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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귀한 고려왕 초상화 발견했는데 "땅에 묻어버려라"…세종대왕의 황당 지시 이유는? [사색(史色)]

환단스토리 | 2024.06.19 13:40 | 조회 177

매일경제 2024-06-01


[사색-71] “모두 땅에 묻어버려라.”

진귀한 유물이 발견됐을 때, 임금이 충격적 명령을 쏟아냅니다. 그림과 동상을 모두 땅에 묻어 흔적을 지우라는 것이었지요. 단순한 유물이 아니었습니다. 고려 태조 왕건을 묘사한 동상이었으니까요. 오늘날에도 ‘국보’로서 자격이 충분한 유물입니다. 수백억 원은 훌쩍 뛰어넘을만한 작품이지요. 이 명령을 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민족의 ‘성군’. 세종대왕이었습니다.

전임 정권에 대한 정치적 보복 때문이었을까요. 오늘날에도 전 정부의 유산에 지우개를 대는 행위는 자연스럽지만, 세종의 명령에는 또 다른 배경이 있었습니다. 세종대왕께서 왜 고려시대의 유물을 없앴던 것일까요.


진귀한 고려왕 초상화 발견했는데 "땅에 묻어버려라"…세종대왕의 황당 지시 이유는? [사색(史色)]

화려한 그림과 석상으로 가득한 ‘고려’

우선 고려시대로 들어가봅니다.

“고려에는 화려한 그림과 석상이 마을 곳곳 가득하다.”

1123년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도경에 남긴 기록입니다. 그의 눈에 고려는 ‘이미지’의 나라였습니다. 도성 안팎에는 불교 사찰이 발에 채이듯 많았고, 도교 사원과 토착 신들의 사당도 그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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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를 비롯한 수많은 신들이 고려 귀족과 백성에 의해 경배받고 있었지요. 불교가 국교였지만, 그 외 민간신앙에 대해서도 폭넓게 인정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독교를 국교로 삼기 전 고대 로마의 상황과 비슷했습니다. 모든 이들이 각자의 신을 모실 수 있었지요.

주로 그림이나 도상과 같은 화려한 이미지로 각자의 신을 구현한 배경입니다. 아무래도 글을 모르는 백성들이 대다수일 테니 그림만한 포교 수단이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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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불교를 기반으로 다신을 수용하다

민간에서만이 아니었습니다. 지역의 토착신들은 국가적으로도 ‘공인’됐습니다. 수도인 개성의 궁궐 안에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어머니 ‘동신성모’(東神聖母)를 모신 사당이 있었습니다. 이곳의 성모상은 장막으로 가려져 일반인들이 볼 수 없을 정도로 성스럽게 모셔졌지요.

1273년 고려 임금 원종은 제주도와 전라도 광주 지역신들에게 상과 작위를 내렸습니다. 제주 삼별초를 토벌하는 데 신들이 적절한 역할을 해줬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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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은 목상, 석상, 동상, 그림으로 숭배됩니다. 고려 전역에 얼마나 많은 이미지들이 있었을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지요. 송나라 사신이 그 방대함에 놀란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저 미신을 모두 없애자”

‘조선판 성상파괴 운동’

조선이 개국하면서 사정이 달라집니다. 국가 토대로 삼은 유교의 교리에서 ‘이미지’는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어서였습니다. 조선이 사대한 명나라 역시 조선의 ‘유교화’를 지속해서 관리 감독했었지요.

고려시대 지역 신들은 각자의 이름이 있고 가족도 있었던 인간적인 신이었습니다. 마치 그리스로마 신화처럼요. 조선이 개국하면서 신령을 재현한 그림과 동상들이 제거됩니다. 정 모시고 싶다면 유교 방식의 ‘신위’로 제사를 지내라는 어명이 떨어지지요. 그림을 빼고 밋밋한 글자만 쓰인 나무패를 제사상에 올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신상을 만들어 제사 지내는 건 엄격히 제재받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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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고려 문화재가 그렇게 사라져갔습니다. 문화재적인 관점에서 ‘유교’는 ‘재앙’이었던 셈이지요. 역사가들이 ‘조선판 성상파괴’ 운동이라고 부르는 배경입니다. 개신교도들이 가톨릭의 성인상을 조직적으로 파괴한 것과 정확히 닮아 있습니다. 그들도 “성상에 미사를 드리는 건 성경이 금지하는 우상숭배”라는 이유에서 그랬습니다.

세종, 고려 임금의 초상화를 땅에 묻다

“유교에 맞지 않은 상을 모두 없애도록 하라.”

고려시대의 그림과 상을 조직적으로 제거한 임금은 ‘성군’ 세종이었습니다. 아버지인 태종 때부터 시작된 성상제거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기 시작한 것이었지요.

특히 세종은 산 밑에 단을 설치해 산천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임금의 고유한 권리”라고 선포합니다. 무당이 산 위에 산신당을 설치해 민간 제사를 지내는 것이 기형적이라고 주장한 것이지요. 임금이 산 아래서 제사를 지내는데, 감히 무당이 산 위에서 굿을 하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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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0년에는 ‘각도산천단묘순심별감’을 설치합니다. 이름은 어렵지만 목적은 단순합니다. 각 지역 산천신과 성황신 사당을 조사하고 그 개혁안을 제출하는 위원회입니다.

이들 신상을 모두 철거하고 유교식 제사로 대체하라는 주문이었지요. 고려시대에 국가 차원에서 제사가 이뤄지던 개성 대황당과 국사당은 철거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마침 이 때 세종에게 “여러 동상과 초상화가 발견됐다”는 보고가 올라옵니다. 약간 훼손된 고려 태조 왕건상과 2대 혜종의 상과 초상 등 진귀한 유물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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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관점에서)시기가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았습니다. 세종은 모든 상과 초상을 제거하고 나무 위패로의 대체를 주도하고 있던 인물. 그에게 고려의 국보급 유물 여럿이 한꺼번에 보고된 것이었습니다.

세종은 역시 원칙을 내세웁니다. 복원 대신에 각 주인의 무덤에 함께 묻자고 결론 내리지요. 고려 왕 십 여명의 초상화가 그렇게 땅에 묻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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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있었다면, 국보 중 국보로 귀한 대접을 받았을 게 분명하지요. 고려 공신의 초상도 각자 무덤에 함께 묻힙니다. 역사학자들이 세종대왕의 공을 인정하면서도, 문화재 관점에서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이유입니다(1992년 태조 왕건상이 북한 개성 현릉 보수 공사 중에 발견됩니다).

선비들도 무속과의 전쟁을 선포하다

“민간에 퍼진 성상도 용납할 수 없다.”

세종이 불을 당긴 성상파괴운동은 조선 중기 유생들에 의해 계승됩니다. 여전히 민간에서 많은 백성들이 신상을 만들어 각자 제사(음사)를 지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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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은 여전히 마을을 돌며 무속 신의 신묘함을 증명했었지요. 유생들은 더 이상 이를 좌시하지 않았습니다. 1517년 중종 12년의 일이었습니다. 정병(양인 출신의 군인) 최숙징의 상소가 올라옵니다. “무당이 혹세무민하면서 공양을 계속하니, 이를 모두 헐어버려야 합니다.”

아직 민속신앙의 전통이 남아있던 곳이 표적이 됐습니다. 옛 고려의 수도 개성이었습니다. 과거 500년 동안의 전통을 버리기 쉽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 지역 유생들이 적극적으로 실력행사에 나선 배경이었습니다. 1566년 명종 21년 100여명의 유생은 유서 깊은 기도처를 찾아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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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태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월정당, 개성당 등 주요 장소에 불을 질렀습니다. 최영 장군신을 모시는 덕적당이 화마에 사라진 것도 이때였습니다.

후대 기록인 김육의 잠곡필담에 당시 상황이 자세히 기록됩니다. 김이도와 박성림이라는 두 유생은 당시 민중의 종교생활에 분노해 의기투합합니다.

“사람들이 병에 걸려도 약을 구하지 않고, 무당을 찾아 기도만을 일삼는다. 저것들(성황당)을 태워버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 성현의 도를 밝힐 수 있겠으며 긴긴밤에 요사한 기운을 없앨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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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자신들과 뜻을 같이하는 유생들을 데리고 송악에 올라 신당을 불태우기 시작합니다. 대옹과 대부인이라는 나무 신상도 깨부수지요. 그들이 그날 제거한 사당은 7개에 달했습니다.

유물 파괴에 분노한 ‘명종’

모순적이게도 임금인 명종은 이들의 이 행위에 ‘분노’합니다. 이들을 향해 “광견한 무리”라며 공개적으로 처벌을 주문하기도 했었지요. 왕마다 ‘전통 민간신앙’에 대한 태도가 달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명종의 논리는 이랬습니다. “음사(공인되지 않은 무속적인 민간 제사)는 저절로 없어질 것인데, 어찌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성소들을 파괴할 수 있는가”라는 비판이었습니다.

명종 시대 왕실은 개성의 신당에 보물을 보내 왕자 탄생을 빌 정도로 토속신앙을 가까이했습니다. 세종대왕 때와는 확연히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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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 주범인 유생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처벌에 직면하자 전국 유생들로부터 상소가 빗발칩니다. “군자가 기풍을 바로잡아줬다”는 칭찬과 함께였습니다. 조사를 위해 서울로 끌려왔을 때에는 관청에서 술과 음식을 대접받기도 했었지요. 결국 명종은 이들을 벌할 수 없었습니다. 유교의 승리였습니다.

불교 국가 신라 수도였던 경주에 가도 목이 잘린 불교 석상이 쉽게 발견됩니다. 지역 유생들의 횡포였습니다. 문화재적인 측면에서 유교의 국교화는 임진왜란만큼이나 끔찍한 상흔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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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나라가 되어버린 조선

500년간 이어진 억불(抑佛)의 영향은 대단했습니다. 한반도의 예술은 점점 색을 잃어갔지요. 불교, 도교, 민간신앙의 주요 신상과 그림들이 사라진 풍경이었습니다.

19세기 조선을 방문한 성공회 선교사 J.R. 울프는 “한국은 종교가 없다”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어느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숭배의 대상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럴만도 하지요. 그에게 있어서 글자만 덩그러니 쓰여있는 ‘신위’가 숭배의 대상으로 보이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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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는 여기에 더해 한 마디 더 부연합니다. “불교는 조선에서 금지된 종교다. 지난 500년간 지배왕조는 불교를 폭력적이고 성공적으로 억압했다.” 화려했던 고려의 시대가 흔적을 남기지 않은 데에는 무채색의 조선이 있었던 셈입니다. 문화재는 야만 이민족의 침략에 의해서만 파괴되는 게 아닌 것이지요.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역사가 남긴 수많은 명작들이 사라져갔습니다. 문화재 소실의 비난을 외부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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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줄요약>

ㅇ고려는 불교 이미지와 각종 신의 석상으로 가득한 나라였다.

ㅇ조선이 유교를 기반으로 개국하면서 고려시대 유물들은 반달리즘(문화재 파괴행위)의 ‘표적’이 됐다.

ㅇ민족 성군 세종 역시 고려시대 임금의 초상화와 석상을 땅에 묻어버렸다.

ㅇ우리가 잃어버린 문화재는 이렇듯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지워지곤 했다.

<참고문헌>

ㅇ한승훈, 무당과 유생의 대결, 사우, 2021년

역사(史)에 색(色)을 더하는 콘텐츠 사색(史色)입니다. 역사 속 외설과 지식의 경계를 명랑히 넘나듭니다. 가끔은 ‘낚시성 제목’으로 알찬 지식을 전달합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해주세요. 매주 토요일 알롱달롱한 역사를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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