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三神신앙과 삼신三神상제님
이해영/ 서울 관악도장
나는 어디서 태어났나
요사이엔 아기를 낳을 때면 산부인과를 찾지만, 예전엔 동네에서 출산을 도운 경험이 많은 할머니를 집으로 불러들여 아이를 낳는 경우가 흔했다. 그런 할머니를 우리 민족은‘삼신할미’라고 불러왔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어느 정도 지각이 생기면 묻는 질문이 있다. 자기가 태어난 곳, 즉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물어보는 거였다. 난감해진 부모들은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둘러대 아이의 울음을 지어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는 에피소드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우리들의 심성과 인류문화의 원류를 나타내는 코드가 있다. 바로‘삼신할미’또는 ‘삼신(三神)신앙’이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를 낳는 것은 산모의 목숨을 건 일대 사건이다. 예전엔 아이를 낳다가 산모들이 죽거나, 전염병 등으로 영아들도 목숨을 잃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하기에 아이를 점지 받고 태어나고 제 역할을 할 때까지 지켜주고 길러주며 수호해 주는 신(神)을 우리 조상들은 삼신(三神)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즉 자식을 태워주고 낳고 길러주는 세 가지 일을 한다 해서 삼신일체신(三神一體神)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생명을 태워주고 낳고 길러주는 삼신三神
서산대사가 지었다는 불가의「부모은중경」을 보면 여자는 진한 피 서 말 석 되를 흘려가며 아이를 낳는다고 한다. 그만큼 한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은 매우 힘들면서도 그 어미의 생사를 건 노고를 일깨우게 해준다. 그래서 우리 조상님들은 산모와 어린 아이를 지켜주는 신으로 삼신할머니에 대한 기원(祈願)과 모시는 신앙이 있었다.
삼신할머니를 모시는 사당은 명산대천일 수도 있지만 바로 우리네 살림집 안방인 경우도 많았다. 지방마다 약간 차이는 있지만, 대개 대청 대들보 밑에 성주신을, 안방 아랫목에 삼신을 모셨다. 필자도 아이가 태어나면 3·7일(21일)을 미역국과 메를 지어 삼신께 정성 올리는 할머니의 모습과, 삼신과 칠성님께 새벽녘에 청수 올리며 기도드리는 외할머니의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에 무척 익숙한 우리 문화의 모습이다. 즉 삼신할머니는 삼신이라는 인격적인 신의 모습에, 할머니라고 하는 넉넉함과 친근하고 자애로움의 이미지가 더해져 있다.
우리와 함께한 영적인 수, 삼三
그런데 여기서 왜 숫자‘삼(三)’이냐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수가 뭐냐 물어본다면 대부분‘3’이라고 말한다.
이에 우실하 한국항공대교수는 북방 수렵문화의 전통을 나타내는 3수는 신(神) 중심적이고 초월적이고 탈세간적이며 영적 세계를 중시하는 3수 분화의 세계관이라 했다. 이는 다른 여러 요인들과 어울리면서 삼재론, 삼신사상, 신선도가사상으로 전개된다.1)
안경전 증산도 종정님의 저서『개벽 실제상황』을 보면 숫자 3은 양(1)과 음(2)의 결합으로 이루어져‘만물의 화생’을 상징한다고 한다. 3이라는 수는 음양의 조화수인 1과 2가 함께 창조해낸 생명의 수, 완전한 존재를 뜻한다. 방위로는 해가 떠오르는 동방, 생명, 봄으로 나타내며 서양에서도 실제적인 수의 시작을 3으로 본다.
우리 문화 속의 삼三수
우리 문화에서도 홍어는 삼합으로 먹어야 제 맛이고, 가위바위보도 삼세판은 해야 하고 여러 사람이 자주하는 게임인 3·6·9게임도 역시 3수와 연결된다. 음양의 이치로 순환 무궁하는 태극을 우리는 삼태극의 모습으로 그려 경복궁 강녕전, 창경궁 명정문, 사찰 대웅전, 서낭당 문, 향교 외삼문, 소고, 북 등에서 너무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유·불·선의 표지 위에 우리 고유의 삼신신앙을 짙게 바탕에 깔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 민족에게는 가톨릭의 성부 성자 성신의 삼위일체설과 불가의 법신 응신 보신불의 삼불설의 원조 격에 해당하는 동방의 천일(天一) 지일(地一)태일(太一)의 삼신일체신관(三神一體神觀)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 고구려 천손문화의 상징인 삼족오도 다리가 셋이다. 삼재충을 다 잡아먹어 버린다는 세 머리 매2)나 아이를 낳았을 때 금줄에 다는 고추나 숯의 숫자도 세 개다. 숫자 삼과 얽힌 우리 민족의 문화모습을 찾는 것은 그 예가 끝이 없을 정도다. 우리는 3이라는 수, 더 나아가 삼신의 치마폭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그 이치대로 살다가 그 품으로 돌아가는 그런 민족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관심을 삼신할머니에게 돌려보면, 삼신의 역할에 비견되는 게 이웃 중국에는 낭낭신이나 송자관음, 일본의 신사에서는 고야스가미(子安神) 등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웃 여러 나라들은 그들에 해당하는 신에게 빌기만 할 뿐 점지는 받지 못한다고 한다. 오직 우리 삼신할머니 신앙에서만 아이를 점지해 준다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삼신신앙과 삼신상제님
삼신할머니로 대변되는 삼신(三神)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분명 우리 문화와 심성 속에 녹아 숨쉬는 이 문화의 원류는 과연 무엇일까?
사실 삼신이라는 단어는 우리 역사 속에서 꽤 많이 등장한다. 우리의 상고 역사서『환단고기』「태백일사」의‘삼신오제본기’에 나오는 아래의 구절들은 삼신에 대한 시원적 이해를 돕고 있다.
우주의 기원에 삼신이 계셨고 이는 곧 상제님으로서 주체는 일신이시니 각각 신이 있는 것이 아니고 작용만 삼신이다. 삼신은 만물을 끌어내시고 전 세계를 통치하실 가늠할 수 없는 크나큰 지능을 가지셨더라. (上界却有三神卽一上帝主體則爲一神非各有神也作用則三神也三神有引出萬物統治全世界之無量智能)
삼신은 영구한 생명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인물이 다같이 삼신에서 나왔으며 삼신을 일원의 조상이라고 하였다. (夫三神者永久生命之根本也故曰人物同出於三神爲一源之祖也)
아이를 낳는 것을 축하하여 삼신이라 하고 벼가 익은 것을 축하하여 업산이라고 한다. (祝兒之生曰三神祝禾之熟曰業山)
수양제의 백만 대군을 수장시킨 을지문덕 장군도 산에 들어가 도를 닦다 삼신상제님을 뵙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나, 『환단고기』「태백일사」의‘고구려본기’에서 고구려 제19대 열제이신 광개토태왕께서 스스로 말을 타고 순행(巡行)하여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에 올라 삼신에게 천제를 올렸다는 기록 등을 보면, 민족사적 위기에서 민족을 구한 인물들 중에는 삼신, 삼신상제님, 상제님에게 기도하여 그 영적인 힘으로 민족을 구원한 경우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을 보면, 예로부터 고을마다 소도(蘇塗)가 있어 삼신상제님께 제사를 지내면 북치고 나팔을 불어 잔치가 벌어졌는데 백성들은 저마다 자기 집 안의 뜰에도 제단을 쌓아 새벽마다 기도를 올렸으며 먼 조상의 덕을 추모하여 자기가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으려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를 보면 삼신, 삼신상제님, 삼신신앙은 우리 민족에 태생적으로 각인된 신앙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 고유신앙을 삼신숭배로 규정하면서도 이를 환인·환웅·단군의 국조신앙으로만 보았다. 이는 삼신신앙의 한 단면만을 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안경전 종정님의 저서『개벽 실제상황』에 나오는 삼신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정리부분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삼신은 크게 네 가지 의미를 지닌다.3)
첫째, 위에서 살펴본 삼신할머니로 대변되는 각 성씨의 선령신들이다. 조상님들은 자손을 직접적으로 낳아 주시고 길러주시고 지금까지 끊임없는 기도와 정성으로 보호해주는 제1의 보호성신이다. 그래서 증산상제님께서는“조상을 박대하면 조상도 자손을 버린다. 너희는 선령을 찾은 연후에 나를 찾으라”(道典7:19:2)고 하셨다.
둘째로는 생명을 낳아주는 자연의 삼신을 대행하여 자손을 타 내리는 역할을 하는 삼신이 있다면, 얼굴 없는 자연신으로 실제 만물의 생명의 근원으로 작용하는 대자연의 삼신이 계시다. 우주에 충만한 원신(元神)으로 태시(太始)에 하늘과 땅과 인간이 모두 삼신의 조화에 의해 태어났고 우리 몸속에 그 조화성이 그대로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삼신께서 천지만물을 낳으시니라” (道典1:1:3)
셋째는 자연의 삼신과 하나 되어 천상보좌에서 우주자연 질서와 인간 역사를 총체적으로 다스리는 인격신으로 존재하는 삼신상제님을 말하는 것이다. 삼신상제는 삼신일체상제의 줄임말로 대자연의 삼신과 한 몸이 되어 천지 만물을 다스리시는 상제님이라는 뜻이다. 역사기록에서 보이는 상제님, 삼신님께 기도할 때 그인격적 주체를 뜻하는 것 같다.
“이 삼신과 하나 되어 천상의 호천금궐에서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동방의 땅에 살아온 조선의 백성들은 아득한 예로부터 삼신상제 삼신하느님, 상제님이라 불러 왔나니 상제는 온 우주의 주재자요 통치자 하느님이라.”(道典1:1:4~5)
넷째로는 대자연 삼신과 삼신상제님의 도를 민족의 역사정신으로 열어주신 동방시원역사의 우리 국조삼신이신 환인천제-환웅천왕-단군성조님을 일컫는 말이다.
이상과 같이 삼신신앙, 삼신문화의 원류에 들어가보면 우리는 동서 문화의 뿌리를 만나게 된다. 바로 고조선 이전의 상고시대부터 이어져온 신교(神敎) 문화이다. 신교문화는 삼신, 삼신상제님을 신앙하는 인류문화의 원류이며 보편신앙이다.
“동방의 조선은 본래 신교(神敎)의 종주국으로 상제님과 천지신명을 함께 받들어 온, 인류 제사 문화의 본고향이니라.”(道典1:1:6)
“신교(神敎)는 본래 뭇 종교의 뿌리로 동방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 속에 그 도맥(道脈)이 면면히 이어져 왔나니…”(1:8:1)
우리에게 삼신신앙이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토속신앙으로만 여겼던 민속삼신, 무속에서 이야기하는 삼신, 또는 학문적인 삼신, 관념 속의 삼신이나 삼신할머니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그 공통분모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신교(神敎)’문화이다. 이 신교문화의 고갱이가 삼신상제님 신앙, 상제님 신앙이다. 상제님께 천제를 지내는 문화를 통해서 정치적 사상적 통합과 경제적인 흐름, 문화 예술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한 것이다.
즉 동방의 제왕들은 제위(帝位)에 오르면 상제님과 백성들을 이어주는 중매자 역할을 하며 백성과 나라의 흥왕함에 대해 기원했다. 대자연의 도를 터득해 그 덕으로 천하를 다스리고 상제님의 뜻이 담긴 경전을 통해 하늘의 가르침을 내려주었다. 이는 백성들의 생활문화 자체가 되었는데, 신교문화의 제천의식은 지금의 제사의례로 내려오고 있다. 이는 조상신을 비롯해 수 많은 천지신명들을 극진히 대접해온 문화이다.
여러 다양한 신명들을 모시는 과정에서 우리 심성에는 포용성과 조화성이 담겨지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전혀 색달라 보이고 이질적이어도, 하나로 포용해 완전히 새로운 창조성을 이끌어내는 주체적이고 낙천적인 우리 문화의 원류를 빚어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문화의 속살에는 삼신할머니로 대변할 수 있는 삼신문화, 삼신상제님에 대한 신앙문화가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 그러기에 잃어버린 우리 정신문화를 찾는 것은 내가 태어난 근원, 문화적 원시반본(原始返本)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1 이와 반해 2수 분화의 세계관은 음양론, 주역(周易)사상(思想), 성리학의 이기론 등으로 전개되고 이는 현세적, 합리적, 인간중심적 특성을 지니고 이 3수 분화의 세계관과 2수 분화 세계관은 우리 민족의 주요 활동지인 산동반도와 요동반도를 잇는 발해안 인근 지역에서 습합되고 완성되어 음양오행론으로 전개된다.
2 머리 셋 달린 매는 무속인들의 부적에 자주 등장한다.
3) 글의 전개상『개벽 실제상황』에 나와 있는 삼신의 네 가지 의미를 순서를 바꾸었다.
〈참고문헌〉
증산도도전편찬위원회,『 道典』, 대원출판, 2003
안경전,『 개벽 실제상황』, 대원출판, 2005
우실하,『 전통문화의 구성원리』, 소나무, 1999
이유립,『 대배달민족사』(환단고기 정해), 고려가, 1984
임승국,『 한단고기』, 정신세계사, 1986
조자용,『 삼신민고』, 가나아트, 1995
한영우,『 다시찾는 우리역사』1, 경세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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