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민족사 뿌리 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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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역사 왜곡 과정

⊙ 역사서적 약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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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우리 나라를 강점한 이후 민족의 근간을 바꾸기 위하여 민족의 서적을 약탈하였다. 1910년 11월부터 조선총독부 산하의 ‘취조국’으로 하여금 1911년 12월까지 조선총독부 관보(官報)를 근거로 하여 ‘51종 약 20만권'정도를 약탈했다. 물론 역사서 또한 포함되었다.

 

서울에서는 종로 일대의 서점을, 지방에서는 서점, 향교, 서원, 구가(舊家), 양반가, 세도가 등을 샅샅이 수색하였다. 다음해 12월말까지 1년 2개월 동안 계속된 제 1차 서적 색출에서 얼마나 압수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다만 조선총독부 관보를 근거로 판매금지한 서적과 수거된 서적은 총 51종 20여만 권이라고, 광복 후 제헌국회사와 <문정창(文定昌) 저> 군국일본 조선강점 36년사에서 밝히고 있다.

 

 

⊙ 역사서적 왜곡, 날조

또한 가관인 것은 자신들이 1922년 12월에 조선사편찬위원회를 만들어서 조선사(朝鮮史)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편찬한다. 즉 1938년까지 엄청난 돈을 일본이 부담하여 식민사관에 입각한 자기만의 역사서를 편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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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역사 왜곡 내용

 


<일제가 역사왜곡에 혈안이 된 이유>

 

- 고대 일본의 역사가 동방 한민족 역사의 부속사라는 숙명적인 약점

- 역사적 열등감과 이에 수반되는 침략 명분의 부재

- 열등감을 숨기기 위한 계획적인 역사날조


 

⊙ 대륙사관을 반도사관으로

대륙개척사를 반도수난사로 둔갑시키고 정신적으로 고유의 주체사상을 말살하여, 당쟁만 일삼는 식민지 백성이라는 패배주의를 심어놓음

 

⊙ 우리 역사는 2천년 이하이다.
단군을 하나의 신화로 돌리고, 고조선 실사(實史)를 은폐하여 고대사를 압축하고 만주하북성에서 찬란했던 조선족의 역사를 완전히 말살.

 

⊙ 우리 역사의 시작을 위만조선으로

조선은 자고(自古)로 북은 한(漢)의 식민지, 남은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의 지배하에 있었다고 억설을 주장하여 조선강점을 논리적으로 합리화 기도.

 

⊙ 역사 왜곡은 일제의 고질적인 악습

고고학계의 구석기 유물 조작 폭로 일본 고고학계는 지난 92년 70만년 전의 구석기 유물이 발되었다고 했다가 2000년 11월 일본 언론에 의해 이것이 한 일본 역사연구가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짐.

 


<조선 총독부 3.5대 총독 시달 교육시책>

 

먼저, 조선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만듦으로서,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하고 그들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위, 무능, 악행을 들춰내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조선의 청소년들이 그 부조(父祖)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그것을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고 그 결과 조선의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史蹟)에 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어,

 

반드시 실망과 허무에 빠지게 될 것이니, 그 때에 일본 사적, 일본 인물, 일본 문화를 소개하면, 그 동화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 일본이 조선인을 반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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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2008-10-03 일제의 삼국유사에 나오는 고조선 관련 기술 변조 관련 뉴스)


『조선사』35권 (made in Japan)

 

치밀한 우리의 역사 개조작업을 한 일본은 드디어 1938년까지 35권의 조선사를 편찬하게 된다. 그곳에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참여한 사람이 이병도였다. 그는 금서룡(今西龍), 이마니시의 수서관보로 들어가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왜곡하는데 일등 공로자가 되었다. 이 후 이승만 정권에 붙어서 전 서울대학교 사학과 교수, 교육부 장관과 한림원 원장을 맡게 되어 지금의 강단사학계가 100%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일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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