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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환단고기-역사자료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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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계서 가장 오래된 ‘1만 2000년 전’ 달력 발견…“별자리까지 기록”</title>
			<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size: 18pt;">세계서 가장 오래된 ‘1만 2000년 전’ 달력 발견…“별자리까지 기록”</span>[핵잼 사이언스]</p><p><br></p><p><span style="font-size: 12pt;">서울신문 2024. 8. 7.&nbsp;</span></p><p><br></p><p><span style="font-size: 12pt;">[서울신문 나우뉴스]</span></p><p><br></p><p><img src="https://www.hwandangogi.or.kr/files/2024/08/07/c51c3084bcc541552abc1f9616b989ca221943.jpg" width="580" align="top" class="txc-image photo" alt=""><br></p><p><span style="font-size: 12pt;">왼쪽은 괴베클리 테페의 A~D 구역 평면도. 오른쪽은 괴베클리 테페의 43번 기둥 D 구역. 출처 Alistair Coombs</span></p><p><br></p><p><span style="font-size: 12pt;">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달력이 발견됐다. 학계는 문명사를 새로 써야 할 만큼의 중대한 발견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span></p><p><br></p><p><span style="font-size: 12pt;">영국 에든버러대학 공과대학의 마틴 스윗먼 박사 연구진은 튀르키예 남부에 있는 고고학 유적지인 괴베클리테페((öbeklitepe)에서 돌기둥에 새겨진 오래된 태양력을 발견했다.</span></p><p><br></p><p><img src="https://www.hwandangogi.or.kr/files/2024/08/07/ffa51010e37cddc416baa6f2a0e5d1fa221955.jpg" width="580" align="top" class="txc-image photo" alt=""><br></p><p><span style="font-size: 12pt;">왼쪽은 전갈자리 주변의 모습, 오른쪽은 괴베클리테페 사원에서 발견된 태양력</span></p><p><br></p><p><span style="font-size: 12pt;">무려 1만 2000년 전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고대 시간 측정 시스템은 단순히 계절을 추적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인류와 지구 역사의 흐름을 바꾼 재앙적인 혜성 충돌을 기록하는데에도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span></p><p><br></p><p><span style="font-size: 12pt;">연구진은 돌에 새겨진 태양력은 달과 태양의 주기를 모두 추적하는 정교한 달력이었으며, 이는 문자가 발명되기 수천 년 전의 것인 만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달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span></p><p><br></p><p><br></p><p><b><span style="font-size: 12pt;">‘가장 오래된 달력’ 발견된 괴베클리테페는 어떤 곳?</span></b></p><p><br></p><p><span style="font-size: 12pt;">1만 2000년 달력이 발견된 괴베클리테페는 높이 15m에 직경 300m 정도 규모의 사원으로, 사원 내부에는 20t에 달하는 T자형 돌 200여 개가 세워져 있다. 높이가 각각 5~6m에 달하는 원형 돌기둥에는 다양한 동물이 새겨져 있었으나, 해당 사원의 정확한 기능은 미스터리에 싸여 있었다.</span></p><p><br></p><p><span style="font-size: 12pt;">그러나 연구진은 이번에 발견한 태양력이 인류 최초의 신전으로 평가받는 괴베클리테페의 ‘예상치 못한 목적’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span></p><p><br></p><p><img src="https://www.hwandangogi.or.kr/files/2024/08/07/019a4bc9d88f7de4a42c1406dcac4c10222012.jpg" width="580" align="top" class="txc-image photo" alt=""><br></p><p><span style="font-size: 12pt;">괴베클리 테페의 43번 기둥 중앙의 세부 모습</span></p><p><br></p><p><span style="font-size: 12pt;">스윗먼 박사는 “괴베클리테페의 주민들은 하늘을 예리하게 관찰하는 사람들이었다. 혜성 충돌로 그들의 세계가 파괴된 것을 감안하면 예상할 수 있는 일”이라면서 “당시 고대인들은 기둥에 새겨진 각각의 ‘V’자를 하루로 해석했고, 총 365개의 ‘V’를 통해 완전한 태양년을 센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span></p><p><br></p><p><span style="font-size: 12pt;">실제로 괴베클리테페에서 발견된 태양력에서는 총 12개의 태음월(보름달이 된 때부터 다음 보름달이 될 때까지의 시간)과 태양년에 맞춰 추가된 11일로 구성돼 있다.</span></p><p><br></p><p><span style="font-size: 12pt;">이는 태음태양력이라고 부르는데, 달의 삭망에 기준을 두면서, 계절에도 맞춘 역법으로 윤달을 두어 태양년과 일치시키는 방식이다. 괴베클리테페에서 발견된 달력은 지금까지 알려진 태음태양력보다 수천 년 앞선 셈이 된다.</span></p><p><br></p><p><br></p><p><span style="font-size: 12pt;">연구진은 “괴베클리테페의 위치와 연대는 인류 역사의 중요한 시점, 즉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전환기에 있다. 이는 인간이 영구적인 공동체에 정착하고 농업을 발전시키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시기였다”면서 “이처럼 중요한 순간에 이 같은 진보된 시간 측정 시스템이 존재했다는 것은 천문학적 지식이 구석기에서 신석기로의 전환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span></p><p><br></p><p><b><span style="font-size: 12pt;">고대인이 이토록 정교한 달력을 만든 이유</span></b></p><p><br></p><p><span style="font-size: 12pt;">그렇다면 1만여 년 전 고대인은 왜 이토록 정교한 달력을 만들어야 했을까.</span></p><p><br></p><p><span style="font-size: 12pt;">연구진에 따르면 약 1만 3000년 전 지구는 혜성 또는 그 파편과 충돌하면서 1200년 이상 지속된 소빙하 시대를 맞았다. 당시 많은 대형 동물종이 멸종했고 인류는 이러한 상황에 적응해야 했다.</span></p><p><br></p><p><span style="font-size: 12pt;">연구를 이끈 스윗먼 박사는 “이 사건은 새로운 종교뿐만 아니라 추운 기후에 대처하기 위한 농업 발전을 촉진함으로써 새로운 문명을 촉발했을 수 있다”면서 “특히 혜성 충돌로 인해 새호운 종교나 문화적 관습이 생겨나고, 괴베클리테페 사람들의 문명 발달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span></p><p><br></p><p><img src="https://www.hwandangogi.or.kr/files/2024/08/07/41e811f879360d83e60a3c5ef8242830222029.jpg" width="580" align="top" class="txc-image photo" alt=""><br></p><p><span style="font-size: 12pt;">영국 학문 저널 테일러 앤 프랜시스(Taylor &amp; Francis) 홈페이지 캡처</span></p><p><br></p><p><span style="font-size: 12pt;">이어 “지구의 자전축이 점진적으로 변하는 세차운동은 별자리가 하늘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기원전 150년 당시 그리스 천문학자 히파르코스가 처음 기록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괴베클리테페의 달력은 그 시기를 최소 1만 년 앞당겼다”고 덧붙였다.</span></p><p><br></p><p><span style="font-size: 12pt;">또 “이러한 이론이 맞다면 우리 조상은 상상보다 훨씬 더 정교한 그림을 그려낼 줄 알았으며, 이를 통해 우주적 사건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복잡한 천체 주기를 추적하고, 해당 지식을 세대를 거쳐 전수할 수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문자 언어가 없이도 가능했다”고 전했다.</span></p><p><br></p><p><span style="font-size: 12pt;">이번 연구결과는 영국 학문 저널 테일러 앤 프랜시스(Taylor &amp; Francis)가 출간하는 고고학 관련 저널 ‘시간과 정신’(Time and Mind) 최신호(7월 24일자)에 실렸다.</span></p><p><br></p><p><span style="font-size: 12pt;">송현서 기자</span></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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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환단스토리</dc:creator>
			<category><![CDATA[잃어버린 고대문명]]></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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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Wed, 07 Aug 2024 22:20:41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환단학회] 『환단고기』가 위서가 아님을 입증하는 사료의 고찰</title>
			<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size: 14.6667px;">현재 『환단고기桓檀古記』는 재야사학계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특별한</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역사서歷史書로 관심을 갖고 있다. 『환단고기』는 1911년 계연수에 의하여 안함로安含老의 『삼성기 전 상편』, 원동중元董仲의 『삼성기 전 하편』, 이암李嵒의 『단군세기』, 범장范樟의 『북부여기』, 이맥李陌이 저술한 『태백일사』를 합본하여 출간한 역사서이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계연수의 제자 이유립이 보관하여 갖고 있던 원본 『환단고기』를 1949년 제자 오형기에게 정서精書시킨 것을 조병윤이 1979년에 ‘광오이해사’ 를 통하여 필사본 『환단고기』를 출판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본 연구 논문에서는 『환단고기』의 편찬과 전래 과정을 검토하고, 『환단고기』가 위서僞書라고 주장하는 강단사학계 일부 역사학자의 논문과 출판된 저서들의 내용들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청나라 이후 사용된 근대 용어라고 지목하는 『환단고기』에 기재된 특정 지명(예: 영고탑, 문화, 문명 등)과 역사 기술 사항 등이 위서론자들이 주장하는 사용 시기보다 더 오래전에 사용된 증거들을 찾았다. 또한, 『환단고기』에 있는 역사적 내용과 지명 등이 현재까지 잘 알려 지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이전에 출판되어 현존하는 역사서와 해방 후 발굴된 유물 등과 대조하여 진위를 확인한 결과『환단고기』가 위서가 아님을 증명하였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특히, 조인성 등 위서론자들이 1911년 계연수에 의하여 편찬된 『환단고기』의 원본이 없다는 것을 근거로 해방 후에 만들어진 위서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주장이 허위임을 증명해주는 ‘등사본’ 『환단고기』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이 등사본 『환단고기』는 「삼성열기三聖列記」, 「단군세기」, 「북부여기」 상, 하만 수록되어 있다.1979년 광오이해사 출판 『환단고기』「삼성기 전 상」과 『등사본 환단고기』「삼성열기」의 원문을 비교해볼 때 문장의 일부분이 다른 부분이 있다. 『환단고기』「삼성기 전 상」은 「삼성열기」의 원문 내용과 비교해볼 때 90% 정도는 같지만 나머지 약 10% 정도 차이가 있다. 「단군세기」, 「북부여기」 상, 하에도 일부분이 수정, 추가 또는 삭제되어 차이를 보이고 있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등사본 『환단고기』는 한문 문장에 한글 현토가 달려 있고, 「삼성열기」를 보면 문장 끝에 “李沂註曰. --”이란 주해註解가 기재되어 있어 광오이해사본 『환단고기』와 다르다. 이는 이유립이 아닌 제삼자가 소장했던『환단고기』혹은 그 저본을 보고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 어쩌면 등사본『환단고기』는 1911년 계연수가 편찬한 『환단고기』의 저본일 수도 있다고 추론하였다. 따라서 등사본『환단고기』의 존재는 기존의 광오이해사본 혹은 배달의숙본『환단고기』가 1911년 계연수에 의하여 편찬된 원본이 실재하였음을 입증하는 증거라 할 수 있다.『환단고기』는 과거에 망실된 우리 고대사를 복원하는데 중요한 역사서라고 판단되며, 위서론-진서론의 논쟁을 종식하고 다함께 『환단고기』를 있는 그대로 연구함으로써 우리나라 고대사에 왜곡되거나 부정확한 역사를 바로 잡아 역사 발전에 기여할 것을 제안한다.</span></p><div><br></div><div>* 다운로드:&nbsp;<a target="_blank" href="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221" style="font-size: 11pt;">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221</a>&nbsp;(로그인 필요)&nbsp;</div><div><br></div><p><br></p>]]></description>
			<link>https://www.hwandangogi.or.kr/?r=hwan&amp;m=bbs&amp;bid=hwan09&amp;uid=22957</link>
			<dc:creator>환단스토리</dc:creator>
			<category><![CDATA[전문 자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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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04 Jul 2020 16:15:1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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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환단학회] 한국 고대사상의 내용과 특징 (이기동)</title>
			<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size: 14.6667px;">한국고대사상의 핵심은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 분리되지 않는 하나라는 것</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에 있다. 호수의 물에서 여러 개의 얼음들이 얼었다 녹았다 하지만, 얼음은 본질적으로 물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본질에서 보면 모두 하나의 물인 것처럼 사람들도 본질적으로 모두 하나이다. 본질에서 보면 얼음이 얼기 시작해도 시작한 것이 아니고 녹기 시작해도 시작한 것이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몸은 우주에 빈틈 없이 존재하는 하나의 본질이 엉켜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본질에서 보면 사람이 여전히 하나이기 때문에 태어난 것도 없고, 늙는 것도 없으며 죽는 것도 없다. 모든 것이 하나이므로 하늘과 땅과 사람이 본질적으로 나눠지지 않는다. 하늘은 성性·명命·정精의 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성은 만물을 살리는 마음이고, 명은 만물에게 살도록 명령하는 것이고, 정은 만물을 만들어내는 재료이다. 사람은 하늘과 하나이므로 하늘의 성이 사람의 마음이고 하늘의 명이 사람의 기운이며 하늘의 정이 사람의 몸이다. 하늘의 성은 착하고 명은 맑으며 정은 두텁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은 착하고 기운은 맑으며 몸은 두텁다. 그런데 사람이 착각을 일으켜 하늘과 하나인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마음이 악해지고 기운이 탁해지며 몸이 엷어진다.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복을 받지만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재앙을 받는다. 맑은 기운을 가진 사람은 장수하지만, 탁한 기운을 가진 사람은 요절한다. 두터운 몸을 가진 사람은 귀한 모습이 되지만, 엷은 몸을 가진 사람은 천한 모습이 된다.이 때문에 사람에게는 악한 마음을 악한 마음으로, 탁한 기운을 맑은 기운으로, 엷은 몸을 두터운 몸으로 되돌려야 하는 과제를 짊어진다. 이 세 가지 목적을 이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동굴에 들어가 마늘과 쑥을 먹으면서 착한 마음과 맑은 기운과 두터운 몸을 회복하여 참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참된 사람이 되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남들과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참된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여 세상을 홍익인간으로 만들 수 있다.</span></p><div><br></div><div>* 다운로드:&nbsp;</div><p><a target="_blank" href="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220">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220</a>&nbsp;<br></p><p>(로그인 필요)&nbsp;</p><p><br></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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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환단스토리</dc:creator>
			<category><![CDATA[전문 자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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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04 Jul 2020 16:13:5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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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환단학회]『환단고기』 위서론 비판 (노종상)</title>
			<description><![CDATA[<p><br></p><p><br></p><p><span style="font-size: 14.6667px;">1911년 운초 계연수에 간행된 『환단고기』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논의가 축적되었다. 역사서로서 『환단고기』에 대한 논의도 다양하게 전개되었지만, 『환단 고기』 자체에 대한 서지학적 측면의 논의도 진행되었다. 문제는 『환단고기』의 위서논쟁이다. 이 논쟁은 아직도 정리되지 않았다. 『삼성기』는 『환단고기』의 앞부분에 실려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안함로, 원동중이다. 위서론자들은 『삼성기』도 위서라고 주장한다. 위서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위서의 첫 번째 조건인 ‘저자를 가짜로 만든 책’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삼성기』는 ‘저자를 가짜로 만든 책’이란 혐의를 받고 있다. 있지도 않은 저자를 조작해서 지어 내었다는 것이다. 『삼성기』 저자 조작설을 주장하는 근거로 제시되는 문헌사료는 『조선왕조실록』 세 조 3년(1457) 5월 26일자 기사이다. 이 기사에는 “안함로·원동중 「삼성기」”라는 그의 이름과 저술명이 공개되어 있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nbsp;그러나 『환단고기』 위서론자들은 안함로·원 동중을 안함·노원·동중 3인이라고 주장한다. 『삼성기』 저자 조작설의 근거로 제시된 다른 문헌사료는 『신증동국여지승람』 해주 목 고적조 ‘수양산성’조이다. 여기에 “세상에서 전하기를 ‘옛날에 안함·원로·동중 세 사람이 있어, 터를 보아 쌓았다.’ 한다.”는 문장이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3인의 이름은 『세조실록』에 나오는 이름과 한자가 조금 다르고(안함), 글자도 다르다(노 원). 그러나 위서론자들은 한글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3인이 동인인물라고 주장 한다. 따라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안함·원로·동중 세 사람’을 근거로 『삼성 기』의 안함로·원동중은 처음부터 없었으며, 조작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3인이 등장하는 기사는 역사적 사실과 무관한 내 용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단지 ‘세상에서 전하는 이야기’를 옮겨 적었다 고 기록하였다. 이와 같은 떠도는 이야기가 안함로·원동중 조작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nbsp;</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또한 같은 기사에는 “산성 안에 고죽군 옛터가 있다.”고 했다. 이 고죽군은 이 지역에 대한 별명으로 사용되었으나 그 배경에는 수양산, 백이·숙제, 고죽국과 관련 이 있다. 고죽국은 지리적으로 중국 영평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따라서 고죽국이 이 지역에 있었다는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시대의 조선유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사 대주의적 의식과 관계된 것으로 허상에 다름 아니다. 『환단고기』 위서론자들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수양산성’ 기사에서 전체 내용을 무시하고 자기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안함·원로·동중 3인의 이름만을 갖고 와서 『세조실록』의 관련기사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하고, 나아가 『삼성기』 저자 조작설을 주장하였다.&nbsp;</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한마디로 전혀 역사적, 지리적 사실이 아닌 기사 가운데 이름몇 개만 갖고 와서 자기에게 유리한 주장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들이 주장하는 『삼성기』 저자 조작설은 『환단고기』 위서론의 근거로 이용되고 있 으므로 이를 논박치 않을 수 없다.</span></p><div><br></div><div>* 다운로드:&nbsp;<a target="_blank" href="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218" style="font-size: 11pt;">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218</a>&nbsp;(로그인 필요)&nbsp;</div><div><br></div><div><br></div><p><br></p>]]></description>
			<link>https://www.hwandangogi.or.kr/?r=hwan&amp;m=bbs&amp;bid=hwan09&amp;uid=22955</link>
			<dc:creator>환단스토리</dc:creator>
			<category><![CDATA[전문 자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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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04 Jul 2020 16:12:3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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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환단학회] 운초 계연수의 생애, 사상 및 업적 (윤창열)</title>
			<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size: 14.6667px;">운초 계연수는 1864년 宣川에서 태어나 조실부모하고 修鍊을 하면서 桓檀 의 古書와 神敎 哲學書를 널리 수집하였다. 1898년 『태백진훈』 『단군세기』를 간행 하고 1899년 『참전계경』 『태백일사』 『천부경요해』를 간행하였으며, 1911년 암함 노의 『삼성기』, 원동중의 『삼성기』, 이암의 『단군세기』, 범세동의 『북부여기』, 이맥 의 『태백일사』를 합편하여 『환단고기』를 간행하였다.&nbsp;</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스승인 李沂가 단학회를 창립 하고, 1909년 絶食自盡하자 운초는 단학회를 발전시키고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 1918년 겨울 단학회 본부를 관전현 紅石拉子로 옮겨 단학회관을 짓고 倍達義塾을 열었으며 단학회보를 간행하였다. 1898년 무술년에 광개토태왕비를 탁본하고 1912년 다시 탁본을 뜬 이후 무술등본에 의거하여 그 사이에 마멸된 138자를 복원 하여 ‘聖陵碑文缺字徵實’을 발표하여 광개토태왕비의 진면목이 후세에 알렸다. 1916년 9월 9일 묘향산 석벽에서 천부경을 탁본하여 이것을 1917년 1월 단군교 교당으로 보냈다. 이것이 1920년 『정신철학통편』과 1921년 단군교 기관지인 『檀 鐸』에 게재되면서 천부경이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nbsp;</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이 때 운초는 글자가 모호 했던 탁본과 함께 천부경 필사본을 함께 보냈는데, 단군교에 보낸 천부경의 필사본 이 『태백일사』본이라고 사료 된다. 1919년 4월 이상룡의 西路軍政署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고 1920년 8월 15일 韓奸 甘永極에게 체포되어 被殺 당하였다.&nbsp;</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운초 계연 수는 조선시대 말기와 일제강점기 시대를 살면서 우리 민족의 9천년 역사를 밝히는 桓檀의 古史를 수집하여 간행하였고, 한민족의 道學心法을 밝히는 서적을 연구하여 간행하였다. 그는 위대한 역사가이고 훌륭한 철학자이며 불굴의 독립운동가였으 며, 겨레의 큰 스승이었다.&nbsp;</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그러나 선생은 국가로부터 어떠한 포상도 받지 못하였고, 그의 사상과 업적은 제대로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 본 논문을 통하여 운초 계연수의 功勞와 업적이 정당한 평가를 받기를 기대한다.</span></p><div><br></div><div>* 다운로드:&nbsp;<a target="_blank" href="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213" style="font-size: 11pt;">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213</a>&nbsp;(로그인 필요)&nbsp;</div><div><br></div><div><br></div><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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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환단스토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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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04 Jul 2020 15:41:48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환단학회] 천부경天符經 위작설僞作說 비판 (유철)</title>
			<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일반적으로 천부경은 단군의 고조선시 백성들을 가르치던 경전으로 알 려져 있다. 가장 먼저 그 전문이 알려진 것은 1911년에 간행된 「환단고기」 ｢태백일 사｣의 천부경이다. 그러나 원본 「환단고기」는 실전되고 1979년에 와서 재간행 되 었다. 그 사이 천부경이 세상에 널리 공표된 것은 1920년 전병훈의 「정신철학통편」 을 통해서이다. 그런데 전병훈에게 천부경을 전해준 사람은 단군교의 윤효정이다. 그리고 단군교의 천부경은 계연수가 묘향산 석벽의 천부경을 발견하고 탁본하여 보 낸 것이다. 이러한 천부경의 전래과정이 근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여러 위작설 이 생겨났다. 이 논문의 주제는 천부경 관련 위작설을 세 가지로 분류해서 살펴보고 이들 각각의 위작설을 논리적으로 비판하고 천부경의 진실성을 강조하는 것이다.</span></p><div><br></div><div>* 다운로드:&nbsp;<a target="_blank" href="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206" style="font-size: 11pt;">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206</a>&nbsp;(로그인 필요)&nbsp;</div><div><br></div><div><br></div><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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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환단스토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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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04 Jul 2020 15:40:2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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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환단학회] 천부경의 유래와 초기 전승에 관한 검토 (노종상)</title>
			<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size: 14.6667px;">「천부경」이 인류역사에 던지는 의미는 간단하지 않다.「천부경」에 한 선행연구도 적지는 않다. 그러나 「천부경」의 유래에 관한 선행연구는 찾아보기 어 렵다. 이 논문은 「천부경」의 유래에 관한 연구다. 이 논문에서는 「천부경」의 전승과 정을 편의상 3기로 구분하다. 초기는 환국·배달·단군조선 시다. 중기는 삼국시 부터 조선시 말까지, 후기는 한제국 시부터 현재까지다. 여기서 ‘초기’는 「천부경」의 유래와 동시라는 점에서 그 어떤 시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초기 전승은 「천부경」의 유래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서 「천부경」의 ‘천부’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삼국유사」 고조선 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천부인’은 천제 환인이 환웅천황에게 전해준 신표다. 이 ‘천부인’이 곧 「천부경」이라는 주장이 있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이 「천부경」의 ‘인수인계’사건은 실체적 역사적 사건이었다. 「천부경」은 최초의 나라인 환국 때부 터 구전되어 온 경전이라는 「환단고기」 기록이 근거다. 「천부경」은 환국을 통치했 던 천제 환인들 사이에 전수된 원형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환국의 「천부경」은 배달국으로 전수되었다. 다시 말하면 환국 시에 구전되었던 「천부경」이 환국 마지막 천제 환인으로부터 배달 신시 1세 환웅천왕으로 전해졌다. 환웅천왕은 신시 혁덕에게 명하여</span></p><div><br></div><div>* 다운로드:&nbsp;<a target="_blank" href="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205" style="font-size: 11pt;">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205</a>&nbsp;(로그인 필요)&nbsp;</div><div><br></div><div><br></div><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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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환단스토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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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04 Jul 2020 15:39:40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환단학회] 환단고기에 대한 역사비평적접근의 필요 (민영진)</title>
			<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이 논문은 두 가지 작업을 제안한다. 우선 ‘환단고기 비평적 편집본’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한다. 그 방법으로 환단고기의 여러 수기사본이나 판본을 가능한 한 다 수집收集하고, 각 판본의 연와 성격을 규명하고, 각 판본 사이의 이독 을 목록으로 작성하고, 각 이독의 발생 배경을 추적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환단 고기 에 나오는 여러 문헌의 원전을 추적하여 ‘환단고기와 관련된 고문헌’을 별책 으로 편집해 볼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두 가지 작업은 한 개인의 노력으로 이루어지 기에는 분야가 광범위하다. 수백 명, 어쩌면 수천 명 학자들이 한 세기에 걸친 장기 계획으로 수행해야 할 작업이다. 이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환단고기의 ‘낱말사 전’, ‘문법’, ‘어구사전’, ‘본문비평’, ‘자료비평’(혹은 문헌비평), 편집비평 등에 관한 저작물들이 나올 것이며, 환단고기는 한민족의 성전聖傳으로서의 권위와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다.</span></p><div><br></div><div>* 다운로드:&nbsp;<a target="_blank" href="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204" style="font-size: 11pt;">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204</a>&nbsp;(로그인 필요)&nbsp;</div><div><br></div><div><br></div><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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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환단스토리</dc:creator>
			<category><![CDATA[전문 자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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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04 Jul 2020 15:38:50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환단학회] 桓檀古記를 통해서 본 三國遺事 古朝鮮記 해석 (윤창열)</title>
			<description><![CDATA[<p><br></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한국의 고대사를 기록한 대표적인 역사서이 다. 그러나 『삼국사기』는 中華事大主義사관에 입각하여 역사를 기술하여 우리민족 의 참역사를 후세에 전하여 주지 못하고 승려 일연에 의해 쓰여진 『삼국사기』는 고조선의 역사를 기록하으나 단군을 신화로 각색하여 지금까지도 우리민족이 고 대역사를 회복하는데 장애가 되게 하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그런데 1911년 간행된 『환단고기』 속에는 『삼국유사』의 「고조선」기에서 인용한 『古記』와 동일한 내용이 『삼성기』 下와 『태백일사』의 『신시본기』에 실려 있다. 특히 『신시본기』에서 『조대기』를 인용한 내용은 『古記』의 원본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 로 내용이 동일하다. 이에 필자는 『삼국유사』에서 인용한 『古記』는 『조대기』일 가능 성이 크다고 추정한다. 『환단고기』에서 인용한 『조대기』와 일연이 인용한 『고기』를 비교하면 일연의 무지 한 역사 인식으로 實史가 神話로 왜곡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를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1. 웅족, 호족 두 부족이 이웃하여 산 것을 곰과 호랑이가 같은 동굴 속에 살았다고 왜곡하다. 2. 웅족과 호족이 하늘의 계율을 지키는 백성이 되고자 한 것을 ‘곰과 호랑이가 사람 이 되고자 하다’ 라고 왜곡시켰다. 3. 참사람이 되어 인간다움을 실천하는 대인이 된다는 것을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된다’라고 왜곡하다. 4. 웅족은 수행을 통해 건강한 여자의 참모습을 얻었고 호족은 天性을 회복하는데 참여하지 못한 것을 ‘곰은 여자의 몸을 얻고 호랑이는 사람의 몸을 얻지 못했다’고 완전하게 신화로 왜곡시켰다. 5. 배달국이 끝나고 단군조선이 시작되는 것을 환웅이 熊氏女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고 하여 환국, 배달, 단군조선의 장구한 역사를 환인, 환웅, 단군의 가족사 로 왜곡시키고 신화로 해석하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전체 내용의 요점은 『조대기』에서는 웅족과 호족이 이주해온 환웅의 가르침을 받아 수행을 통해 마음속의 광명을 열어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고자하는 내용을 일연은 한 마리의 곰과 한 마리의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자 한다는 신화로 왜곡시킨 것이다. 이처럼 『환단고기』는 『삼국유사』의 「고조선」기를 전체적으로, 그리고 정확하게 해 석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환단고기』의 사료적 가치는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span></p><div><br></div><div>* 다운로드:&nbsp;<a target="_blank" href="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200" style="font-size: 11pt;">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200</a>&nbsp;(로그인 필요)</div><div><br></div><div><br></div><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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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환단스토리</dc:creator>
			<category><![CDATA[전문 자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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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04 Jul 2020 15:37:46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환단학회] 『환단고기』 위서론의 발생과 최근 동향 (유철)</title>
			<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size: 14.6667px;">1979년 『환단고기』가 출간된 이후 『환단고기』는 많은 중의 관심을 받았 고 사학계에서도 이를 주시했다. 그러나 『환단고기』가 담은 고사 내용은 역사학 계의 정통 학설과 양립할 수 없었다. 고사학계의 몇몇 학자들은 『환단고기』가 위 서라고 주장했다. 몇 편의 위서론 논문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그 논조와 내용은 동 소이하며, 『환단고기』의 가치를 인정하는 다수의 학자들에 의해서 충분히 반박되었 다. 한동안 잠잠하던 위서론이 최근 젊은 역사전공자들을 중심으로 다시 제기되었 는데, 이들은 『환단고기』의 내용에 한 비판이 아니라 『환단고기』를 중심으로 하 는 재야사학계의 정통성과 학문적 권위를 문제 삼고 있다. 정통 역사학이 아닌 유사역사학이라는 것이다. 이 논문은 위서론의 성립 배경과 과정을 년별로 살펴보고, 논박하는 한편, 최근 젊은 역사학자 모임에서 제기한 위서론을 검토 비판하면서, 위 서론의 전반적 문제점을 드러내고 그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고자 한다.</span></p><div><br></div><div>* 다운로드:&nbsp;<a target="_blank" href="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193" style="font-size: 11pt;">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193</a>&nbsp;(로그인 필요)&nbsp;</div><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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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환단스토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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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04 Jul 2020 15:36:41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환단학회] 『환단고기』의 발행과 내용 구성의 특징 (박정학)</title>
			<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size: 14.6667px;">『환단고기』는 원본이 없어 위서라는 딱지를 붙여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출판관계 사항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하더라도 발행과 관련 된 여러 가지 정황을 살펴보면, 일부 가필이 되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전체 내용이 최근에 창작된 위서라고 볼 수는 없다. 반면, 그 내용은 매우 가치가 있다. 먼저, 우리 역사의 주체인 민족의 이름과 형성시기를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는 유일 한 사서다. 둘째, 민족의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겨레 얼의 원형을 간직한 우리 민족의 창세신화가 들어있다. 셋째, 구석기-신석기라는 주류사학계의 선사시대구 분을 능가하는 서술 순서다. 넷째, 역사의 원동력인 겨레 얼을 함께, 자세하게 기술 하고 있다. 다섯째, 우리 사서에서 이름만 있고 내용이 없어진 많은 고기류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여섯째, 서로 다른 여러 사서들의 내용을 설명 또는 보완해준다. 따라서 명확한 증거 없이 위서라고 팽개치지 말고, 가치 있는 내용을 찾아 우리 역사 와 겨레 얼을 복원하는 데 적극 활용해야 한다.</span></p><div><br></div><p><br></p><p>* 다운로드:&nbsp;<a target="_blank" href="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190" style="font-size: 11pt;">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190</a>&nbsp;(로그인 필요)&nbsp;</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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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04 Jul 2020 15:35:56 +0900</dc:date>
			<dc:subject></dc:subject>
		</item>
		<item>
			<title>[환단학회] '환단고기'에 인용된 역사서 비교연구 (유철)</title>
			<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size: 14.6667px;">'환단고기'는 안함로의 '삼성기', 원동중의 '삼성기', 이암의 '단군세기</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 범장의 '북부여기' , 이맥의 '태백일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환단고기'를</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구성하는 각각의 역사서를 저술한 저자들은 그 이전의 여러 역사서들을 인용하고</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있다. 그런데 각 역사서를 저술할 당시에는 존재했던 인용서들이 조선 초기 수서령</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과 전란 및 일제의 수탈로 모두 사라져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용서의</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정체와 저자 및 저술 년대 등의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환단고기'의</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각 역사서에 인용된 사서들 중에서 '고기'와 '조대기', '삼성밀기'에서 인용된 내</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용들을 비교분석하여 그 각각의 특징을 상호 대비적으로 드러내고자 하였다. 특히</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삼국유사'의 '고기' 인용문과 '환단고기'에 인용된 '고기'를 상호 비교하여 두</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사서가 서로 다른 사서임을 밝혔고, 암함로의 '삼성기'는 비록 인용문은 없지만 여</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러 사서를 참고하여 저술되었음을 확인하였다.</span></p><div><br></div><div>* 다운로드:&nbsp;<a target="_blank" href="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185" style="font-size: 11pt;">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185</a>&nbsp;(로그인 필요)&nbsp;</div><div><br></div><div><br></div><p><br></p>]]></description>
			<link>https://www.hwandangogi.or.kr/?r=hwan&amp;m=bbs&amp;bid=hwan09&amp;uid=22908</link>
			<dc:creator>환단스토리</dc:creator>
			<category><![CDATA[전문 자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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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04 Jul 2020 15:35:1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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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환단학회] 발해연안 고대신석기 문명과 한민족과의 관계 (양대언)</title>
			<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이 글은 중국 발해만 연안의 신석기문명과 한민족과의 관계를 논한 것이</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다. 요하(Liao He) 및 대능하(Da Neang He)유역의 요동과 요서지방의 신석기문</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화는 내몽골지역의 적봉(赤峰)과 요동의 심양(審陽)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시기는 BC 7000년으로 추산 된다. 중국은 고대문명탐험공정(古代文明探原工程)으</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우수한 문명을 가진 국가로 부각 시키려 하고 있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C4500년의 홍산문화(紅山文化-Hong Shan culture)는 초기국가 단계에 진입</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우하량(牛河梁 -Niuheliang) 에서 발굴된 거대한 제단</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祭壇) 여신묘(女神廟) 적석총(蹟石塚)은 초기 문명사회 진입으로 보인다. 이 지역은</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원래 동이족(東夷)이 이룩한 문화로 인정 되어왔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그러나 중원 문화보다 2000여년이나 앞서면서도 정교 하고 찬란한 문화를 이룩한</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이 문명을 중국은 중국의 원류 문화로 편입시키고 그리고 동이족을 황제(黃帝)의 후</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예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소위 요하 문명을 이룩한 장본인들은 동이제족이며 한</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민족의 조상인 예맥(濊貊)의 후예들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다. 더구나 이 문명의 일부인 소하연문화(小河沿)나 하가점하층문화(夏家店下層)지</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역은 단군조선이 위치했던 지역이라고 하는 학계의 정설이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그런데 이 지역에서 요하문명의 핵심문화인 홍산 문화를 최초 발견하는 데는 1906</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년 이후 일본인들에 의하여 조사가 되고 연구되었다. 여기에 이 문명의 주류의 후예</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인 한국은 이 문명과 멀어지고 있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따라서 환단고기(桓檀古記)를 통하여 연관성을 찾아내어 이 문명에 대한 인식을 새</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롭게 정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발해만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발해만을 통하여 교류</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와 전파가 이루어진 발해만 문명은 당연히 발해만 연안 문명이라 이름하는 것이 타</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당하다고 본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 다운로드:&nbsp;</span><a target="_blank" href="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183" style="font-size: 11pt;">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183</a>&nbsp;(로그인 필요)&nbsp;</p><p><br></p><p><br></p><div><br></div><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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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환단스토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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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04 Jul 2020 15:34:2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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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환단학회] 주류강단사학자들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조원홍)</title>
			<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일제의 압박으로부터 광복된지 7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한국의 주류</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강단사학계에서는 일제 &amp;lt;조선사편수회&amp;gt;가 축소. 왜곡, 날조한 한국사의 내용을 그</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대로 교육하고 있다. 반면에 중공은 1983년 이후 우리 선조들이 이룩해낸 ‘홍산문</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화’를 본격적으로 발굴작업에 착수했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홍산문화(문명)는 세계4대문명의 하나인 황하문명보다 무려 1000여년이나 앞선</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인류 최초의 문명임이 밝혀졌다. 이로 말미암아 중국인들의 문화적 우월감은 손상</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을 입게 됐던 것이다. 또 2000년 초 세계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져 중공의 공산체제</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가 위협을 당하자, 이 틈을 타 중공은 자국내 55개 소수민족들이 분리독립운동을</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일으킬 것을 우려하여 ‘속지주의’와 ‘신중화주의’ 사관에 의해 중공내 소수민족의</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역사와 문화를 말살, 전부 중국화하는 역사만행을 저지르고, 중국의 새 政體(polity)</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론인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정립해 갔다. 이로 말미암아 20세기말부터 동북아</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에서는 중국, 한국, 일본 3국간에 역사전쟁이 첨예화되고 있는 실정이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이러한 중차대한 역사전쟁의 시점에서 국내의 주류사학자들은 중공의 한국 상고사</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훼손과 왜곡을 지탄하고 우리 역사를 지켜내야 마땅하거늘, 그러기는커녕 여전히 구</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태의연한 일제 식민사관과 慕華사관에 젖어 있다. 특히 그들은 국내 재야사학자들이</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국사찾기협의회’. ‘대한史郞’, ‘한배달’, ‘세계환단학회’, ‘역사의병대’, ‘한사모’(=</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한뿌리사랑세계모임’) 및 ‘미사협’(=‘미래로 가는 바른역사협의회’) 등의 역사연구</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카르텔을 형성하여 일제 식민사관의 잔재를 배격하고, 중공의 동북공정과 요하문명</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론의 허구를 비판하는 역사연구태도를 비난하고 있고, 심지어 땅덩어리만 크면 최고</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냐?, 과거의 위대한 조선의 환상에 사로잡혀 뭐하자는거냐?, 하고 비아냥거리면서</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재야사학자들을 ‘사이비’ 역사학자나 ‘파시스트’ 역사학자라고 비난하고 있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이에 본고에서는 이런 기성 강당시학자들의 옹졸하고 그릇된 역사연구태도를 비</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판하고, 중국과 일본의 한국상고~고대사 말살에 맞서 한국의 올바른 역사정립을</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위해, 한국의 대륙사관의 실증적 사료들을 담고 있는 중국 문헌들과 한국의</span></p><div><br></div><div>* 다운로드:&nbsp;<a target="_blank" href="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182" style="font-size: 11pt;">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182</a>&nbsp;(로그인 필요)&nbsp;</div><div><br></div><div><br></div><p><br></p>]]></description>
			<link>https://www.hwandangogi.or.kr/?r=hwan&amp;m=bbs&amp;bid=hwan09&amp;uid=22906</link>
			<dc:creator>환단스토리</dc:creator>
			<category><![CDATA[전문 자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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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04 Jul 2020 15:33:43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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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환단학회] 桓檀古記의 歷史性과 史學史的 意義 (이덕일)</title>
			<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size: 14.6667px;">『환단고기』는 1979년 공개되자마자 위서 논쟁에 휩싸였다. 『환단고기』</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를 위서로 몬 것은 주로 대학 강단에 서는 학자들이었다. 이들의 논리는 당시까지의</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연구결과와 『환단고기』의 내용이 다르다는 이유로 위서로 몰았다. 『환단고기』 위서</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론은 시기에 집중되어 있는데, 하나는 1979년 공개 당시에 만들어진 위서라는 것이</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다. 다른 하나는 『환단고기』 서문에서 간행연도라고 밝힌 1911년 당시 만들어진</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위서라는 것이다. 심지어 『환단고기』를 간행한 계연수가 가짜라는 주장도 있었지만</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첫째 『환단고기』가 1979년 공개 당시 만들어진 위서라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자.</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환단고기』의 주요 내용들은 1920년대 ????개벽』에 이미 실려 있던 내용들이다. 또한</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여러 독립운동가들은 『환단고기』의 주요 내용들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일제강점</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기 때 여러 문헌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환단고기』가 1979년 당시 만들어진 위서라</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둘째 1911년에 만들어진 위서라는 주장에 대해서 살펴보자. 『환단고기』가 1911년</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에 만들어진 위서라면 그 주요 내용들은 그 이전의 어떤 책에도 나와서는 안 된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그러나 『환단고기』에 담긴 주요 내용들은 1911년 이전은 물론 조선 중기 학자들이&nbsp;</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쓴 역사서에도 찾을 수 있는 내용들이다. 『환단고기』에는 단군의 신하 팽오라는 인</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물이 나오는데 1909년의 「단군교 포명서」에 이미 같은 내용이 나온다. 또한 『환단</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고기』에는 단군의 아들 부루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이 내용은 17세기의 학자 홍만종</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이 쓴 ????동국역대총목(東國歷代總目)????과 18세기 학자인 이종휘가 쓴 ｢동사본기(東史本</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紀)｣에도 이미 나온다. 또한 『환단고기』에만 나오는 ‘어아가’라는 노래는 일제강점</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기 때 독립운동가들이 ｢단군신가(檀君神歌)｣라는 제목으로 널리 불렀던 노래다. 따라</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서 『환단고기』가 1979년이나, 1911년 만들어진 위서라는 주장은 역사학적 방법론</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에 따르면 성립될 수 없다.&nbsp;</span></p><p><br></p><div><br></div><div>* 다운로드:&nbsp;<a target="_blank" href="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176" style="font-size: 11pt;">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176</a>&nbsp;(로그인 필요)&nbsp;</div><div><br></div><div><br></div><p><br></p>]]></description>
			<link>https://www.hwandangogi.or.kr/?r=hwan&amp;m=bbs&amp;bid=hwan09&amp;uid=22905</link>
			<dc:creator>환단스토리</dc:creator>
			<category><![CDATA[전문 자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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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04 Jul 2020 15:31:3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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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환단힉회] 『환단고기』 삼일론의 사유방식의 3대 주제 -‘원방각’과 ‘진선미’와 ‘환단한’을 중심으로 (원정근)</title>
			<description><![CDATA[<p><br></p><p><span style="font-size: 14.6667px;">『환단고기』에는 진실한 고향을 그리워하는 진한 향수가 들어 있다. 왜냐하</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면 『환단고기』는 우주만물의 시원적 고향을 그 뿌리에서부터 성찰하고 그 근본적</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주려고 하는 귀향의 노래이기 때문이</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다. 우리가 『환단고기』를 논구하려는 것은 우주만물의 시원적 고향을 찾아 거슬러</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올라가 또 다른 시원의 고향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건립할 수 있는</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새로운 방안을 탐색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이런 『환단고기』의 귀향의 사유방식을</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살펴봄으로써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이 다른 사물들과 우주적 조화를 이루면서도</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독자적으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진정한 본향을 찾아보려고 한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환단고기』에는 매우 독창적인 사유방식이 들어 있다. 하나를 잡으면 셋을 포함하</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고 셋을 모으면 하나로 돌아간다는 ‘執一含三’과 ‘會三歸一’의 삼일론의 사유방식이 바</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로 그것이다. 삼일론의 사유방식은 신을 포함한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하나</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와 셋의 관계로 파악한다. 모든 생명이 본질의 측면에서는 하나이지만, 작용의 측면</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에서는 셋으로 나누어져 펼쳐진다는 말이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우리는 『환단고기』 삼일론의 사유방식을 삼일심법에 근거하여 3대 과제로 나누어</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살펴보려고 한다. 인간 삶의 근원적 가치를 이루는 ‘원방각’과 ‘진선미’와 ‘환단한’</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이다. 『환단고기』 삼일론의 3대 과제에는 하나의 중요한 특성이 들어 있다. 그것은</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三神과 三才를 삼위일체적으로 융합할 수 있는 주체로서의 인간의 위치와 역할을 강</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조한다는 점이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이 모든 존재의 통일적 주체가 될 때,</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인간을 비롯한 천지만물이 제자리에서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발현함으로</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써 진정한 삶의 고향으로 회귀한다는 사실이다.</span></p><div><br></div><div>* 다운로드:&nbsp;<a target="_blank" href="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174" style="font-size: 11pt;">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174</a>&nbsp;(로그인 필요)&nbsp;</div><div><br></div><div><br></div><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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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환단스토리</dc:creator>
			<category><![CDATA[전문 자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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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04 Jul 2020 15:30:4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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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환단학회] 원천석이 『삼성기』저자 원동중이라는 견해에 대한 연구 (노종상)</title>
			<description><![CDATA[<p><br></p><p><span style="font-size: 14.6667px;">1911년에 『환단고기』가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환단고기』에</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묶인 다섯 권의 사서 가운데『삼성기』 상·하 두 권의 저자(안함로ㆍ원동중)는 최대</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미스터리 중의 하나였다. 최근에 원동중이 '고려 말 지방지식인이자 은일의 인사'인</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원천석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 논문의 목적은 원천석의 역사인식을 밝히는 것이</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지만, 또한 『삼성기』 하권의 저자 원동중이 과연 원천석인가, 하는 점을 해명하는</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것이다. 연구방법으로서 이 논문은 뤼시엥 골드만Lucien Goldman의 ‘두 사람이</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함께 책상 들기’를 염두에 두고 있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먼저 원천석과 이암, 원천석과 범장을 비교, 검토하였다. 이암은 고려 말 수문하시</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중을 지낸 고관이다. 『단군세기』의 저자인(삽입) 그는 ‘동방 한민족의 역사를 신교</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사관神敎史觀으로 저술한, 신교사관의 정립자’다. 원천석은 여러 경로를 통해 이암과</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물론 이암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다음은 원천석과 범장을 비교, 검토하였다. 범장은 조선 건국을 반대한 두문동 72</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현 중의 한 명이다. 『북부여기』의 저자인 그는 기본적으로 유학자이지만, 우리 민족</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고유의 신교사관을 바탕에 깔고 있는 인물이다. 원천석과 범장은 벗이자 동지관계</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이다. 또한 두 사람은 『화해사전』의 공동저자로서 사상적으로 교류하고 있었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원천석은 기본적으로 유학자이다. 그는 불교와 도교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그 사</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상을 실천하였다. 그의 종교관 내지 세계관은 삼교일리론三敎一理論으로 요약될 수</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있다. 유교와 불교, 도교가 주장하는 것은 각자 다르지만 그 이치는 하나로서 같다는</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것이다. 원천석의 삼교사상三敎思想은 삼국시대 이후 전해져 내려온 우리 민족 고유</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의 신교사상을 관통해 온 사상이다. 원천석은 단군과 단군조선(고조선)의 실재를 인</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정했다. 그리고 단군조선의 이념이 『천부경』사상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역사인식</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에는 천부경사상이 기초하고 있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이암과 범장은 천보산에서 소전거사로부터 우리 상고사에 관한 비기秘記를 전해</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받았다. 이에 영향을 받은 이암은 신교사관을 바탕으로 『단군세기』를 저술하였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범장은 『북부여기』를 저술하였다. 두 사서는 『환단고기』에 나란히 묶여져 있다. 원</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천석은 두 사서는 물론 두 사서의 저자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확인된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또한 그는 ‘여러 군자들이 남겨놓은 비전秘傳'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 비전을 바탕</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으로 우리 고대사는 물론 고려시대까지를 기록한『야록野錄』을 저술했다. 학계에서</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는 이미 원천석과 원동중이 동일인물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원천석의 교유(영향)관</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계, 그가 남긴 시, 그가 남긴 구술 기록 등을 다각도로 분석한 결과,『삼성기』저자</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원동중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본고의 결론이다.</span></p><div><br></div><div>* 다운로드:&nbsp;<a target="_blank" href="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166" style="font-size: 11pt;">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166</a></div><div>(로그인 필요)&nbsp;</div><div><br></div><div><br></div><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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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환단스토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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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04 Jul 2020 15:29:2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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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환단학회] 『환단고기』 위서론 논박論駁 (유철)</title>
			<description><![CDATA[<p><br></p><p><span style="font-size: 14.6667px;">한국 고대사를 담은 사서가 거의 없는 현실에서 『환단고기』라는 책이 출판</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되고 이와 관련해서 다양한 논의가 발생했다. 대다수 국민들은 우리 상고사의 위대</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함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이유</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는 『환단고기』의 내용이 기존의 역사학계의 주장과 매우 차이가 나기 때문이었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강단사학계의 몇몇 학자들은 『환단고기』가 위서라고 주장했고, 이를 입증하는 근거</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를 마련했다. 그러나 그들의 위서론은 역사적 사실과 상식에 어긋나고 논리적 모순</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을 범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환단고기』 위서론의 논리를 비판하고 그 논리적 부</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당성을 밝히고 있다. 나아가 위서론이란 실제로 존재하는 학술적 입장이 아니라 『환</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단고기』를 부정하기 위해 만들어낸 조작설이며 허구임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도 이 논문은 위서론자들의 논리를 그들의 주장 내에서 비판하고, 그들의 주장을 바</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탕으로 해서 위서론이 어떤 가능한 학문적 주장이 아니라 허구적 내용을 담은 허구</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의 논리임을 입증한 데에 그 의의가 있다.</span></p><div><br></div><div>* 다운로드:&nbsp;</div><div><a target="_blank" href="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167">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167</a><br></div><div>(로그인 필요)&nbsp;</div><div><br></div><div><br></div><div><br></div><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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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환단스토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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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04 Jul 2020 15:28:4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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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환단학회] 환단고기 진서고(Ⅱ) (윤창렬)</title>
			<description><![CDATA[<p><br></p><p><span style="font-size: 14.6667px;">환단고기, 단군릉, 松壤, 誓效詞, 신지비사, 범금팔조, 팔조금법, 팔조교,</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成湯, 狄人, 獯O, 薰育, 黎, 藍國</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환단고기』는 우리민족의 9천년의 역사와 환국, 배달, 단군조선, 북부여,</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고구려, 대진국, 고려로 이어지는 국통맥을 전해주는 유일한 사서이다. 또한 한민족</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의 뿌리역사뿐만 아니라 우리민족의 신앙, 사상, 철학, 문화까지를 알려주는 寶書이</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그러나 『환단고기』가 이 세상에 출현한지 10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僞書논쟁에 휘말려 그 진가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환단고기가 眞書로</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인정받고 正史로 자리 잡는 그날까지 『환단고기』 내용의 진실성과 정확성을 객관적</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으로 증명하는 작업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첫째, 북한에서 1993년 발굴하고 1994년 복원한 강동군 대박산에 있는 단군릉은</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조선시대 사서인 『조선왕조실록』, 『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미수기언』, 「동</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사강목」, 「연려실기술」 등에 기록되어 있는 遺蹟으로 결코 북한에서 조작한 무덤이</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아니다. 『환단고기』에서는 5세단군 丘乙이 “風流江을 거쳐 松壤에 이르러 병을 얻어</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붕어하시자 大博山에 장사지냈다”고 하였다. 여기서 風流江은 강동읍의 동북쪽을</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흐르는 沸流江이고 松壤은 江東의 古號이고 지금도 이 산을 大朴山이라 부르고 있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우리는 『환단고기』를 통해 북한에서 발굴 복원한 단군릉은 5세단군 丘乙의 무덤이</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확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둘째, 『삼국유사』, 『고려사』의 김위제전, 『조선왕조실록』의 「세조실록」, 『성호사</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설』 등에 단군조선 때부터 전해오는 신지비사가 언급되어 있고 특히 김위제는 신지</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비사의 10句를 인용하여 南京을 세울 것을 건의하고 있다. 『환단고기』에는 6대 단군</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달문 때 神誌發理가 常春의 九月山 天祭 때 誓效詞를 짓는데 이것이 神誌秘詞이며 36</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句의 全文이 기술되어 있다. 신지비사의 全文과 지은이, 지은장소, 지은목적 등을</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기록하고 있는 환단고기는 한민족의 정신사를 복원할 수 있는 진서 중의 진서이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셋째, 유향이 지은 『설원』에는 商의 湯이 夏의 桀을 멸망시키는데 九夷의 협조를 받</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환단고기』에는 夏商교체기에 단군조선에서 邑借 末良과 蚩</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雲出 등의 장수를 보내 成湯을 도와 桀을 멸망시켰다는 자세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다. 『환단고기』는 『說苑』의 내용과 동일하면서도 더욱 구체적 이어서 내용에 대한</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신뢰를 더해주고 있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넷째, 『한서』 「지리지」에는 조선에 犯禁八條(팔조금법)가 있다고 하면서 3조목만</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는 箕子가 조선에 와서 八條敎를</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지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환단고기』에는 22대 색불루단군이 단군조선의</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제2왕조시대를 열고 4년 己亥(BCE 1282)에 禁八條를 반포했다고 하면서 8조의 全</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文을 기술하고 있다. 이로 보건대 환단고기는 우리 역사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왜곡된 사실을 바로잡을 수 있는 眞書가 됨을 확인할 수 있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다섯째, 『시경』, 『맹자』, 『史記』의 「周本紀」에서는 文王의 할아버지 古公亶父가 狄人</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獯鬻, 薰育)의 침입을 받아 邠땅에서 岐山下로 이주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지만 狄人</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의 실체에 대해서는 밝히지 못하고 있다. 『환단고기』에서는 BCE 1280년 단군조선</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의 제후국인 藍國君이 黎巴達을 시켜 邠岐지역으로 진격하게 하여 그곳 유민들과</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연합하여 黎나라를 세웠다고 하였다. 이를 보면 狄人(獯鬻, 薰育)은 단군조선의 한</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갈레가 됨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처럼 『환단고기』는 우리민족 역사의 공백을 메</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꾸어 줄 뿐만 아니라 중국역사의 비밀까지도 밝혀주는 소중한 史書라고 말할 수 있</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다.</span></p><div><br></div><div>* 다운로드:&nbsp;<a target="_blank" href="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168" style="font-size: 11pt;">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168</a>&nbsp;(로그인 필요)&nbsp;</div><div><br></div><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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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환단스토리</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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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환단학회] 삼성기 저자 안함로에 관한 고찰 (노종상)</title>
			<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이 논문은 우리 상고사를 기록한 '삼성기三聖記'의 저자 안함로安含老에 대</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한 연구이다. '삼성기'는 1911년 만주 관전현寬甸縣에서 독립운동가 계연수桂延壽</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에 의해 간행된 『환단고기』를 통해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다섯 편의 사서로 이루어</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져 있는 『환단고기』의 첫 권이 '삼성기전'이다. '삼성기전'은 상, 하편으로 구성되</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어 있다. 안함로는 '삼성기' 상권의 저자이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본고의 연구목적은 안함로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이다. 안함로는 '삼성기'저자로</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서 그 모습을 드러낸 이후 일부의 주장에 의해 의혹의 대상이 되어왔다. 따라서 본</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연구는 일차적으로 안함로에 대한 의혹을 해명하는 작업으로 이루어졌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본고가 연구목적을 위해 주목하는 것은 『삼국유사』 고조선 조에 인용되고 있는 『고</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기』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기존 사학계에서 우리 상고사를 논</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의할 때 가장 먼저, 그리고 반드시 언급되는 것이 바로 이 기록이기 때문이다. 다른</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하나는 『고기』와 '삼성기'가 우리 상고사를 기록한 사서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다. 마지막으로 『고기』가 '삼성기' 저자 안함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실마리가 될</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br></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본고는 기존 사학계의 연구 성과는 물론 각종 문헌자료를 통해 다양한 고증을 시도</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하였다. 논의 결과 『고기』가 『삼한고기』 혹은 『해동고기』의 약칭으로서 동일서책임</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삼한고기』의 저자가 신라의 고승 안홍安弘(→안함安含)이라</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는 문헌자료를 검증하였다. 마지막으로 '삼성기'가 『고기』의 내용과 일치한다는 내</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용을 논의하였다. 따라서 본고는 '삼성기'의 저자 안함로가 바로 안함(→안홍)이라</span></p><p><span style="font-size: 14.6667px;">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span></p><div><br></div><div>다운로드:&nbsp;<a target="_blank" href="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158" style="font-size: 11pt;">http://www.hwandan.org/?c=publications/papersearch&amp;sort=no&amp;mod=paperview&amp;puid=158</a>&nbsp;(로그인 필요)&nbsp;</div><div><br></div><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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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환단스토리</dc:creator>
			<category><![CDATA[전문 자료]]></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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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ate>Sat, 04 Jul 2020 15:26:33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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