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칼럼

잃어버린 해상 왕국, 백제가 다시 부활한다!

상생도군 | 2010.08.10 16:07 | 조회 3182

잃어버린 동아시아의 해양 왕국 , 백제를 찾아
 “해양 실크로드의 건설자, 대백제가 부활한다”
 
 ■ 9. 18~10. 17 공주, 부여일대에서 펼쳐질 700년 대백제의 꿈 ■
 
 

 잃어버린 해상 왕국, 백제가 다시 부활한다!
 1400년전 동아시아 해상 실크로드의 중심, 대백제를 조명하기 위한 2010세계대백제전 행사가 9월 18일부터 10월 17일까지 백제의 고도, 부여, 공주 일대에서‘700년 대백제의 꿈’이라는 부제副題로 화려하게 펼쳐진다. 지난 55년 동안 백제전은 꾸준히 열렸지만 올해는 1994년에 착공된 아시아 최대 문화테마파크인 백제문화단지 완공을 계기로 가장 성대하게 열릴 예정이다.
 
 
 올해 행사는 중원과 일본문화와의 연계속에 백제문화의 힘과 우수성을 조명하는‘고대 세계문명교류의 중심이었던 백제’를 주요 주제로 삼는다. 행사 전체가 700년 대백제의 세계로 들어가는 소통과 체험의 공간으로 구성될 수 있도록 짜여졌다. 특히 대륙과 일본 등 동아시아로 뻗어나간 백제인의 진취적 기상과 개척정신을 주요 모티브로 삼았다. 감동과 체험, 서사를 함께 재현하고 살려내려는 기획의도가 행사전반에서 엿보인다.
 
 백제의 웅진, 사비시절 모습을 재현하는 낙화암 수상공연‘사비미르’, 공주 고마나루 공연 ‘사마이야기’가 미디어 아트 등 특수효과를 통해 대규모 영상제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백제인의 신비와 웅혼한 드라마를 백제문화의 힘으로 되살려 낸다는 전체 기획답게 대백제 기마군단 재현, 황산벌 전투재현, 사비궁, 웅진성의 하루, ‘퍼레이드 교류왕국’등 이색적이고 다채로운 행사가 주간과 야간 내내 계속된다.
 
 


 백제 등불 향연과‘루미나리에’(백제문양을 활용한 터널장식 조명) 프로그램이 야간에 금강과 금강교에서 상설 전시되어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1400년전 백제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전해주게 된다. 아울러 세계역사도시연맹 회원국 20개 도시의 해외문화공연과 세계 탈 전시전, 세계역사도시전도 주요 볼거리다.
 
 
 되살아나고 있는 백제문화 열기에 발맞추어 본지에서는 이번 호부터 7,8,9,10월 총 5회에 걸쳐 백제 문화 특집을 기획하여 백제의 주요한 역사와 문화를 집중해서 살펴보고 행사후기를 싣기로 한다.
 


 
 백제가 잊혀진 이유
 ‘동아시아 문명교류의 찬란한 빛’, ‘세계 문화대국’,‘ 해상 실크로드의 건설자’….
 
 백제를 두고 붙여지는 수사는 온통 미스테리에 둘러싸인 왕국의 영광과 몰락을 함께 말한다. 실증 역사로서 백제는 쉽게 파악되지 않는 거대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백제의 실체 자체가, 끊긴 테잎처럼 지워져 버렸다. 남겨진 부분은 축소되고 과소평가됐다.
 
 망국적이었지만 신라는 고구려, 백제를 무너뜨린 승자의 역사를 가졌다. 고구려는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았고 대진국으로 이어졌으며 후삼국전쟁 이후 후後고구려라고 표방한 고려로 계승되었다. 그런데 백제는 어떻게 되었나?
 
 대륙은 백제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제거했고 일본은 홀로 서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백제의 흔적을 지워나갔다. 후백제의 견훤은 전대의 한을 풀지 못하고 무너졌다. 고려태조 왕건은 끈질기게 저항했던 견휜의 땅을 멀리하고 나라를 들어 항복했던 신라를 우대했다. 백제는 잊혀질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실체 자체가 여러 부분으로 쪼개져 해체되고 증발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백제의 영광과 좌절은 분명 거대한 흔적을 남겨놓았다. 그 흔적을 찾을 때 마주하는 것이 고구려, 백제의 선조를 낳았던 단군의 혈통맥이고 대륙의 백제이며 일본 황가의 뿌리로서 백제다.
 
 
 북부여에서 동시에 탄생한 백제와 고구려
 역사는 삼신三神의 드러남이다. 삼신은 바로 혈통血統과 혈통의 업業으로 나타난다. 조상만대로부터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받아온 한민족의 역사전통에서는 삼신의 계보, 즉 선조와 후손으로 이어지는 국통의 맥이 분명히 그려진다. 사료를 통해 매우 확실하게 파악되는 부분이다. 백제와 고구려는 그 태생에서부터 한민족 사원사의 장구함을 보여준다. 우선 사료로써 백제의 연원을 살펴보자. 환단고기 <태백일사> 제6권 고구려국 본기에 나와 있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고주몽은 재위할 때,“ 적자嫡子인 유리가 오면 태자로 삼을 것이다”라고 했다. 소서노召西弩는 장차 두 아들에게 이로울 것이 없음을 알고 남쪽으로 내려가 진辰, 번番의 사이에 이르렀다. 10년 만에 부를 쌓아 몇만금 이러니 주몽제에게 편지를 올리며 섬기기를 원한다고 했다. 주몽제가 기뻐하며 소서노를 어하라於瑕羅에 책봉했다. 주몽제가 돌아가시고 태자 비류가 즉위하였는데 아무도 그를 따르지 않았다. 이에 온조의 신하 마려馬黎가“남쪽으로 내려가 도읍을 세워야 할 때”라고 했다. 온조는 마한의 쇠퇴함을 감지하고 그곳에 나라를 세우자는 마려의 말을 받아들여 배를 짜서 오간烏干, 마려馬黎등 열명의 신하를 데리고 남쪽 지방으로 바다를 건너니 마한의 미추홀彌鄒忽에 닿았다. 온조는 열명의 신하의 의견을 따라 하남의 위지성慰支城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라 칭하니 백 사람이 건너왔다는 뜻이다. 뒤에 비류가 죽으니 그의 신하와 백성들이 그의 땅을 가지고 귀순해 왔다.’
 
 
 여기서 어하라는 소서노의 나라, 곧 비류의 나라다. 고구려 장수왕(BCE 413~491)때까지 비류의 나라 이름이 잔존해 있었다. 소서노는 여자의 몸으로 고구려 백제 두 나라를 세워준 여걸이 되는 셈이다. 유리가 태자로 책봉되어 불리함을 느낀 온조와 비류 형제는 어머니를 모시고 피신하여 처음 패수浿水, 대방帶方의 땅으로 간다. 그 땅이 10년 동안 북쪽으로 대수帶水(하북성에 있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곳 어하라, 곧 소서노의 아들 비류의 나라가 5세기까지 이름이 남아 고구려 장수왕 재위시를 기록한 사서에 등장한다. 주몽제가 죽고 비류가 어하라에 즉위하자 온조의 신하가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자고 했다는 분명한 서술도 보인다.
 
 강단사학자들이 인용하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내용과는 달리 비류와 온조가 각각 다른 지역에서 시작했음을 보여주며 나중에 비류가 죽은 후 온조의 영향 아래 통일되었음도 명백하게 말해주고 있다. 축적된 부富를 바탕으로 비류백제는 뒷날 중원대륙에 식민활동을 전개한다. 대륙백제의 실체는 물론 건국의 시
 간 전후가 분명하게 밝혀져 있다.
 
 
 “북부여에서 낳은 주몽의 아들이 와서 태자가 되자, 비류沸流와 온조溫祚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 것을 여기고 마침내 오간烏干, 마려馬黎등 열명의 신하를 데리고 남쪽 지방으로 떠나니 백성들 가운데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내용이다. 대부분이 알고 있는 백제의 시작은 이 대목에서다. 고구려의 둘째 임금인 태조 유리溜璃와 소서노召西弩의 두 아들, 비류, 온조가 모두 주몽을 한 아버지로 한 이복형제였기 때문에 백제와 고구려가 여기서 뿌리가 갈린 것은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위의 내용으로서는 시간적 전후나 황실을 둘러싼 사연들, 반도, 대륙의 공간적 식별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상대上代의 역사를 포함한 확실한 사료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서 백제의 실체는 전후좌우가 맞지 않는 오리무중에 빠져버렸다.
 
 상대上代역사, 즉 단군조선과 북부여의 역사를 보면 백제와 고구려의 계보가 갈라진 연원은 상당히 심층적이라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근원을 들여다보면 훨씬 더 윗대부터 그 연원이 나오지만 직접적으로는 조선의 마지막 47대 고열가高列加단군 이후의 오가五家공화정, 그리고 북부여 건국과 관련된다. 또한 한민족 역사의 잃어버린 미싱링크, 북부여사 내부에서 일어난 일들 때문에 백제와 고구려가 탄생하게 된다. 그러한 심층적인 연원 때문에 후세 역사의 향방이 결정되고 갈라지게 된다.
 
 
 백제의 개척자적 기상
 이후에 고구려와 백제는 대륙과 해양에서 각각 다른 길을 가게 된다. 백제는 고구려에서 갈려나온 이주의 역사에서 보여지듯 강한 개척자의 기상과 자유로움을 가지고 역사를 시작한다. 이미 세련되게 완성된 문화와 당시 세계최고의 기술력을 가지고 주변세계로 뻗어나갔다.
 
 고구려는 이미 전대에서부터 국가 통치력을 좌우하던 오가의 영향 때문에 처음부터 왕권을 강화하기가 어려웠다. 고구려 역사는 왕권과 부족세력, 즉 오가와의 세력균형이 국정을 좌우할 정도로 현안이 되곤 했다. 고구려의 이러한 내부 전통은 역사에 선명하게 기록된다. 황실은 왕권강화의 사상적 기반을 찾아 불교중에서도 삼론종三論宗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백제는 그러한 부족연합적 전통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임금의 위치는 안정적이었다. 유리는 북부여에서부터 주몽을 찾아와 권력을 이어받음으로써 북부여와 졸본부여의 전통을 유지해야 했다. 비류와 온조는 그런 전통으로부터 자유로운 개척자들이었다.
 
 백제 황실은 부족이라는 정치세력을 일찍부터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바깥에서 대중들을 직접 교화할 수 있는 미륵불교 사상인 불교의 계율종戒律宗을 받아들였다. 불교의 율학律學이 왕실의 지원을 받아 번성했으며 백제의 임금은 미륵사상의 법왕法王이 되어 백성을 직접 제도한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국가 초기부터 국력을 결집할 수 있었던 백제는 매우 세련되고 안정된 문화와 부富, 전대의 사상, 기술적 기반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아시아 전체로 진출했다. 중원과 일본은 물론 동남아시아, 인도에까지 그 명성과 영향력을 떨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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