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학회] 원천석이 『삼성기』저자 원동중이라는 견해에 대한 연구 (노종상)
1911년에 『환단고기』가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환단고기』에
묶인 다섯 권의 사서 가운데『삼성기』 상·하 두 권의 저자(안함로ㆍ원동중)는 최대
미스터리 중의 하나였다. 최근에 원동중이 '고려 말 지방지식인이자 은일의 인사'인
원천석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 논문의 목적은 원천석의 역사인식을 밝히는 것이
지만, 또한 『삼성기』 하권의 저자 원동중이 과연 원천석인가, 하는 점을 해명하는
것이다. 연구방법으로서 이 논문은 뤼시엥 골드만Lucien Goldman의 ‘두 사람이
함께 책상 들기’를 염두에 두고 있다.
먼저 원천석과 이암, 원천석과 범장을 비교, 검토하였다. 이암은 고려 말 수문하시
중을 지낸 고관이다. 『단군세기』의 저자인(삽입) 그는 ‘동방 한민족의 역사를 신교
사관神敎史觀으로 저술한, 신교사관의 정립자’다. 원천석은 여러 경로를 통해 이암과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물론 이암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다음은 원천석과 범장을 비교, 검토하였다. 범장은 조선 건국을 반대한 두문동 72
현 중의 한 명이다. 『북부여기』의 저자인 그는 기본적으로 유학자이지만, 우리 민족
고유의 신교사관을 바탕에 깔고 있는 인물이다. 원천석과 범장은 벗이자 동지관계
이다. 또한 두 사람은 『화해사전』의 공동저자로서 사상적으로 교류하고 있었다.
원천석은 기본적으로 유학자이다. 그는 불교와 도교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그 사
상을 실천하였다. 그의 종교관 내지 세계관은 삼교일리론三敎一理論으로 요약될 수
있다. 유교와 불교, 도교가 주장하는 것은 각자 다르지만 그 이치는 하나로서 같다는
것이다. 원천석의 삼교사상三敎思想은 삼국시대 이후 전해져 내려온 우리 민족 고유
의 신교사상을 관통해 온 사상이다. 원천석은 단군과 단군조선(고조선)의 실재를 인
정했다. 그리고 단군조선의 이념이 『천부경』사상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역사인식
에는 천부경사상이 기초하고 있다.
이암과 범장은 천보산에서 소전거사로부터 우리 상고사에 관한 비기秘記를 전해
받았다. 이에 영향을 받은 이암은 신교사관을 바탕으로 『단군세기』를 저술하였다.
범장은 『북부여기』를 저술하였다. 두 사서는 『환단고기』에 나란히 묶여져 있다. 원
천석은 두 사서는 물론 두 사서의 저자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그는 ‘여러 군자들이 남겨놓은 비전秘傳'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 비전을 바탕
으로 우리 고대사는 물론 고려시대까지를 기록한『야록野錄』을 저술했다. 학계에서
는 이미 원천석과 원동중이 동일인물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원천석의 교유(영향)관
계, 그가 남긴 시, 그가 남긴 구술 기록 등을 다각도로 분석한 결과,『삼성기』저자
원동중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본고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