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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한사군의 핵심 코드 ‘갈석산’ 위치 왜곡

환단스토리 | 2012.07.16 20:31 | 조회 9579

만리장성,한사군의 핵심 코드 ‘갈석산’ 위치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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碣石,古山名。在河北省昌黎县西北 东临碣石 <강희자전>

갈석(碣石)이란 지명은 중국의 가장 오랜 역사책이라 할 수 있는 《상서(尙書)·우공편(禹貢篇)》에 처음 등장한 지명인데 그 지명이 현재 어디인가를 둘러싸고 여러 설이 난무하고 있다. 그 가운데 서진시대 때 쓰여진 것으로 보여지는 《태강삼년지기(太康三年地記)》에 뜬금없이 갈석은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이 있으며 바로 이곳이 진장성(秦長城)의 기점이라고 주석을 한 뒤로부터 한반도에 있지도 않은 갈석이 등장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일제시대 어용학자 도엽암길(稻葉岩吉 사진)이 《사학잡지(史學雜志)》에 《진장성동단고(秦長城東端考)》라는 논문을 기고하여, 한반도의 황해도 수안이 낙랑군 수성현으로 비정된다고 하였고, 이병도 선생도 그의 《한국고대사연구(韓國古代史硏究)》에서 "수성현은 수안으로 비정하고 싶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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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석산 <1> 2011-07-18 [중앙일보 이덕일]

중국 하북성(河北省) 창려현(昌黎縣) 갈석산(碣石山)에 올랐다. 이 일대에서는 가장 높은 해발 695m의 바위 많은 양산(陽山)이다. 여러 차례 이 산에 오른 것은 동북공정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한(漢)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세웠다는 낙랑군 수성현에 있었다는 산이다. 『사기(史記)』 『하본기(夏本紀)』 '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에는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는데 (만리)장성의 기점이다(樂浪遂城縣,有碣石山,長城所起)”라는 기록이 있다. 갈석산이 있는 낙랑군 수성현이 만리장성의 동쪽 기점이란 뜻이다. 낙랑군 수성현의 위치를 현재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주류 사학은 물론 한국의 주류 사학까지 황해도 수안(遂安)으로 비정한다. 식민사학자인 이나바 이와기치(稻葉岩吉)가 일제시대 『사학잡지(史學雜誌)』에 『진나라 장성의 동쪽 끝 및 왕험성 고(秦長城東端及王險城考)』라는 논고에서 “낙랑군 수성현은 곧 지금의 수안”이라며 “진나라 장성의 동쪽 끝은 지금의 조선 황해도 수안의 경계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 것이 지금껏 정설(定說)로 행세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황해도 수안에 갈석산이 없자 『동국여지승람』 수안군 산천(山川)조에 나오는 '요동산(遼東山)'을 갈석산이라고 우겼다. 중국의 공식 견해를 대변하는 『중국역사지도집』(사회과학원)은 이에 따라 낙랑군 수성현을 평양 부근에 표기했다. 중국 동북공정과 일제 식민사학은 '침략주의'라는 한 란(卵)에서 나온 쌍둥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중국역사지도집』은 갈석산은 황해도가 아니라 하북성 창려현 부근에 표기해 놓았다. 이 한 가지 사실로 '한강 이북이 중국의 역사 강역이었다'는 중국 동북공정의 핵심 논리는 파탄났다.

중국은 왜 갈석산을 황해도에 그려놓지 못했을까. 갈석산은 우리로 치면 설악산 정도 되는 유명한 산이어서 일반인도 그 허구성을 쉽게 눈치 채기 때문이다. 아홉 명의 황제가 올라서 구등황제산(九登皇帝山)으로도 불린다. 고조선을 침략하기 전 한무제(漢武帝), 고구려를 침략하기 전 수양제(隋煬帝)·당태종(唐太宗)이 모두 이 산에 올라 전의를 불태웠다. 갈석산이 황해도 수안이라면 이들은 고조선과 고구려를 공격하기 전에 남쪽 황해도를 먼저 방문해 올랐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찌 허망하지 않겠는가. 역사왜곡이란 이렇게 허망한 것이다. 더 허망한 것은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아직껏 정설로 떠받드는 우리 학계 일부의 역사 의식 빈곤이다.


갈석산 <2> 2011-07-20 00[중앙일보 이덕일]

한사군(漢四郡) 중 낙랑군의 위치에 대해 『사기(史記)』 '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는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다(樂浪遂城縣,有碣石山)”고 전하고 있다. 그 갈석산은 현재 하북성(河北省) 창려현(昌黎縣)에 있다. 일제 식민사학자들과 그 후예들은 아직도 황해도 수안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기 207년 위(魏)나라 조조(曹操)는 유성(柳城)을 정벌하고 돌아가는 길에 갈석산에 올라 “동쪽 갈석산에 임해, 푸른 바다를 바라보노라(東臨碣石 以觀滄海)”라는 시를 남겼다. 조조를 '뛰어난 정치가·군사가·시인'으로 재평가했던 모택동(毛澤東)이 좋아했던 시인데, 현재도 갈석산 중턱에 음각되어 있다. 시 중의 '동(東)'자는 동쪽 끝이란 의미였다.

 『사기(史記)』는 진시황의 통일 제국에 대해 “그 땅이 동쪽으로는 바다와 고조선까지 이르렀다(地東至海暨朝鮮)”고 말했다. 이때의 고조선은 어디쯤인가? 한(漢)나라 유안(劉安)이 지은 『회남자(淮南子)』 '시측훈(時則訓)'에는 “동방의 끝 갈석산으로부터 고조선을 지난다(東方之極,自碣石山過朝鮮)”고 설명한다. 진시황을 비롯해 아홉 명의 중국 황제가 갈석산에 올랐던 이유가 고조선과 국경 부근이기 때문임을 말해준다.

 조조가 바라본 창해가 지금 원유 유출로 시끄러운 발해(渤海)다. 근래 중국 쪽 사람들을 만나보면 갈석산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음을 느낄 수 있다. 필자 등이 쓴 책을 보고 하북성 창려현에 있는 갈석산 때문에 '한강 이북은 중국의 역사영토였다'는 동북공정 핵심 논리가 무너지는 것은 물론 갈석산 서쪽의 광대한 영토가 되레 '한국 역사영토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선비족이 세운 북위(北魏)의 정사인 『북사(北史)』 '고종 문성제(高宗文成帝)' 태안(太安) 4년(458)조는 문성제 탁발준(拓拔濬)이 동쪽으로 순행해 요서(遼西) 황산궁(黃山宮)에서 연회하고 다시 “갈석산에 올라 창해를 바라보고 산 위에서 군신들과 큰 연회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다.

갈석산이 황해도 수안이라면 강대했던 고구려 장수왕은 재위 46년(458) 문성제 일행이 만주와 한반도를 지나 황해도까지 가는 것을 두 눈 뜨고 구경만 했다는 뜻이 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북사』는 문성제가 잔치하면서 “갈석산의 이름을 낙유산이라고 바꿨다(改碣石山爲樂遊山)”고 전한다. 중국이 갈석산을 없앨 수 없다면 낙유산으로 이름을 바꿀지도 모른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일이다.

대덕 18년 병신(단기 2909,576)년에 열제께서 대장 온달을 거느리고 가서 갈석산과 배찰산을 치고 추격하여 유림관에 이르러 북주를 크게 깨뜨리셨다. 이로서 유림진 동쪽 당이 모두 평정되었다 유립은 지금의 산서 경계이다. (고구려국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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