가야지역의 일곱 나라를 평정하였다는 기사가 나온다. 이를 가야 7국의 평정이라 하는데 고대 일본의 임나 지배는 여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서기]7세기 중엽에 천황의 권위가 확립된 후 천황가를 미화하기 위하여 편찬된 책으로 일본학계 내에서도 그 신빙성에 대해 여러 방면에서 비판이 제기되고 있고 대체로 5세기 이전의 기록은 신화적인 전설로 간주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일본부라는 용어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것이 일본이라는 국호는 7세기경에 비로서 나타난다. 또한 기년에도 상당한 조작이 가해져 있다. 예컨데 신공황후가 임나를 정벌했다는 369년은 일본서기에는 249년으로 기록되어 있어 120년의 오차가 있는데 이와 같은 오차는 시기가 올라갈수록 더욱 심해진다. 심지어 어떤 인물은 244년간이나 관직에 복무하고 있었을 정도이다. 또한 일본서기보다 8년 전에 편찬된 <고사기>에는 신공황후의 임나정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둘째로 광개토대왕(391-413) 비문이 고대에 일본이 한반도 일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광개토대왕 비문 중 왜가 신묘년(391, 광개토왕 1) 이래로 바다를 건너 백잔을 파하고, 신라를 □□하여백제□□신라를 정복하고> 그들을 신민으로 삼았다.”라는 신묘년 기사가 그 주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 □□新羅以僞臣民

백잔(백제)과 신라는 옛부터 (우리의) 예속민으로 조공을 하여 왔는데 왜가 신묘년(391, 광개토왕 1) 이래로 바다를 건너 백잔을 파하고, 신라를 □□하여백제□□신라를 정복하고> 그들을 신민으로 삼았다.”

정인보-“왜가 신묘년에 오니 <고구려가> 바다를 건너가 <>를 격파하였다. 그런데 백제가 <왜와 연결하여> 신라를 침략하여 그의 신민으로 삼았다

그러나 정인보 따르면 신묘년 기사는 왜가 신묘년에 오니 <고구려가> 바다를 건너가 <>를 격파하였다. 그런데 백제가 <왜와 연결하여> 신라를 침략하여 그의 신민으로 삼았다라고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주장에 의하면 비문 내용 자체가 허구내지 과장된 기록이라는 것이다. 고구려에 의해서 왜의 존재와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사실은 감히 영락대왕에 대항하여 독자적으로 전쟁을 치르지 못하는 백제 즉 백잔의 비루함을 그려내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기 때문이거나 광개토대왕이 백제를 정복하고 신라, 가야지역에 군대를 보낸 조치를 정당화하려고 한 것이라고 파악할 수 있고 또 어쩌면 왜를 고구려가 중심이 된 질서밖에 있는 존재로 간주하여 신속시켜야 할 대상에서 아예 제외하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 밖에 비문변조설에 관한 주장도 제기되고 있으나 사실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세 번째 근거로 중국 남북조시대 남송의 역사를 담고 있는 <송서>의 왜왕 작위 기사를 들고 있다. 거기에는 5세기에 남송에 조공을 바치 왜의 5왕이 등장하고, 이 가운데 무왕이 스스로 왜, 백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 등 7국의 왕을 칭하면서 남송의 황제에게 이를 인정해 줄 것을 요청하자 남송의 황제가 그에게 사지절도독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6국제군사안동대장군왜국왕이라는 관작을 수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임나와 가라가 모두 가야를 가르키는 것인데 왜 중복되어 나타나는, 또 이미 예전에 멸망한 진한과 마한이 왜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무왕이 받은 관작이 사실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허구적인 명예직이었음을 시사한다.

넷째로 이스노카미 신궁의 칠지도를 왜의 군사적 우세와 한반도 남부 지배를 인정한 백제가 야마토 조정에 바친 것으로 파악해서 임나일본부설 근거로 삼고 있다.

<앞면>

四年月十六日丙年正陽造百練鋼七支刀 生(?)百兵 宜供供侯王 □□□

416일 한낮에 백 번 두드린 강철로 칠지도를 만들었다. 나아가 많은 군사를 물리칠 수 있는 것이므로 마땅히 후왕들에게 드릴 만하다. □□□가 만들었다.”

<뒷면>

先世以來未有此刀百濟王世奇生聖音故爲倭王旨造 轉示後世

선세 이래로 아직 이칼이 없었던바, 백제왕세기생성음이 일부러 왜왕 지를 위하여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일지어다.”

그러나 칠지도의 앞면 글귀는 국가의 대장인이 정성 들여 작품을 만들고 이 칼이 후왕이 가질만하다고 자부하면서, (공손히) 받들어 올릴 만하다는 겸손의 말을 적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칼을 주는 자와 받는 자의 관계가 직접 나타난 것이 아니고 만든 자가 받을 자격이 있는 대상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칠지도 뒷면 글귀의 전시후세의 해석에는 의견차이가 없다. 이는 흔히 중국 황제가 신하에게 글을 내릴 때 사용하는 상투적인 용어인 것이다. 상위자가 하위자에게 자기의 분부나 은택의 뜻을 후세에까지 길이 알리라는 내용인 것이다. 이구절은 분명한 만큼 이 칼이 상위자로부터 하위자에게 보내어진 것임을 입증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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