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단학회] 桓檀古記의 歷史性과 史學史的 意義 (이덕일)
『환단고기』는 1979년 공개되자마자 위서 논쟁에 휩싸였다. 『환단고기』
를 위서로 몬 것은 주로 대학 강단에 서는 학자들이었다. 이들의 논리는 당시까지의
연구결과와 『환단고기』의 내용이 다르다는 이유로 위서로 몰았다. 『환단고기』 위서
론은 시기에 집중되어 있는데, 하나는 1979년 공개 당시에 만들어진 위서라는 것이
다. 다른 하나는 『환단고기』 서문에서 간행연도라고 밝힌 1911년 당시 만들어진
위서라는 것이다. 심지어 『환단고기』를 간행한 계연수가 가짜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첫째 『환단고기』가 1979년 공개 당시 만들어진 위서라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자.
『환단고기』의 주요 내용들은 1920년대 ????개벽』에 이미 실려 있던 내용들이다. 또한
여러 독립운동가들은 『환단고기』의 주요 내용들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일제강점
기 때 여러 문헌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환단고기』가 1979년 당시 만들어진 위서라
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둘째 1911년에 만들어진 위서라는 주장에 대해서 살펴보자. 『환단고기』가 1911년
에 만들어진 위서라면 그 주요 내용들은 그 이전의 어떤 책에도 나와서는 안 된다.
그러나 『환단고기』에 담긴 주요 내용들은 1911년 이전은 물론 조선 중기 학자들이
쓴 역사서에도 찾을 수 있는 내용들이다. 『환단고기』에는 단군의 신하 팽오라는 인
물이 나오는데 1909년의 「단군교 포명서」에 이미 같은 내용이 나온다. 또한 『환단
고기』에는 단군의 아들 부루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이 내용은 17세기의 학자 홍만종
이 쓴 ????동국역대총목(東國歷代總目)????과 18세기 학자인 이종휘가 쓴 「동사본기(東史本
紀)」에도 이미 나온다. 또한 『환단고기』에만 나오는 ‘어아가’라는 노래는 일제강점
기 때 독립운동가들이 「단군신가(檀君神歌)」라는 제목으로 널리 불렀던 노래다. 따라
서 『환단고기』가 1979년이나, 1911년 만들어진 위서라는 주장은 역사학적 방법론
에 따르면 성립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