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의 세상, 미륵의 일꾼을 꿈꾸며
“비나이다 비나이다. 미륵님! 칠성님!”
이것은 우리 부모, 조상 세대들이 우리들을 위해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 믿음으로 두손 닳도록 간절히 하늘의 신(神)에게 빌며 기도했던 우리 민족의 전통적 신앙문화이다.
우리나라 시골의 동네, 길거리를 걷다보면 사람 비슷한, 투박하지만 정겨운 모습의 석상(石象)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마을사람들은 이들을‘미륵님’이라 부르며, 그 앞에 제사도 지내고 두손 모아 기도하며 득남(得男), 치병(治病), 부귀(富貴) 등의 소원을 기원했다.
이런 서민적인 미륵상 외에도 법주사의 거대한 미륵불상이나 은진미륵보살처럼 용화낙원의 새 세상을 열어주기 위해 인간세상을 굽어보고 있는 듯한 모습의 미륵불상도 있다.
뿐만 아니라 로댕의‘생각하는 사람’조각처럼 사색하는 미륵반가상으로는 우리나라에 국보78호, 83호와 일본 국보 1호가 있다. 이 미륵반가상의 모습을 본 서양 최고 지성인들은 한결같이‘전율을 느끼는 듯한 감동과 신성(神聖)을 접했다’고 말한다. 세계적 실존철학자 칼 야스퍼스(1883~1969) 같은 이는‘그리스 로마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의 신상(神象)에서도 볼 수 없는 완성된 인간실존과 영원한 평화의 최고 경지를 미륵상은 보여준다’라고 극찬했으며, 동서 지성인들에게 미륵은‘생각하는 부처’(Thinking Buddha)로 불린다.
불교에서는 석가 이후 3천년 뒤에 말법세상에 미륵불이 오셔서 세계인류를 구원하고, 용화낙원을 열어준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역사에서는 스스로 미륵을 자처했던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민중들의 메시아였던 미륵. 서민들은 세상이 혼란스럽고 삶이 힘겨우면 미륵이 내려와서 만드는 새로운 낙원세상을 꿈꿔왔다. 지금부터 그 미륵신앙에 관한 역사여행을 떠나보기로 하자.
어원으로 보는 미륵신앙의 기원
문헌학에 의하면, 고대 인도북부에서 발생한‘미트라(태양신)신앙’이 서기3~4세기경 동서(東西)로 퍼져서‘메시아 신앙’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4세기경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기독교의 메시아 신앙도 이때에 전래된 것이라고 한다.
미륵과 메시아의 어원을 추적해보면,‘ 미트라 → 마이트레이야 → 미륵(동방)’,‘ 미트라 → 메시아(서교)’로 변천되었다. ‘미래세상의 구세주(求世主)’라는 기독교의‘메시아’와 동방의‘미륵’의 어원이 모두‘미트라’에서 유래한다는 것은 결국 동서 인류를 구원하는 절대자 또한 한 분으로 오신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불교도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리고
동학 신도는 최수운의 갱생을 기다리나니
‘누구든지 한 사람만 오면 각기 저의 스승이라.’하여 따르리라.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 보냈느니라. (道典2:40)
‘미륵’은 용(龍)을 뜻하는 고대의 순수 우리말‘미르’,‘ 미리’와 물을 뜻하는‘므르’와 발음적으로 비슷하다.‘ 미르’,‘ 미리’에서 미래(未來)라는 말이 생겼다고 하고, 미륵은 또한‘미래불(未來佛)’이라고 한다. 동방 농경문화에서 용의 존재는 천지만물 생명의 근원인 수기(水氣)를 내려주는 신령한 존재로서의‘용(또는 용왕)신앙’을 생겨나게 하였다. 용안(龍顔), 용상(龍床), 곤룡포(袞龍袍) 등 군주와 관련된 모든 단어에‘용’을 쓰듯이, 용의 존재는 동아시아 문화에서 온 세상 사람들이 골고루 다 잘살게 되는 이상정치를 펼 성군(聖君)인 황제(天子)의 상징으로 신성시되었다.
정리해보면, 미트라-마이트레이야-미륵-미래불-메시아-용-물(수기)-황제(천자) 등이 동서 인류문화 속에서 서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륵신앙의 역사
우리나라에 남한에만 약 400여개의 미륵석상이 있는데, 그 분포도를 보면 옛 백제 땅인 충청과 전라도 지방에 그 수가 가장 많고, 옛 신라 땅인 강원과 경상도엔 적게 나타난다. 이로써 백제지역에서 민중(民衆)들의 미륵신앙이 더욱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백제는‘미륵하생(下生) 신앙’으로 지상에 미륵의 이상세계 건설을, 신라는‘미륵상생(上生) 신앙’으로 천상에 올라가 도솔천 미륵에게서 도를 받아 인간세상에 내려온다는‘미륵불의 인간현현(現顯)’을 꿈꿔왔다.
신라의 화랑 중에는 김유신을 비롯하여‘미륵의 인간적 화신(化身)’이라 불렸던 이들도 종종 있었고,『 삼국유사』에는 화랑을‘미륵선화(仙化)’라고 기록하고 있다. 신라 화랑도에서 이념으로 삼았던 이상적 국가의 모델 또한‘미륵의 나라’였다.
TV드라마〈서동요〉로 더욱 잘 알려진 백제 무왕(?~641)과 그 아들 의자왕(?~660)은 특히 미륵불과 관련이 깊다. 전북 익산군 금마면(金馬面)의 미륵사지는 삼국 중 최대의 절터였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백제 무왕이 왕비 선화와 함께 용화산 사자사에 참배하러 갔다가 연못에서 미륵삼존불이 나타나자 절을 하였고, 이후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미륵사지에는 미래불로 오실 구원의 부처, 미륵을 당장의 현실세상에 모셔서 용화낙원의 꿈을 이뤄보고 싶어했던 백제인들의 간절한 신앙과 염원이 담겨 있다.
미륵신앙의 대중화
그러면 우리네 서민들의 부처님인 미륵불에 대한 신앙은 언제부터 이 땅에 본격적으로 대중화되었던 것일까? 처음 하생과 상생의 양갈래였던 미륵신앙은 통일신라(신라후대) 이후부터 하생신앙이 본류를 차지하게 된다.
멸망한 옛 백제 민중들의 미륵하생신앙에 대한 간절한 염원은 통일신라시대 진표율사(734~?)에 의해 그 열매를 맺게 된다.
진표율사는 미륵불에게 계시를 받기 위해 자기 육신을 돌로 짓이기는‘망신참법’(亡身懺法)의 구도법(求道法)으로 전북 부안 변산의 부사의방장에서 수행한다. 수행과정 중에 그는 지옥에 빠지는 중생을 구제한다는‘지장보살’과 용화낙원을 건설하실‘미륵존불’을 차례로 만나게 되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된다. 이때 그는 미륵불에게 자신이 미륵님이 오시는 그 세상에 다시 태어나 대국왕의 몸을 받아내려 큰일을 할수 있도록 해주실 것을 간절히 기원한다. 이러한 내용이『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진표율사는 이때 미륵불로부터 금산사에 자신이 본 모습 그대로 미륵불상을 조성하라는 명을 받게 된다. 이후 진표율사는 용화 3회설법 도량 중 하나인 금산사(金山寺)에 미륵불상을 조성함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미륵불교 종단인 법상종을 열게 되고 이어 법주사, 발연사에 미륵불상을 세운다. 이로부터 우리나라에 미륵신앙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에는 민중들이 길거리에 아무러한 석상모습(돌미륵)이라도 세워놓고 그냥 지나다가도 꾸벅 절하며 복을 빌었다. 미륵은 사람들에게‘부처님’이라는 존경심보다 친밀감으로 다가오는 가난한 서민들의 이웃이자 민중의 부처가 되었던 것이다.
불교의『미륵경』에 보면, 미륵이 내려오실 때 그 이상세계를 지상에 직접 건설하는 대국왕(大國王)인‘전륜성왕’(轉輪聖王)도 같이 내려오신다고 한다. 이러한 신앙전통을 명분삼아 미륵을 자처한 숱한 혁명가들이 역사 속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스스로 미륵불임을 자처하며, 백제를‘미륵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후삼국 시대에 후백제의 견훤(867~936), 그리고 신라의 궁예(?~918) 역시 스스로 미륵불임을 자처하면서 모든 백성이 다 평화롭게 잘사는 미륵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꿈을 꾸며,‘ 미륵이 다스리는 동방의 큰 나라’라는 뜻으로 국호를‘태봉’(泰封)‘마진’(摩震) 등으로 짓기도 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877~943)도 도선 국사의 비기(秘記)에 따라 이 땅에 미륵의 세상을 건설할 황제로 칭송받았다고 전해진다.
미륵불은 언제 오시는가?
이토록 역사 속에서 숱하게 많은 민중들과 통치자들이 간절하게 찾아왔던 그 미륵부처님이 여는 새로운 낙원세상은 언제쯤 열리는 것일까?
불교에서 미래세계의 메시아, 미륵불의 출현(말법末法)시기는 두 가지 설로 나뉜다. 하나는 석가 이후 약 56억 7천만년 뒤에, 또 하나는 석가 이후 3천년 뒤에 오신다는 것이다.
첫 번째의‘약 56억년설’은 고대 인도의 전통적 사고에 의해, 터무니없이 황당한‘영겁’(永劫)의 무한시간이 도입된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반면 우리나라 민중의 미륵신앙에선 두 번째의‘3천년 설’이 더욱 널리 퍼져 있다.
그런데 이 불기가 남방불교와 북방불교에서 각기 다르게 사용된다. 1956년 스리랑카에서 부처 입멸 2500년을 기념하며 제1차 세계불교대회가 개최된 적이 있는데, 이 연대를 남방불교 국가들이 받아들여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북방불기에 따르면, BCE 1027(갑인)년 석가 탄생을 기준하여 지난 1974(갑인)년이 불기 3천년이 되는 해였다. 즉 지금 이 시대는 미륵불의 도(道)가 이 세상에 나타날 때인 것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북방불기를 따랐었다. 그런데 근래 들어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주로 남방불교의 불기를 따르고 있다.
‘때를 잘 만나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증산도의 종도사님께서는“운은 그 운이 있고[運有其運], 때는 그때가 있고[時有其時],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이 있다[人有其人]”고 하셨다. 역사 속에서 펼친 미륵세상을 향한 꿈은‘그 운 그 때 그 사람’이 모두 충족되지 않았기에 단지 꿈으로만 그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륵불이 열어주신 후천 새 세상
백제의 무왕을 비롯한 역사상의 군왕(君王)들과 이 땅의 백성들이 산천의 숱한 미륵불상과 돌미륵님에게 간절히 빌었지만 이루지 못했던 미륵세상에의 꿈과 슬픈 비원(悲願), 또한 망신참법(亡身懺法)이라는 생사를 건 처절한 수행으로 도를 구한 진표율사의 천지를 감동시키는 기원!
그 정성과 염원에 응답하여, 마침내 미륵불교의 본사(本寺)인 금산사가 위치한 전라도 모악산 아래, 참미륵불이신 강증산 상제님께서 1871년(辛未년)에 이 땅에 탄강하심으로서 미륵불의 대도진리가 꽃을 피우게 되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당신의 신원을 스스로 ‘미륵’이라고 여러 번 밝혀 주셨다.
내가 미륵이니라. (道典2:66:5)
진표와 나는 큰 인연이 있느니라. (2:66:3)
앞으로는 미륵존불의 세상이니라. (4:57:3)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 미륵불을 보라. (10:33:6)
마침내 인간으로 오신 미륵부처님이신 상제님께서는 인류가 그토록 염원해온 용화낙원세계, 후천의 새 세계를 열어놓으셨다.
우리나라 절과 마을의 미륵불상은 입불, 좌불, 반가좌 세 가지 형태인데 대부분이‘입불立佛’이다. 이는 미륵불이 후천개벽의 대변국 때 오셔서, 인류구원을 위해 바삐 뛰어다녀야 함을 암시한다.
또한 미륵불은‘혁신불’‘개혁불’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묵은 가치관이 지배하는 현대문명을 개혁하여 새로운 문명세상을 열어갈 새 진리를 들고 나온 새로운 부처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로부터‘미륵불의 제자 중에는 새로운 세상을 여는 개혁정신을 가진 젊은이가 많이 모여 든다’라는 말이 전해져 온다.
석가부처님께서 예언하신 미륵의 출현시기인 말법세상은 곧 다가올 우주의 여름과 가을이 바뀔 때를 말한다. 즉 만유(萬有)생명의 부모인 천지(天地)가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 전 인류가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자연과 문명의 대변국이 동반되어 다가오는, 후천가을개벽을 말한다.
이러한 가을개벽세상을 넘어 미륵부처이신 상제님께서 열어주신 용화낙원, 후천 새 세상으로 인류를 인도할 수 있는 미륵의 위대한 일꾼들이 많이 나오길 기도하며 이 글을 맺고자 한다.
20~21세기 서양의 주류철학인 탈근대철학(포스트 모더니즘: Post Modernism)의 원조라고 하는 독일의 천재 철학자 니체의 명저『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짜라투스트라는‘조로아스터’를 말한다. 조로아스터는 고대 페르시아(현, 이란)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미트라교와 같은 계통)의 창시자인데, 이 종교 또한 미륵사상과 관련성이 있어 보인다.
이 종교의 교리에 의하면, ‘우주창조 후 3천년째에 불[火]이 쇠[金]를 녹이는 때가 오면 선신(善神)이 악신(惡神)을 이겨서 천국세상을 연다’는 가르침이 있는데, 이는 후천개벽기에 우주가을의 선경낙원(仙景樂園) 세계를 건설하는 미륵존불의 강림시기인 석가 이후 3천년설과 일치한다.
또한‘불[火]이 쇠[金]를 녹이는 때(극克하는 때)’라는 것도 우주 원리에서 말하는‘하추교역기’(夏秋交易期), 즉 우주가 여름철[火] 상극세계에서 가을철[金] 상생의 세계로 바뀌는‘화극금’(火克金)의 자연섭리와도 일치한다.
참고문헌
한국문화의 뿌리를 찾아서 (존 카터코벨, 학고재)
미륵불 (김삼룡, 대원사)
한국종교 이야기 (최준식, 한울)
우리문화의 모태를 찾아서 (조자용, 안그라픽스)
일본속의 한국문화재 (이경재, ★★★)
다이제스트 개벽 (안경전, 대원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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