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뉴스

아우내 장터 항일독립선언서 원본을 찾습니다.

신상구 | 2017.03.31 21:49 | 조회 315

                                                  아우내 장터 항일독립선언서 원본을 찾습니다.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인 대산(大山) 신상구(辛相龜, 67세) 국학박사는 충청지역을 중심으로 향토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조사 연구하는 향토사학자로서 특히 지난 30여 년 간 충남 천안과 내포지역의 항일독립운동사를 정립하는 데에 일조를 해왔다.
    예산 삽교중에 근무할 당시에는 덕산지역 항일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야운(冶雲) 조인원(趙仁元, 1875-1950) 선생을 한국 최초로 조사 연구하여 논문을 발표하고, 매헌(梅軒) 尹奉吉(1908-1932) 의사의 생애와 업적을 조사 연구하여 예산신문에 연재하였다.
    당시 5대 국사편찬위원장이었던 박영석(朴永錫) 박사는 예산에서 개최된 ‘내포지역 항일독립만세운동 관련 세미나’에 참석해 내가 조인원 선생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만면에 웃음을 띠며 열렬한 박수를 보내주어 내 마음을 감동시킨 바 있다.
    이어서 천안여중에 근무할 때에는 내포지역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하고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한 천도교 4대 법종 춘암(春菴) 박인호(朴寅浩, 1855-1940) 선생을 한국 최초로 조사 연구하여 천도교 대전교구 기관지인『한울빛 세상』에 논문을 발표하고, 태안중에 근무할 때에는 태극도의 3.1독립운동과 조선독립단 서산지부의 활약상을 소개하여 내포지역 항일독립운동사를 정립하고, 그분들의 업적을 선양하는 데에 나름대로 많이 기여했다.
    그 후 천안북중과 천안중에 근무할 당시에는 한국 최초로 포암(逋巖) 이백하(李栢夏, 1899-1985)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3년 동안 조사연구하여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을 수상한 바 있는데, 특히 이백하 선생이 기초하고 조인원 선생이 기미년 4월 1일 아우내장터에서 낭독한 항일독립선언서를 발굴해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리고 기미년 3.3일 천안역전 독립만세운동 관련 기록을 처음으로 발굴해 언론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대전일보, 충청일보, 동양일보, 중부매일, 충북일보, 충청투데이, 중도일보, 충청타임즈, 충청신문, 중앙매일, 대전투데이 등 지방 일간지는 물론 동아일보, 경향신문, 문화일보, 서울일보 등 중앙 일간지에서도 지면을 많이 할애하여 대서특필하여 역사학계는 물론 전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모았다. 그러자 YTN, 대전 KBS와 MBC, 청주 CJB 방송국에서도 나를 출연시켜 보도함으로써 향토사학자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해주었다.


                                                                       아우내 장터 독립선언서

  2천만의 민족이 있고 3천리의 강토가 있고 5천년의 역사와 언어가 뚜렷한 우리는 민족자결주의를 기다리지 않고 원래 독립국임을 선포하노라.
  민족의 대표 33인이 선봉이 되었으니 13도 2천만 민중은 뒤를 이어 때를 잃지 말고 궐기하라. 분투하라. 인도 정의의  두 주먹으로 잔인무도한 일본의 총칼을 부수라.
  정의의 칼날 앞에는 간악한 창과 방패가 굴복할 것이다.
  하늘은 의로운 무리를 도울 것이며 귀신은 반드시 극악무도한 자를 멸할 것이니 동포여 염려할 것 없고 주저할 것 없이 오늘 정오를 기하여 병천 시장에 번득이는 태극기를 따르라. 모이라. 잃었던 국토를 다시 찾자. 기회를 놓치면 모든 복도 가느니 두 주먹을 힘차게 쥐고 화살같이 모이라.
  반만년의 문화민족이 노예시 야만시 하는 일본의 굴욕을 감수할 것이랴.

                                                                             기미년 4월 1일
                                                                         구국동지회 대표 일동


    아우내 장터 항일독립선언서는 기미년 3.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선언된 최남선(崔南善,1890-1957) 선생과 한용운(韓龍雲,1879-1944) 선사가 기초한 독립선언서가 너무 길고 난해하여 그것을 참고해 이백하 선생이 직접 초안, 미농괘지(美濃罫紙)에 수일간 철야 복사해 배부하고, 이백하 선생과 절친했던 조인원(趙仁元) 선생이 기미년 4.1일 오후 13시에 아우내 장터에서 낭독했다고 한다.
   “2천만의 민족이 있고 3천리의 강토가 있고 5천년의 역사와 언어가 뚜렷한 우리는 민족자결주의를 기다리지 않고 원래 독립국임을 선포하노라.”로 시작되는 이 독립선언서는 536 자에 불과해 짧지만 거사에 주민들을 많이 동원하기 위해 선동적인 언어가 많이 기술되어 있고, 우리 민족의 굳건한 항일독립의지와 기개가 실감나게 잘 나타나 있다.  
   최근 필자가 3.1운동을 전문적으로 조사연구하고 있는 역사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2017년 3월 29일 현재까지 기미년 3.1운동 당시 지방에서 독립선언서를 자체 기초해 선언한 것으로 밝혀진 곳은 경상남도의 함안(咸安)과 하동(河東)을 비롯해 3-4곳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리하여 기미년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선언된 이백하 선생이 기초한 독립선언서는 한국의 항일독립운동사상 아주 드문 사례로 그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클 뿐만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正體性,identity)을 밝히는 데에 아주 중요한 향토 사료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몇 해 전부터 해마다 3.1절이 돌아오면 독립기념관에서 성대한 기념식이 엄숙하게 개최되고, 아우내장터에서 봉화제 행사가 활기차게 전개되고 있지만, 내 마음은 그저 착잡하기 그지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난 10여 년 동안 구국동지회 이름으로 발표된 아우내장터 독선선언서 원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 보았지만, 아직까지 원본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신문과 방송은 물론 지역문화원과 시민단체,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등을 중심으로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원본을 찾기 위해 널리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찾기운동’을 전개하고, 국가 기록보존소를 직접 방문해 독립선언서 원본과 구국동지회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았지만 허사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협조해 주는 데가 아무데도 없어, 이제는 절망적이다. 설상가상으로 실증주의(實證主義, positivism) 사학을 신봉하는 강단사학자들이 아직까지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원본을 찾지 못하고, 구국동지회에 대한 기록을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독립운동가들과 그 후손들의 생생한 증언과 기록을 무시 내지 부정하고 있으니 정말로 안타까운 마음 이루다 형언할 수 없다. 심지어는 조작 가능성까지 들고 나와 나는 물론 항일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만약 항일독립운동가들이 그런 나쁜 마음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면, 사랑하는 가족들마저 버리고 하나밖에 없는 자기의 소중한 생명을 조국에 받쳐가면서까지 이국 만리 만주벌판을 떠돌며 풍찬노숙하면서 항일독운동을 열렬히 전개했겠는가.
    그런데 아직도 가느다란 한 가닥 희망은 있다. 천안, 병천, 진천지역 3,000여명의 성난 애국 시민들이 아우내장터에서 목이 터져라 항일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지금 어디엔가 살아남은 후손들이 아우내 장터 독립선언서 원본을 소장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나는 미력하지만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전국적으로 <아우내 장터 독립선언서 원본 찾기 운동>을 전개하고, 구국동지회의 실체를 밝히는 데에 배전의 노력을 경주할 각오이다.
    그리고 내가 학계에 최초로 제기한 천안역전 3·3독립만세운동에 대한 실체를 밝히고,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는 데에도 남다른 사명감을 가지고 매진할 각오이다.
    또한 항일독립운동가들의 유지를 이어받아 우리 조국이 당면한 국가적 난제인 환경오염과 파괴, 노사분규, 양극화, 분단과 통일, 핵문제, 인간소외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에도 열과 성을 다해 선진민주복지국가의 건설에도 나름대로 기여할 생각이다.
    아무튼 전국의 열렬한 애국시민들이 기미년 4월 1일 아우내 장터 항일독립만세운동 제98주년을 계기로 하여 지금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아우내 장터 독립선언서 원본을 찾기 운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아우내 장터 독립선언서 원본을 하루라도 빨리 찾아내기를 다시 한 번 기원해 본다.  
                                                                                        <참고문헌>
    1. 신상구, "항일독립운동가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문화원연합회, 제23회 전국향토문화공모전 수상집, 2008. (주)계문사, 2008.11.25.
    2. 신상구, "아우내 장터 독립선언서의 역사적 의의와 창조적 계승 방안",  중앙매일신문, 2016.3.31일자. 16면.
    3. 김예지, "아우내 독립선언서 천안서 자체제작 - 신상구씨, 이백하 선생 기초 주장...10년째 원본찾기", 대전일보, 2016.4.1일자. 20면.
    4. 이해미, "4.1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 포암 이백하 선생을 아십니까?", 중도일보 인터넷판, 2016.4.1일자.
    5. 신상구. “아우내 장터 독립만세운동 98주년을 기념하며”, 중부매일, 2017.3.31일자. 19면.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83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시부문 신인작품상, <문학사랑>·<한비문학> 문학평론부문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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